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시론] 대통령들의 비극 끝내려면

임종건 대한언론인회 주필·전 서울경제신문 부회장

권력 사유화로 반복되는 비극

탄핵과 동시에 내각제 개헌 등

대통령 권한 견제 장치 마련을

우리나라의 길지 않은 헌정사에서 대통령들의 말로는 처참했다. 그것은 그냥 처참이 아니라 헌정사상 ‘최초’로 기록된 처참이었다. 이승만 초대 대통령이 4·19혁명으로 하야한 것이 시작이었다. 그것은 박정희 대통령의 시해라는 처참의 극한 사태로 이어졌다.


전두환 대통령은 7년 동안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고 퇴임했다. 5·18광주민주항쟁 진압의 지휘자였으므로 그의 퇴임 후가 편안할 리는 없었다. 그는 유배를 당하고 국회의 5공 청문회에 증인으로 출두한 최초의 전직 대통령이었다.

그것으로 그의 최초가 마감된 것은 아니었다. 김영삼 대통령이 집권한 후 전두환 대통령은 후임자인 노태우 대통령과 함께 5·18광주항쟁 탄압 및 불법 정치자금 조성혐의로 감옥에 간 최초의 전직 대통령이 됐다.

김영삼 대통령은 현직에 있는 동안 자신의 분신인 아들을 감옥에 보낸 최초의 대통령이었다. 한 푼의 정치자금도 받지 않겠다며 청와대의 식단을 칼국수로 바꾼 그였지만 ‘소통령’으로 불리던 아들 김현철씨는 기업들로부터 정치자금을 받았다. 자신이 감옥에 가는 것만큼 가슴이 아팠을 것이다.

국민들은 그런 비극이 되풀이되지 않을 것으로 알았다. 그러나 후임인 김대중 대통령은 아들이 셋이었는데 재임 중 세 아들 모두 사법 처리됐고 두 아들을 감옥에 보냈다. 그는 아들을 둘씩이나 감옥에 보낸 최초의 대통령이었다. 전임자의 비극은 하나도 교훈이 되지 않았다.


노무현 대통령에게는 최초의 기록이 많다. 첫째는 재임 중 국회에서 탄핵된 대통령이다. 탄핵은 헌법재판소에서 기각됐지만 국회의원 3분의2 이상의 찬성이 있어야 하는 대통령 탄핵이 독재정부도 아닌 민주주의가 ‘충만’했던 참여정부 시절에 가결된 것은 아이러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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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대통령은 재임 중 형을 감옥에 보낸 최초의 대통령이기도 했다. 그것으로 끝났어야 할 비극은 퇴임 후 불거진 재임 중의 불법 행위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던 도중 자살한 최초의 대통령이 됐다. 전현직을 불문하고 대통령의 자살은 세계적으로 유례가 드문 사건으로 국민들에게 준 충격은 컸다. 이명박 대통령은 내곡동 사저 문제로 특별검사의 수사를 받은 최초의 대통령이었지만 헌법의 재임 중 형사불소추 특권에 따라 직접 수사를 받지는 않았다.

지금 최순실 게이트에 휩싸인 박근혜 대통령은 이승만 대통령의 하야와 노무현 대통령의 탄핵, 이명박 대통령의 특검수사 압력을 동시에 받고 있는 형국이고 그에 앞서 검찰의 직접적인 수사 결과 피의자 신분이 된 최초의 현직 대통령이 됐다.

이처럼 한국 대통령의 말로는 참혹의 연속이었다. 더 이상 대통령에게 남아 있을 비극이 무엇일지 상상하기조차 끔찍할 지경이다. 대통령의 비극적인 말로는 박근혜 대통령의 이번 비극이 끝이어야 한다. 그러나 과연 그럴 수 있을 것인가.

이 모든 비극의 중심을 관류하는 것은 권력의 사유화다. 그것이 고쳐지지 않는 한 비극은 되풀이될 수밖에 없다. 시민들이 광장에 몰려가 ‘박근혜 하야’를 외치는 것은 대통령의 배신에 대한 분노이자 끝없이 비리를 되풀이하고 있는 기성 정치에 대한 분노다.

이런 상황에서도 정치권은 시민의 분노를 수렴하는 것 같지 않다. 여당은 친박 비박으로 나뉘어 계파싸움에 골몰하면서 국민의 분노가 가라앉을 때까지 시간 끌기를 하고 있고 야3당은 분노에의 편승 기회를 엿보고 있다.

시민은 하야와 퇴진을 주장할 수 있어도 국회는 법의 절차를 따라야 한다. 뒤늦게 야3당이 탄핵에 합의한 것은 다행이다. 헌법적 절차로 대통령의 위법 행위를 가리는 것이 탄핵이다. 대통령이 두 번씩이나 탄핵을 당하는 것은 대한민국의 불행이지만 탄핵은 법질서가 확립된 나라에서나 가능하다. 그렇지 못한 나라에서는 폭동이나 쿠데타가 대신한다.

탄핵과 동시에 추진할 일은 대통령의 권력 사유화를 근원적으로 차단할 이원집정제 또는 내각제 개헌이다. 대선 정국에서 당선이 유리할 것 같다고 판단하는 정당이나 후보자는 으레 대통령의 권한을 견제하는 개헌에 반대했다. 벌써 그런 세력이 등장하는 낌새다. 경계할 일이다. 임종건 대한언론인회 주필·서울경제신문 전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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