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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럭키’ 바톤 이어받은 ‘스플릿’ 최국희 감독, “워낙 시국이 흉흉해서 흥행은 천운”

영화 ‘스플릿’이 개봉 2일차에 관객 48,342명을 동원하며 한국영화 박스오피스 1위에 오른 것은 물론, 한국영화 예매율 1위까지 차지해 본격 흥행 신호를 밝혔다.


남녀노소가 즐기는 국민 스포츠 ‘볼링’에 ‘도박’을 결합시킨 신선함으로 주목 받고 있는 최국희 감독의 영화 ‘스플릿’은 볼링에 인생이 엮인 4인과 그들을 둘러싼 거대한 도박세계를 그린다.

8일 오후 서울 종로구 팔판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최국희 감독은 “‘스플릿’은 복잡한 현 시국에 스트레스를 조금이나마 덜 수 있는 영화이다”고 소개했다.

이어 “ VIP 시사 이후 주변 반응이나 감독님들 반응이 좋았는데, 워낙 시국이 흉흉해서 흥행은 천운이라고 생각하며 기다려야죠”라고 담담히 말했다.

‘스플릿’은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전문사를 졸업한 신인 최국희 감독의 장편 데뷔작이다. 최 감독은 ‘그날 밤의 축제’, ‘삶은 전진하고’ 등의 단편을 선 보인 바 있다.

영화 ‘스플릿’ 최국희 감독 /사진=지수진 기자영화 ‘스플릿’ 최국희 감독 /사진=지수진 기자


볼링장을 방불케 하는 리얼한 사운드와 생생한 비주얼, 충무로 믿고 보는 배우 유지태, 이정현, 이다윗, 정성화의 완벽한 팀플레이가 영화 관람의 재미를 배가시킨다. 특히 감동, 웃음, 재미 3박자를 갖춘 새로운 오락영화로 주목 받고 있다.

다음은 최 감독과의 일문일답이다.

Q. 미국 산타모니카에서 열린 아메리칸 필름 마켓(AFM)에서 해외 언론의 반응이 뜨거웠다고 들었다.

▲ 중국, 동남아를 비롯한 16개국에 선판매 된 가운데 계속해서 구매 문의 세례가 이어지고 있다고 들었어요. 볼링 스포츠드라마라는 독특한 소재와 따스한 스토리가 통한 듯 해요. 감독들은 적은 예산, 적은 회차에 작업한 것들을 높게 쳐주기도 하더라구요.

Q.스플릿(‘split’은 볼링에서 첫 번째 투구에 쓰러지지 않은 핀들이 간격을 두고 남아 있는 것을 의미)으로 제목이 정해지기까지, 어떤 제목들이 물망에 올랐나?

▲ ‘스플릿’이 가제였는데 결국 이 제목으로 정해졌어요. 사실 영화 제목으로 부정적인 의미는 잘 안 쓰는데, 다른 단어가 떠오르지 않았어요. 100만원 상품권을 걸고 제목 응모도 했는데, 마음에 드는 제목이 없었어요.

그렇다고 ‘스트라이크’란 제목은 또 너무 뻔해서 아니잖아요. ‘스플릿’이 볼링용어로서 다가오는 것도 있지만, 중의적으로 처리하기 어려운 문제라는 뜻도 포함 하고 있어요. 밑바닥 영혼들인 영훈과 철종이 처음 만났을 때 거리감이 있다는 그런 중의적인 의미도 담겨 있어요.

/사진=오퍼스픽쳐스/사진=오퍼스픽쳐스


Q.첫 장편영화다.

▲ 처음 아이디어를 구상하고 시나리오를 쓰고, 영화로 만들어지기까지 딱 3년이 걸렸어요. 신인 감독치곤 빨리 된 거죠. 다큐멘터리를 좋아하는데, 그럴 듯 한 것 같은 영화보다는 ‘진짜 같다’고 느낄 때 스스로 반응하는 것 같아요.

‘스플릿’ 도 진짜 같은 영화라는 느낌을 주고 싶었어요. 나름 주어진 상황 안에서 리얼함을 추구했던 것 같아요.

Q. 볼링이 사람 미치게 하는 스포츠라고 하더라. 거기에서 착안한 게 있나?

▲ 초등학생 시절 볼링을 좋아하는 어머니를 따라 볼링장을 처음 갔어요. 두 번 쳐봤나? 되게 신기하죠. ‘꽝’ 소리 나면서 핀들이 넘어지는데 통쾌하더라구요.

초보자들이 하기에 재미있는 스포츠가 많이 없는데, 그 중에 볼링은 초보자들이 바로 할 수 있는 얼마 안 되는 스포츠 중 하나죠. 볼링은 발로 굴리든, 두 손으로 굴리든 가운데로만 가면 스트라이크가 나올 수 있어요. 처리되지 않은 핀이 남아있더라도, 다음엔 스트라이크가 나올 것 같은 짜릿한 긴장감이 사람을 미치게 하죠.

Q. 볼링이 멘탈 스포츠라고 하던데.

▲ 볼링이 멘탈 스포츠인 이유가 이전 게임에서 퍼펙트를 쳤던 선수일지라도, 도박 액수가 올라가거나, 다른 변수가 생기면 사람 마음이 흔들려요. 거기에 상관없이 칠 수 있어야 해서 멘탈 스포츠라고 하는거죠.

Q. 극중 자폐아 성향이 있는 영훈의 흔들리지 않는 멘탈이 철종에게도 영향을 미치고 관객들에게도 뭔가를 던진다.


▲ 백사장(권해효 분)이 대사 중에 그런 말이 나오죠. “우리 애들은 안 돼. 생각 없이 막쳐야 하는데” 특별하게 의도했다기 보다는 두 남자의 성장 드라마가 차곡 차곡 쌓일 수 있도록 하고 싶었어요. 과거의 트라우마가 치유되고 앞으로 나갈 수 있다는 의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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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오퍼스픽쳐스/사진=오퍼스픽쳐스


Q. 당구를 소재로 한 로버트 로즌 감독의 ‘허슬러’와 버디무디인 베리 레빈슨 감독의 ‘레인맨’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들었다.

▲50~60년대 흑백 느와르 영화를 좋아하는 편입니다. 그렇다고 ‘허슬러’나 ‘레인맨’과 비슷하다는 말은 듣고 싶지 않았어요.

‘스플릿’은 한 마디로 버디무비인데 ‘레인맨’과는 달라요. 저희 영화는 두 주인공 모두 조금씩 성장하는 영화죠. 한때는 이름 날리는 볼링 국가대표 선수였으나 이제는 도박볼링판을 전전하는 신세로 전락한 ‘철종’도 영훈을 만나 성장하고, 자폐 성향의 영훈도 자기의 우상을 만나고 달라져요. 영훈은 10번 라인에서만 칠 수 있는 반쪽짜리 친구였는데, 철종을 만나고 제대로 볼링을 칠 수 있게 되니까요.

Q.누군가 자신의 이름을 부르면 경기를 일으키던 영훈이 후반 달라지는 모습도 찡하더라. 마치 유지태가 제 2의 아버지 같더라.

▲ 맞아요. 결국 영훈에게 철종은 제 2의 아버지로 보이기도 해요. 마지막에 유지태, 이정현, 이다윗 이 셋이 걸어갈 땐 대안가족의 느낌도 보여줬으면 좋겠다는 의도도 있었어요. 밑바닥인 세 사람이 만나서 서로에게 의지하는 대안가족이요.

Q.유지태, 이다윗, 정성화 등 모두가 감독이 원했던 배우들이었다고 들었다.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처음 택한 이미지가 바른 배우였어요. 유지태씨가 딱 그렇죠. 그런 이미지의 배우가 망가졌을 때 다가오는 게 커요.

반대로 정성화 배우는 코믹한 캐릭터를 주로 했는데, 뮤지컬 무대에서 본 정성화씨는 또 다른 포스가 있어요. 뮤지컬 ‘레미제라블’이랑 ‘영웅’을 보는데 뿜어내는 아우라가 엄청나더라구요. 그걸 보고 악역을 하면 정말 잘 할 것 같다는 생각에 콜을 보냈는데 너무 좋아하셨어요.

이다윗 배우는 얼굴이 선하고 눈은 맑은데, (보기와 달리)경쟁심이 있는 친구입니다. 연기를 승부라고 생각할 정도로 투쟁심이 있는 친구죠. 젊은 배우에게 느끼기 힘든 그런 점을 되게 좋게 봤어요. 이 친구랑 하면 잘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요. 결과적으로 만족스럽고 그래요. 워낙에 훌륭한 배우들이라.

/사진=오퍼스픽쳐스/사진=오퍼스픽쳐스


Q. 작업한 배우들이 ‘컷’을 늦게 하는 감독이라고 하더라. 이게 최국희 감독만의 색깔인가? 아니면 영향을 받은 감독이 있는건가?

▲ 홍상수 감독 연출부를 했는데, 홍상수 감독님은 롱테이크를 주로 하시니, 저와 같은 맥락은 아닌 것 같아요. 전 끝나고 여운이 있을 것 같으면 더 대비를 두죠. 그래서 생긴 신들이 많아요. 그런 감정들이 폭발했을 때 바로 ‘컷’을 하기보단 지켜봤을 때 새로운 게 나오는 것 같아요. 우리 영화에서 유지태와 정성화씨가 격렬하게 붙는 장면이 바로 그 장면입니다.

Q. 성격이 느긋한 편인가?

▲ 성격이 급한 편인데, ‘컷’은 늦게 하는 경우가 많아요.(웃음) ‘컷’을 늦게 한다고 해서 촬영이 지연 되지는 않아요. 오히려 세팅 때문에 지연되는 경우는 많아도요. 저는 ‘컷’을 늦게 해서 장면을 건진 게 많아서 앞으로도 그렇게 할 것 같아요.

Q. 영화를 감독의 예술이라고 말하듯, 감독이 생각하는 그림으로 배우들이 따라와 줄 것을 원하는 경우가 많지 않나?

▲ 전 기본적으로 배우를 만났을 때 하는 말이 ‘시나리오는 가이드라인이고, 연기는 배우님이 하시는 거다. 새로운 아이디어 혹은 대사가 생각나면 이야기해주면 좋겠다.’고 해요. 그리고 제 가이드라인을 해치지 않은 선에서 정말 적극적으로 반영하는 편입니다.

철종 캐릭터도 유지태 배우가 생각해온 아이디어가 많이 반영 됐어요. 배우들을 다 똑같은 상상력으로 가둬놓는 것. 전 그게 되게 낭비인 것 같아요.

Q. 살아가면서 뭘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인가?

▲ ‘의리’가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저 역시 그런 사람이 되려고 합니다.

Q. ‘국희’ 란 이름이 여성스럽다는 반응도 있다. 이름에 담긴 뜻은?

▲ 뜻이 짜쳐요.(유치하다는 뜻이 담긴 경상도 방언)나라국(國)에 빛날 희(熙)란 뜻인데...아버지의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이 느껴지죠.

아직까지는 이름 뜻에 걸맞게 사고 안 치면서, 세금도 꼬박 꼬박 내고 있어요. 그러면서도 영화 이야기를 맘껏 꺼낼 수 없는 지금의 현실이 씁쓸하기도 하고, 제 세금이 딴 곳으로 가고 있어서 억울하기도 합니다. 영화 홍보하는데도 민망한 것도 분명 있어요.

정다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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