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통령 취임을 한 달여 앞둔 도널드 트럼프 당선인이 지난 2일(현지시간) 차이잉원 대만 총통과 전화 통화를 했다. 미 대통령 또는 당선인이 대만 지도자와 통화를 한 것은 1979년 미국이 대만과의 국교를 끊고 중국과 역사적 수교를 맺은 이래 37년 만에 처음이다. 중국은 당장 이를 ‘장난질’로 격하하는 한편 미국 측에 “‘하나의 중국’ 원칙이 훼손돼서는 안 된다”며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수십년간 지켜온 금기를 깨뜨린 트럼프 당선인의 대중전략과 지난 5월 취임 이후 중국과 대립각을 세워 온 차이 총통의 ‘외교적 쿠데타’가 미중 관계는 물론 양안 관계에까지 격변을 불러올지 국제사회가 주목하고 있다.
트럼프 정권 인수위원회는 이날 “트럼프 당선인이 차이 대만 총통과 통화했다”며 “양측이 긴밀한 경제·정치·안보적 관계에 대해 논의했다”고 밝혔다. 대만 총통부도 3일 성명을 통해 두 정상이 약 10분간 통화했으며 “국내 경기부양 촉진과 국방 강화로 국민이 더 나은 삶을 누릴 수 있게 해야 한다는 점에 공감했다”고 구체적인 대화 내용을 소개했다.
지난 1979년 미국과 대만 간 국교단절 이후 처음 이뤄진 양국 정상급 간 파격적 접촉을 어느 쪽이 먼저 제의했는지 관심이 불붙자 대만 정부는 “상호 연락을 앞두고 사전 합의했다”고 피해갔다. 엄청난 외교 문제를 일으켰다는 논란에 트럼프 당선인도 직접 나서 “미국이 대만에 수십억달러어치의 군사 장비를 파는데 (당선) 축하 전화도 받지 말라는 것이 참 흥미롭다”며 반박했다.
트럼프 당선인은 단순한 ‘축하 전화’라고 받아쳤지만 이날 통화는 중국 정부의 ‘하나의 중국’ 원칙 아래 대만을 국가로 인정하지 않아 온 미국 외교전략의 변화이자 중국에 대한 중대 도발로 간주될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이 때문에 대선 기간 동안 중국에 고율의 보복관세와 환율조작국 지정을 공언한 트럼프 당선인이 향후 미중 관계의 재정립을 겨냥해 고도의 전략적 행보를 한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두 정상 간 전화 통화를 처음 보도한 파이낸셜타임스(FT)는 “차기 미 행정부가 중국과 대만 정책에 큰 변화를 몰고 올지 현재로서는 명확하지 않지만 (통화가) 미중과 양안(중국과 대만) 관계의 외교 문제로 비화할 가능성이 있다”고 짚었다.
중국은 일단 미국을 향한 직접적 비난은 피하면서도 대만을 때려 우회적으로 강한 불만을 드러냈다. 중국 외교부는 3일 겅솽 대변인 명의의 성명을 통해 “미국 당국에 엄중한 항의를 제기했다”고 밝혔다. 앞서 왕이 중국 외교부장도 “하나의 중국 원칙은 어떤 간섭을 받거나 훼손돼서는 안 된다”면서 “대만 측이 일으킨 장난질로 국제사회에 형성된 하나의 중국 틀을 바꾸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미 정부가 수십년간 유지해온 하나의 중국 정책도 바꾸지 않으리라고 생각한다”면서 트럼프 측에 견제구를 날리는 것도 잊지 않았다.
이처럼 트럼프 정부 출범을 앞두고 주요2개국(G2)인 미중 관계가 교역뿐 아니라 양안 관계를 둘러싼 외교안보 문제에서도 악화되는 양상을 보이자 국제 외교가의 우려는 커지고 있다. 외교 전문가들은 미국이 계속 중국에 경제·외교적 압박을 강화할 경우 결국 중국도 그에 대응해 보복 카드를 꺼내면서 양 대국 간 갈등이 전방위로 증폭될 수 있다고 관측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미중 관계의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협력 대신 잠재적 위험이 커지고 있다”며 우선 북핵 제재에서도 양국 균열이 확연해질 수 있다고 예상했다. /베이징=홍병문 특파원 hbm@sedaily.com 뉴욕=손철 특파원 runiron@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