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로터리] '탈' 추격형 경제성장 모델

임승태 전 금통위원





한국개발연구원(KDI)은 내년도 경제성장률을 2.4%로 낮춰잡았다. 일부 외국계 금융연구소는 1% 중반이라는 매우 암울한 전망치까지 내놓았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점은 내년의 낮은 성장률이 아니라 2011년 이후 무려 7년 넘게 2~3%의 저성장 속에 경기 사이클마저 사라졌다는 사실이다. 그동안 정부는 경기방어를 위해 매년 반복적으로 추가경정예산, 예산 조기집행 및 불용 억제 등 확장적 재정정책을 추진해왔다. 중앙은행 역시 정책조합이라는 명분하에 금리를 인하해왔다. 그러나 현실은 달라진 것이 없다. 여전히 우리는 저성장에 신음하고 있고 경제의 새싹은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면 지금이라도 무언가 다른 접근을 시도해 보는 것이 맞지 않을까? 비록 경제회생을 위한 특효약은 없다지만.


기본적으로 경제정책에는 재정정책과 통화신용정책 그리고 지원수단으로써 금융정책이 있을 뿐이다. 이들 정책수단 하에서 우리가 가진 병력과 화력을 다른 곳으로 집중하고 전술적 대형도 새롭게 포진시켜 보자. 우선 우리가 잘해왔던 ‘추격형 성장모델’ 즉 표준화돼있는 기술을 도입해서 값 싸고 튼튼한 제품을 만들어 수출하는 방식에 대한 미련을 버려야 한다. 이제는 축적된 경험과 기술을 토대로 새로운 수요를 창출하고 시장을 선도하는 미래지향적 산업구조 개편, 즉 ‘탈’ 추격형 성장 모델이 대안이다. 빅데이터를 기반으로 사물인터넷, 산업인터넷, 인공지능, 로봇 등 4차 산업혁명의 기술들을 우리의 중후장대 산업에 접목해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고 과감한 기득권 혁파와 규제 개혁을 통해 서비스산업에서 질 좋은 일자리를 만들어야 한다. 또한 빅데이터를 매개로 제조업과 서비스업을 융합하면 새로운 일자리가 생겨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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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성장 모델에서는 지금까지 유지해왔던 ‘선단형 경영’ 방식 역시 바뀌어야 한다. 급격한 기술 변화와 총수요 부족이라는 불확실성이 두려워 투자를 꺼리고 있는 대기업에 종전처럼 앞장서서 세계시장을 개척하고 중소협력업체들이 그 뒤를 따르게 해달라는 주문은 더 이상 실현되기 어렵다. 거꾸로 몸집이 가볍고 투자위험이 적은 벤처기업 등 수 많은 중소기업들이 먼저 나가서 시장을 탐색하고 대기업들은 이중 살아 돌아오는 기업들과 제휴하거나 인수합병(M&A) 하는 ‘역 선단형 경영’이 불확실성의 시대를 이겨나가는 전술적 대형으로 적합하다.

이러한 변화를 이끌어내는 데에는 시간이 걸린다. 과거에 경험했던 급격한 외부 충격은 빨리 극복될 수 있지만 지금처럼 내·외부 요인이 결합돼 나타나는 오래된 침체는 극복에도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 자칫 서둘러서 또 다시 초이노믹스 같은 일시적 경기부양책을 들이댄다면 우리 경제의 미래는 없다. 그리고 옳은 방향의 경제정책이라면 시간이 걸려도, 또 당장 효과가 나타나지 않더라도 우리는 끈기를 가지고 기다려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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