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9일 국회에서 가결되면서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이 대한민국호(號)의 국정을 이끌게 됐다. 황 권한대행은 기존의 국무총리에 이어 대통령 권한대행까지 1인 2역을 담당하게 된다.
황 권한대행은 이날 저녁 8시 발표한 대국민 담화에서 ‘최순실 국정농단’에 분노한 촛불 민심을 받들어 국정을 투명하게 운영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또 헌법재판소의 심리와 대선까지 최장 8개월 간 이어질 수 있는 권한 대행 체제에서 국민과 정치권도 차분하게 제 자리에 돌아와 줄 것을 요청했다. 황 권한대행은 담화문을 발표하기 앞서 야당이 국회-정부 간 정책협의체를 요구한 데 대해 “정부도 국회와 긴밀히 소통하겠다”면서 원론적으로 화답했다.
야당도 황교안 체제를 인정하기로 하면서 총리 탄핵까지 가는 최악의 상황은 막았지만 황 권한대행 앞에 놓인 과제는 풀기가 쉽지 않다. 추미애 민주당 대표는 탄핵안 가결 직후 역사교과서 국정화와 위안부 합의 철회를 요구했다. 중국의 반발을 사고 있는 한반도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도 따지겠다고 나섰다. 역사교과서 국정화는 사실상 철회 수순을 밟고 있지만 상대 국가가 있는 위안부 합의 철회나 황 권한대행이 적극 추진했던 사드 재검토는 외교 문제로 비화할 수 있는 난감한 문제다.
이런 상황을 고려한 듯 황 총리는 이날 담화에서 기존 국정 운영 방향을 고집하지 않을 뜻도 내비쳤다. 그는 “평화적 집회로 민주적 의사를 표시하는 모습에서 성숙한 대한민국의 미래를 볼 수 있었다”며 “정부는 국민 여러분의 목소리를 최대한 국정에 반영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실제 개별 정책을 논의하면서는 야당과 정부 간 논란을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그는 앞으로 총리로서 거의 손을 대지 않았던 외치도 담당해야 한다. 그는 권한대행으로서 이날 국가안전보장회의(NSC)를 주재했고 앞으로 대한민국을 대표해 국가 간 정상회의에도 참석할 수 있다. 특히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정부 출범 등에 따른 대응이 시급하다. 이에 대해 황 권한대행은 “새로운 행정부가 출범하는 변화에 대응해 한미 동맹을 비롯한 우방국과 협력을 굳건히 하는 등 국익을 지키겠다”고 다짐했다.
경제운용에 대해 황 권한대행은 “현재의 경제 비상대응체계를 공고히 하는 한편 침체된 경제를 회복시키고 일자리를 확충하는 데 총력을 기울이겠다”고 강조했다. 대통령과 총리 역할을 모두 수행해야 하는 권한대행은 청와대와 국무조정실 두 조직으로부터 모두 보좌를 받는다.
무엇보다 외교·안보·국방 등 분야의 경우 국무조정실보다 청와대 비서실이 훨씬 전문적인 만큼 이 분야에서 청와대 참모들의 보좌 역할이 필수적이라는 지적이다. 황 권한대행은 되도록 청와대가 아닌 정부서울청사에 머물며 직무를 수행할 계획이다.
대통령 탄핵이 이뤄진 날 황 권한대행이 보인 행보는 조심스러우면서 신중했다. 평소처럼 오전 8시 50분께 출근한 뒤 곧바로 유일호 경제부총리와 이준식 사회부총리를 비롯한 28명의 장관을 모두 소집해 긴급 간담회를 열었다. 저녁 7시에도 같은 멤버로 임시 국무회의를 열었다. 두 회의 모두 각각 1시간을 넘겨 비교적 길었는데 당장 챙겨야 할 사안이 많았음을 의미한다.
국회의 탄핵소추 가결안이 통과한 후 황 총리는 고 전 총리와 달리 개인 입장발표를 자제하고 박 대통령이 청와대 국무위원 간담회에서 먼저 입장을 밝히도록 배려했다. 이어 7시 임시 국무회의, 8시 대국민담화 발표, 9시 국가안전보장회의(NSC)를 주재하며 밤 늦게까지 숨 가쁜 하루를 보냈다. 총리실 내부에서는 일부 일정을 10일로 미루자는 의견이 있었지만 이를 물리치고 탄핵안이 가결된 지 5시간 만에 모두 소화한 셈이다.
한편 김병준 총리 후보자도 이날 공식적으로 후보자 사무실에서 철수하고 사실상 후보자 직위를 내려놓았다. 38일간 후보자로 있던 그는 이날 “(탄핵안 가결로) 자연소멸됐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