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가 자유무역협정(FTA)인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탈퇴를 천명한 도널드 트럼프 당선인이 대통령으로 신분이 바뀌면 TPP 관련 정책을 수정할 가능성이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트럼프 당선인이 선거 과정에서는 표를 얻기 위해 보호무역주의를 강하게 주장했지만 실제 무역정책을 집행할 때는 TPP에 대한 가치를 새롭게 인식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미국 보수성향 싱크탱크인 카토연구소의 사이먼 레스터 무역애널리스트는 30일 서울 삼성동 그랜드인터컨티넨털호텔에서 열린 ‘2016년 통상산업포럼 국제콘퍼런스’에서 ‘트럼프 행정부 하에서의 TPP의 미래’라는 발제문을 통해 이같이 주장했다.
레스터는 “트럼프가 선거운동 때 했던 발언을 감안하면 미국의 TPP 참여는 불가능하게 보일 수 있다”고 전제한 뒤 “그러나 실제 정책을 입안할 때면 선거용 수사가 잊히는 경우가 많다”고 밝혔다.
그는 “트럼프가 TPP의 가치를 재고할 이유가 존재하며 이에 따라 그의 생각 또한 바뀔 수 있다”고 덧붙였다.
레스터는 이에 대한 근거로 TPP 탈퇴는 미국과 동맹국 간의 관계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을 들었다. 무역협정은 동맹을 다지거나 여러 나라와 우호적인 관계를 맺는 좋은 수단인데 이를 포기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이다.
또 TPP가 무역 거버넌스나 태평양 지역 전반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수단으로도 요긴하다는 점을 지적했다. 미국이 TPP를 포기하면 중국의 영향권 아래에 미국 동맹국들이 끌려갈 수 있다는 것이다.
레스터는 “국내 정치를 살펴보더라도 의회를 장악하고 있는 공화당원 다수는 친무역, 친TPP 성향을 갖고 있다”며 “트럼프가 TPP를 거부하면 그들과의 갈등이 촉발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레스터는 이어 TPP는 트럼프가 원하는 목표를 달성하는 데 오히려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점도 강조했다.
레스터는 “트럼프가 높은 관세나 외국의 취약한 지적 재산 보호에 대해 걱정한다면 TPP는 그러한 이슈를 해결하는 데 도움을 줄 것”이라며 “TPP는 전반적으로 트럼프의 무역정책 목표를 반영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간 트럼프는 TPP 같은 다자무역체제 대신 양자 간 무역거래를 선호한다고 언급했지만 이에 대한 근거가 불분명하다는 점도 꼬집었다. 경험이 많은 미국 무역대표부(USTR) 등의 전문가는 트럼프 측의 우려가 잘못됐다는 점을 잘 설명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레스터는 그럼에도 트럼프가 TPP를 포기한다면 나머지 11개 참가국이 TPP를 추진할 수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레스터는 “트럼프 정부 하의 TPP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몇 달 정도의 시간이 더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산업통상자원부, 한국무역협회,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이 공동 개최한 이번 포럼에는 이샤오준 세계무역기구(WTO) 사무차장, 더글러스 어윈 다트머스대 교수 등이 참가해 통상 분야의 주요 과제를 논의했다.
어윈 교수는 “최근 세계 교역 둔화는 경기적 요인과 함께 구조적 요인이 복합 작용한 결과”라며 “여전히 무역은 경제성장의 주요 동력이며 각국은 보호무역주의에 적극 대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윌리엄 파워스 미국국제무역위원회(ITC)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디지털 무역은 무역 비용 감소, 시장접근성 개선을 통해 중소기업에 큰 기회 요인이 될 것”이라며 “각국은 TPP 등 무역협정을 통해 디지털 교역 장벽을 완화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우태희 산업부 2차관은 환영사에서 “다자무역체제를 지속·강화하기 위해 WTO의 역할과 위상을 제고하고 TPP,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 등 메가 FTA에 대한 논의를 이어가야 한다”고 밝혔다.
/세종=박홍용기자 prodigy@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