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통령선거 이후 첫 주요 국제회의인 제24차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의 화두는 ‘도널드 트럼프’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보호무역주의와 고립주의로 요약되는 트럼프 당선인의 공약이 현실화할 경우 세계 경제·안보 질서에 큰 변화가 불가피한 만큼 각국 정상들은 대응책 마련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19일(현지시간)부터 20일까지 페루 리마에서 열리는 제24차 APEC 정상회의에는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아베 신조 일본 총리 등 21개 회원국 정상이 참여한다. AP통신 등 외신들은 지난 2015년 테러, 2008년 세계 금융위기 등 그해의 당면 현안을 논의하는 APEC 회의의 특성상 올해는 트럼프 당선인의 정치·경제정책이 주된 의제로 다뤄질 것으로 내다봤다. 프레드 버그스텐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 선임연구원은 “세계 정상들은 트럼프가 대통령에 취임하면 선거기간보다 온건한 모습을 보일 것으로 희망하지만 걱정을 놓을 수는 없다”고 지적했다.
트럼프 당선인이 취임 초기부터 대대적인 무역협상 재편을 예고하면서 각국은 통상질서 변화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고심하는 모습이다. 당장 오바마 대통령 행정부에서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추진 포기를 공언한 가운데 이 협정의 초기 회원국인 멕시코와 페루가 미국을 뺀 협정을 추진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등 다자간 무역협정 구도에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반면 일본·호주·뉴질랜드 등 TPP 회원 7개국은 이날 리마에서 장관급 회의를 열어 “미국의 참여가 필수적”이라며 트럼프 당선인의 태도 변화를 촉구했다.
TPP를 대체할 다자무역 협정도 논의될 것으로 전망된다. 미국 경제전문 방송 CNBC는 이번 회의에서 중국이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 띄우기에 나설 것으로 전망했다. RCEP는 한국·일본을 비롯해 중국과 인도, 아세안 10개국 등 16개국이 참여하는 다자 자유무역협정(FTA)으로 미국이 주도하는 TPP에 맞서는 협정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라지브 비스워스 IHS 선임경제학자는 “TPP 붕괴는 RCEP의 성공적 체결을 위한 동력을 제공할 것”이라며 “중국이 통상질서에서 중심적 역할로 부상한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지적했다. TPP에 사활을 걸었던 아베 총리도 “TPP가 추진되지 못하면 RCEP가 중심이 되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고 말했다.
아시아태평양 지역 안보 역시 핵심 문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당선인은 미군의 아시아 동맹군 주둔 비용이 너무 많다며 재협상하겠다고 공언해왔으며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게 우호적인 입장을 보여 회원국들의 우려를 사고 있다. 트럼프 당선인은 3월 미국이 중국과 충돌해온 남중국해 문제에 대해 “미국은 (남중국해에서도) 너무 많은 돈을 쓰고 있다”며 정책 수정을 시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