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 IB&Deal

독립 의사결정이 되레 毒으로...국민연금 공적역할 제동 우려

삼성물산 합병 결정과정 보니...

통합 시너지·엘리엇 공격 등 고려

SK-C&C 의결권 행사때와 달리

운용본부서 직접 찬성...의혹 키워

'의결권 외부 의존' 고착화 될수도

국민연금의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찬성 논란과 관련해 23일 서울 논현동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를 압수수색한 검찰이 압수물을 들고 나오고 있다. /연합뉴스국민연금의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찬성 논란과 관련해 23일 서울 논현동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를 압수수색한 검찰이 압수물을 들고 나오고 있다. /연합뉴스


자산규모 543조원에 이르는 ‘공룡’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가 지난해 7월 삼성물산(000830)과 제일모직 합병에 대해 독립적으로 내린 의사결정이 되레 독이 되면서 조직 출범 17년 만에 최대 위기를 맞고 있다.

두 회사 합병 성사의 키를 쥔 국민연금은 당시 합병비율 외에도 기금 포트폴리오와 통합법인의 미래가치, 외국계 투기 자본에 국내 기업 경영권을 보호하는 백기사 역할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내부투자위원회를 열고 찬성표를 던졌다. 하지만 이 같은 결정은 민감한 사안은 외부전문가로 구성된 의결권전문위의 결정에 맡겼던 기존 관행을 벗어난 것이었고 결국 합병 찬성 과정에 외부 입김이 작용한 것 아니냐는 의혹으로 번지면서 파장이 커지고 있다.


23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국민연금의 삼성물산 합병 찬성 과정을 둘러싸고 의혹이 커지는 핵심 배경에는 과거와 다른 의사결정 체계가 자리 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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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연금 기금본부는 지난 7월10일 내부 투자위원회를 열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안에 대해 찬성하는 의사 결정을 내렸다. 국민연금이 당시 자체 분석한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비율은 1대0.46으로 삼성 측이 제시한 비율(1대 0.35)이 삼성물산에 불리한 것을 파악했다. 그러나 통합삼성물산의 바이오 자회사인 삼성바이오로직스와 손자회사인 삼성바이오에피스의 미래 사업가치가 이를 상쇄할 것으로 봤다. 합병이 무산됐을 경우 당시 23조원 규모로 보유 중이던 삼성그룹주 포트폴리오에 미칠 영향도 고려했다. 홍완선 본부장은 이 같은 내용을 확인하기 위해 투자위 개최 3일 전에 이재용 삼성 부회장을 직접 만나기도 했다.

하지만 이는 결과적으로 1999년 기금본부가 만들어진 뒤 처음으로 검찰의 압수수색을 받는 원인을 제공하게 됐다. 기금본부 내 최고의 전문가들이 모여 이례적으로 독립적인 의사결정을 했지만 관행을 벗어난 대가는 눈덩이처럼 커지고 있다. 실제 삼성물산 합병을 결정하기 불과 보름 전인 지난해 6월 국민연금은 SK와 SK C&C의 합병 건을 내부 투자위원회가 아닌 의결권 전문위원회에서 처리했다. 당시에도 최태원 SK그룹 회장 지분율이 낮은 SK에 합병비율이 불합리하게 산정됐다는 분석이 나왔는데 의결위는 이를 근거로 반대 의사 결정을 내렸다. 삼성물산 합병의 경우 ISS·한국기업지배구조원 등 국내외 의결권 자문사들이 삼성물산에 불합리한 합병비율을 내세우며 합병 반대를 권고했지만 국민연금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비슷한 시기에 유사한 사례에 대해 다른 의사결정 체계를 따르면서 결국 국민연금의 발목을 잡은 셈이다.

일각에서는 이번 사태로 민감한 안건은 무조건 의결위로 넘기고 보는 보신주의가 기금본부 내 만연할 수 있다고 우려한다. 국민연금의 주식 시장 지배력 확대를 고려하면 앞으로 유사한 사례가 되풀이될 수 있는데 사실상 의결권 행사를 외부 전문기구에 의존하는 형태가 고착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10월 말 기준 국민연금이 직접·위탁을 통해 국내 주식에 투자 중인 금액은 약 100조원이다. 23일 기준 유가 및 코스닥 시장의 시가총액은 1,467조2,590억원으로 국민연금의 주식 시장 지배력은 6.8%에 이른다.

서민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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