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악파는 민요와 춤곡 등 민족적인 소재를 음악에 채택해 민족주의적 음악 이념과 양식을 구축하고자 했다. 따라서 그들은 자국의 민요가사나 전통적인 문학작품, 전설, 역사, 자연풍광, 특히 국민들의 생활을 음악의 표제나 내용, 형식, 구성기법과 잘 융화시키려고 노력했다. 초기엔 기법상 낭만파 음악의 연장에 가까웠으나 그 안에 표현된 민족적인 색채는 20세기에 이르러 작곡가들의 독자적인 기법에 의해 한층 더 명확하게 발전했다.
민족음악가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는 아마 스메타나일 것이다. 그는 독일의 지배하에 있던 보헤미아(체코의 서부)에서 태어났다. 어릴 때부터 음악적 재능이 뛰어났던 그의 꿈은 작곡은 모차르트, 피아노는 리스트와 같은 음악가가 되는 것이었고 그와 동시대를 살았던 리스트에게는 자신의 작품을 헌정하겠다는 당돌한 편지를 보내기도 했는데 성품이 좋았던 리스트는 이것을 인연으로 스메타나의 작품이 출판될 수 있도록 도와줬다고 한다.
지금도 매년 스메타나 사망일인 5월 12일 프라하에서는 ‘프라하의 봄’이라는 세계적인 음악제가 열린다. 음악제는 늘 스메타나의 ‘나의 조국’을 연주하며 시작된다. 이는 조국을 열렬히 사랑한 스메타나를 추모하고자 하는 체코인들의 존경심의 표현이라 할 수 있겠다.
우리나라에도 조국을 진심으로 사랑한 음악가들이 많이 있다. ‘울밑에선 봉선화야…’로 시작하는 노래의 홍난파, 일부에서는 친일파로 몰기도 하지만 우리 민족의 교향시 ‘코리아 판타지’를 작곡한 안익태 그리고 유럽에서 작곡가로서의 국제적인 명성을 얻었으나 이념적인 문제로 고국 땅을 밟지 못하고 작고한 윤이상 등 역사적으로 일제 강점기를 지내고 현재도 국토가 남북으로 갈린 상황을 가진 우리 민족사에는 수많은 애국적 음악가들이 존재한다. 현재를 살아가는 음악인의 한 사람으로서 우리 민족의 음악을 ‘세계인과 함께 공유하는 음악’으로 만들어 나가는 데 더욱 매진해야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테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