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시각] 광장의 기적, 시민을 깨우다

정민정 디지털미디어부 차장

정민정 디지털미디어부 차장정민정 디지털미디어부 차장




지난 3일 232만명의 시민이 촛불을 들고 광장으로 나왔다. 1차 촛불 집회 이후 누적 인원으로만 600만명을 넘어섰다. 그동안 우리는 먹고사는 일, 내 가족과 내 직장 외에는 관심을 두지 않는 ‘평범한 소시민’이었다. 하지만 변했다. 아니 변해야 했다. 살아 있었다면 올해 대학 캠퍼스를 밟았을 250명의 꽃 같은 생명이 속절없이 꺼져가는 것을 보면서, 밥 먹을 시간도 없어 컵라면과 숟가락을 가방에 넣어 다니던 청년의 안타까웠던 삶을 되새김질하면서 우리가 변하지 않으면 국가는 변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게 됐다. 깨어 있는 시민의 조직된 역량만큼 민주주의는 발전한다는, 그동안 먹고사느라 잊고 지낸 사실을 자각하며 광장을 수백만 촛불로 밝혔다.


광장에서 터져 나오는 목소리는 진보와 보수, 가진 자와 못 가진 자, 청년층과 노년층을 아우르며 이데올로기의 구분을 무색하게 만든다. 쇠파이프를 휘두르거나 화염병을 던지는 대신 경찰 차벽에 꽃 스티커를 붙여주고 경찰이 지방에서 상경한 집회 참가자의 기념사진을 찍어주며 ‘뜨거운 연대감’을 보여줬다. 대한민국의 광장은 폭력·부상자·연행자 없는 ‘3무(無)의 집회’를 이뤄내며 세계 민주주의 역사에 기록될 아름다운 족적을 남겼다. 그러면서도 지나칠 정도로 질서를 지켰으며 차갑도록 철저하게 뒷정리에 신경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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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 반대편에서는 이미 정치 지형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는 거대한 물결이 일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국회(930년 설립)를 갖고 있는 아이슬란드에서는 반(反)기성 정치를 기치로 내건 해적당이 최근 총선에서 원내 공동 제2당에 올랐다. 이탈리아에서는 기성 정치 체제에 반기를 든 ‘오성운동’이 수도 로마와 토리노에서 30대 여성 시장을 배출하는 등의 돌풍을 일으켰다. 지난해 12월과 6월 스페인에서 치러진 두 차례의 총선에서 신생 정당 ‘포데모스’가 제3당으로 부상하면서 양당 체제를 송두리째 흔들었다. 우리나라에서도 광장의 응축된 에너지를 바탕으로 시민민주주의를 실험하는 이들이 나오고 있다. 시민입법 플랫폼인 ‘국회톡톡’을 통해 법안을 제안하는 상향식 민주주의를 실험하는 정치 스타트업이 나왔고 사회 양극화를 해소하자며 민간이 주축이 된 비영리 사단법인 ‘격차 해소를 위한 국민포럼’이 오는 8일 국회에서 발족한다.

우리는 광장을 통해 분출된, 변화를 향한 열망을 조직화하고 시스템으로 구현해야 할 역사적 책무를 갖고 있다. 수백만 촛불이 빚어낸 광장의 기적이 누군가의 전리품으로 전락하지 않도록 우리는 칠흑같이 어두운 밤에도 깨어 있어야 한다. 곧 다가올 대선 정국에서 우리가 원하는 지도자상을 요구하고 대한민국 국민의 격(格)에 맞는 지도자를 선택해야 할 것이다. 더 중요한 것은 국가와 시민의 관계, 정책을 만들고 실행하는 모든 과정에서 민주주의의 본질적 가치를 구현하는 방향으로 대한민국을 재편해야 한다. 우리는 그럴 만한 자격과 능력이 있는, ‘위대한 대한민국’의 ‘위대한 국민’이기 때문이다. jminj@sedaily.com



정민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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