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정치일반

[시각] '위로휴가' 떠나는 낙선자들

김홍길 정치부 차장김홍길 정치부 차장




“현안은 많은데 상임위원장이 해외 간다고 일정을 못 잡고 있습니다.”


정부 모 부처 국회 담당 국장은 요즘 속이 탄다. 한 달 남은 19대 마지막 임시국회에서 처리가 돼도 타이밍이 늦은 법안들이 수두룩한데 상임위원장 부재로 논의 일정도 잡지 못하고 있어서다. 국회가 상임위라도 열어줘야 정부 입장을 설명하고 본회의 통과를 위한 협조를 구할 수 있는데 상임위가 열리지 않다 보니 길이 막혀버린 것이다.

여야 3당 원내대표가 최근 19대 마지막 임시국회에서 민생·경제 법안과 무쟁점 법안 처리를 약속했지만 정작 현장에서는 이 같은 괴리가 심상찮게 나타나고 있다. 특히 20대 총선에서 상임위원장이나 간사들이 낙선한 상임위의 경우 이 같은 고민은 더욱 크다.


정부 부처의 한 공무원은 “(20대 총선에서 낙선한) 상임위원장이 거의 한 달 간격으로 해외 일정을 잡은 곳도 있다”며 “4월 중순 해외를 다녀와 오는 5월 중순께 또 나간다고 하니 어이가 없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19대 국회 임기 마지막에 해외 일정을 집중적으로 잡아놓은 것은 누가 봐도 (낙선에 대한) ‘위로여행’으로 밖에 비쳐지지 않는다”며 “그렇게 욕을 얻어먹고도 마지막까지 비판을 자초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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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지난 2012년 5월 19대 국회 출범 후 17일 현재까지 접수된 법안은 총 1만7,000여건으로 이 가운데 어떤 식으로든 처리된 법안은 7,600건에 불과하고 나머지는 고스란히 계류된 상태다. 이 중 소관 상임위와 법사위(법제사법위원회) 가결도 못 마친 법안이 대부분이다.

19대 국회 상임위가 18개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계류법안 1만개를 기준으로 1개 상임위당 500건의 법안 심사를 해야 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이 때문에 임시국회 회기 내 상임위를 상시로 열어 법안을 심사하고 가결해 본회의에 상정해도 늦을 판인데 4·13총선에서 떨어진 상임위원장이나 상임위 간사들의 부재로 회의 일정마저 불투명하다 보니 공무원들의 의욕도 뚝 떨어진 상태다.

의원이나 정부는 저마다의 목적으로 입법을 추진한 것일 텐데 국회 돌아가는 상황을 보면 마지막까지 ‘역시나 국회’로 끝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한 부처 공무원은 “나라 경제가 엉망인데도 낙선했다고 ‘이제는 내 일이 아니다’라며 나 몰라라 하는 상황인데 당 대표들이 나서 지적해야 하는 것이 아니냐”며 “여야 3당 대표들이 모여 밥 먹고 나서 몇몇 법안을 통과시키겠다고 하지만 눈 가리고 아웅 하는 격”이라고 말했다. 언론에 부각돼 드러난 주요 쟁점 법안 외에도 부처별로 중요한 법안들이 수두룩해 상임위를 임시회 내내 열어 심사해도 부족할 판에 이를 바로잡을 여야 지도부의 리더십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지적한 것이다. 더구나 본회의를 앞두고 벼락치기로 상임위를 열어 법안을 심사하게 되면 나중에 뜻하지 않은 부작용을 양산하는 부실 법안도 우려되지만 상임위를 상시로 열어 법안을 심사해야 한다고 지적하는 여야 지도부가 있다는 얘기는 아직 들어보지 못했다.

3당 원내대표는 19대 국회가 유종의 미를 거둘 수 있도록 서로 협력하기로 합의했지만 핵심에 ‘상시적으로 상임위를 열도록 해서’라는 전제가 빠져 있다. ‘막판까지 일하는 국회’나 ‘유종의 미를 거두는 국회’라는 평가를 위해서는 남은 임시국회 회기 동안 모든 상임위가 풀가동하도록 지도부가 나서 압박하고 독려해야 하지 않을까.

/ what@sedaily.com

김홍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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