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이 경기 부양에서 금융 안정으로 시선을 돌렸다. 대내외 악재로 경기 전망이 한층 어두워진 가운데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예상보다 빠른 금리 인상 움직임에 사실상 금리 인하 막차를 놓쳤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는 15일 금융통화위원회 본회의 직후 기자간담회를 열어 “지난 10월 경제전망 때와 비교하면 상방 요인보다 하방 리스크가 좀 더 크다”며 “미국의 금리 인상 속도가 빨라질 가능성, 트럼프 행정부 출범으로 보호무역주의 강화에 대한 우려, 국내 정치적 불확실성 등을 지켜보고 1월 (성장률) 전망치를 다시 제시하겠다”고 말했다. 다음달 한은이 내놓을 경기 전망도 상당히 부정적일 것으로 전망된다. 최근 한국개발연구원(KDI)이 올해 4·4분기 우리 경제가 ‘제로(0)’ 성장하고 내년에는 2.4% 성장하는 데 그칠 수 있다는 전망을 내놓았다.
실제 최근 수출 대신 경기를 떠받치던 내수 지표마저 경고음이 울리고 있다. 2% 후반대 성장세를 떠받치는 건설의 힘은 빠지고 있다. 제조업 생산도 10월 -1.4%로 뒷걸음질쳤다. 소비 개선세도 미약하다. 이 총재는 “소비심리의 위축이 소비 회복을 제약하고 있다. 내년 고용 사정이 녹록지 않은 점을 감안하면 낙관적으로 볼 수 없다”고 말했다. 다만 수출에 대해서는 “올해 1·4분기가 일종에 저점이 아니었나 생각한다”며 “지금보다 내년이 개선되지 않겠냐는 기대를 가지고 있다”고 내다봤다.
성장률 하향조정이 예상됨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경기부양에 손을 들어주던 한은의 통화정책 기조는 금융 리스크 관리에 무게를 더 둘 것으로 보인다. 이 총재도 간담회 내내 경기 위축에 대한 우려가 있지만 금융안정이 더욱 중요하다는 뜻을 거듭 강조했다. 이 총재는 “기준금리를 결정할 때는 실물경제 흐름도 보지만 그에 못지않게 금융 안정 상황도 염두에 둬야 한다”며 “대외 불확실성이 높고 금융시장의 변동성이 대단히 높은 그런 상황에서는 금융 안정에 한층 유의할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금융당국의 억제책에도 가계부채는 되레 증가 폭을 키우고 있다. 지난 11월 은행권 가계대출은 8조8,000억원 늘어 지난해 10월(9조원) 이후 역대 두 번째 증가 폭을 기록했다. 이 총재는 “수차례 내놓은 정부의 가계부채대책이 만족할 만한 성적을 거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