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마음코칭] 종결은 곧 새로운 시작

동봉스님 경기광주 곤지암 우리절 주지

비행기 3번 경유해 도착한 탄자니아

종점서 '농대 설립' 새 도전 시작돼

우리는 '지금 여기' 시공간의 여행자

출발·도착 구분 없이 삶은 이어진다





지난 2004년 11월29일 저녁, 나는 아는 스님과 함께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했다. 동아프리카 탄자니아를 가기 위해서였다. 서울 잠실에서 공항버스를 타고 공항에 이르자 버스기사가 친절하게 인사말을 건넸다. “손님 여러분, 다 왔습니다. 목적지 인천국제공항 터미널입니다. 혹 잊으신 물품이 없는지 다시 한 번 확인하시고 안녕히 가십시오. 감사합니다.”


공항터미널에 내리니 우리가 내린 지점과 다른 아래층에서는 역시 공항버스에 오르는 사람들이 있었다. 공항터미널 3층 대합실은 떠나는 사람들과 보내는 사람들로 옹기종기 모여 있었고 한 녘에서는 출국 수속을 밟느라 야단이었다.

2004년도에는 인천~두바이 직항편이 없었다. 그러므로 일본을 거치고 일본에서 다시 두바이공항까지 간 뒤 거기서 탄자니아 다르에스살람으로 가는 항공편을 이용해야 했다. 우리는 대한항공에 몸을 실었다.

항공기는 동쪽의 일본으로 날았고 일본에서 갈아탄 뒤 우리나라 상공을 통과해 서쪽으로 날았다. 두바이 국제공항에 내린 뒤 면세점에서 이것저것 둘러보다 보니 서너 시간이 순간에 지나간 듯싶었다.

두바이에서 다르에스살람까지는 5시간이 족히 걸렸는데 지루하다고 느껴지지 않았다. 다르에스살람 국제공항에 도착하니 현지시각으로 이튿날인 11월30일 오후3시경이었다. 국제공항이라지만 에어컨이 없고 조그만 선풍기가 입국 수속 창구에서 돌아가고 있었다. 1시간 넘게 걸린 입국 수속이 처음으로 지루하게 느껴졌다.

앞서 아프리카에 나가 있던 친구 민공(閔公)이 나를 돌아보며 싱긋 웃었다. 이제 다 왔다. 여기가 목적지라는 뜻이리라. 내 예상은 적중했다.

“스님, 다 왔습니다. 오시느라 고생하셨습니다.”


“여기가 아프리카인가요? 여기도 우리와 똑같이 사람 사는 세상이겠지요.”

관련기사





밖으로 나오니 11월30일의 탄자니아 날씨는 후텁지근하다 못해 뜨거웠다. 같은 1층 다른 게이트에서는 입국절차를 밟는 이들로 북적이고 있었다.

서울의 도심공항터미널, 인천국제공항터미널, 오사카국제공항터미널, 두바이국제공항터미널, 다르에스살람 국제공항터미널 등 모든 터미널은 죄다 내리기만 하는 곳이 아니라 떠나기도 하는 곳이다. 도착과 출발이 같은 장소에서 일어나고 있다. 떠나는 사람과 보내는 사람이 같은 공간에서 이뤄지고 오는 사람과 맞이하는 사람이 같은 터미널에서 숨 쉬고 있다.

그게 계기가 돼 나는 동아프리카 탄자니아에 사찰 부지와 학교 부지를 매입해 종단에 기증했고 거기에 조계종단에서 ‘보리가람농업기술대학’을 세웠다. 이 학교가 한국의 문화와 아프리카 문화를 이어주는 터미널이 될 것이다.

알다시피 ‘천자문’은 ‘하늘 천(天)’에서 시작해 ‘잇기 야(也)’로 끝을 맺는다. 이음새의 뜻인 ‘잇기’다. 모든 책들이 ‘이끼 야(也)’로 풀고 있지만 나는 종결의 뜻 ‘터미네이션(termination)’이고 종점의 뜻 ‘터미널(terminal)’이라 봐 ‘잇기 야(也)’로 푼다.

종결은 그대로가 새로운 시작으로 이어진다. 마찬가지로 종점은 도착과 떠남의 복잡계(複雜系·복잡한 현상들의 집합체)로 이음의 지속이다. 우리는 ‘지금 여기’라는 시공간에 올라타고 있다. 우리는 과거에서 현재로 오고 있는가, 현재에서 미래로 가고 있는가.

동봉스님 경기광주 곤지암 우리절 주지

새 필진으로 참여한 동봉스님은 23세에 입산해 40여년 수행했으며 부산 안양사 주지, 서울 원각사 주지를 거쳐 95년 경기도 광주에 ‘우리절’을 창건했다. ‘일원곡’ 13권 등 많은 경전을 번역하고 ‘마음을 비우게 자네가 부처야’ 등 50여권의 책을 펴냈다. 아프리카 탄자니아 킬리만자로 국립공원 입구에 학교와 절을 건설해 아프리카 최초로 한국 불교를 전파하면서 언론의 주목을 받기도 했었다.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