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연말특수커녕...자영업자 폐업 속출 르포]"매출 반토막...월세도 못내"

가게 설비 헐값에 내놔도

살 사람 없어 창고에 수북

19일 경기도 일산의 한 폐업대행업체 창고에 서울·경기 일대에서 사들인 중고 주방 집기류가 수북히 쌓여 있다. 폐업한 외식업체로부터 매입한 집기류는 최근 불경기로 재판매가 거의 이뤄지지 않고 있다./일산=최성욱기자19일 경기도 일산의 한 폐업대행업체 창고에 서울·경기 일대에서 사들인 중고 주방 집기류가 수북히 쌓여 있다. 폐업한 외식업체로부터 매입한 집기류는 최근 불경기로 재판매가 거의 이뤄지지 않고 있다./일산=최성욱기자




“커피머신, 냉장고, 주방 집기류 다 합쳐서 280만원입니다(폐업대행업체 직원).” “처음 살 때는 800만원 넘게 주고 샀는데…(커피숍 주인)” “최대한 많이 해드린 거예요(폐업대행업체 직원).”

지난 16일 최근 핫플레이스로 떠오른 서울 종로구 서촌의 한 커피숍. 더 받으려는 가게 주인 정모(46)씨와 폐업대행업체 직원 간 흥정이 오랫동안 이어졌다. 이 지역은 상권 좋기로 소문이 나 정씨는 지난해 월세 200만원에 내년 초까지 2년을 계약했다. 하지만 연말 특수를 앞두고 월세와 대출이자 부담에 정리하기로 결정하고 이날 폐업대행업체에 견적을 받기로 했다. 정씨는 “요즘 오전에는 손님이 한 명도 없다”며 “매달 꼬박꼬박 빠져나가는 월세를 도저히 부담하기 어려워 문을 닫게 됐다”고 하소연했다.


19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최순실 국정농단과 소비심리 위축,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김영란법) 등의 여파로 외식업계에서 폐업이 속출하고 있다. 한국외식산업연구원이 김영란법 시행 후인 10월 중소 자영업자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폐업할 의사가 있느냐’는 물음에 29.4%가 ‘그렇다’고 답했다. 지난달에도 26.9%로 비슷한 수준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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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촌에서 음식점을 운영하고 있는 박모(64·여)씨는 “주말 장사로 먹고사는데 지난해와 비교하면 매출이 딱 절반 수준”이라며 “촛불집회가 열려도 주중에 까먹은 매상을 채우기도 부족하다”고 전했다. 인건비라도 줄여보겠다며 낮에는 종업원 없이 혼자 일하고 있지만 월세 내기도 빡빡한 상황이다. 이 음식점이 위치한 골목에는 비슷한 메뉴를 파는 식당만 5개 이상 몰려 있었다. 모두 비슷한 처지다.

장사가 안 되면서 건물주들도 난감한 상황이다. 인근 한 공인중개사는 “계약기간이 끝나도 들어오겠다는 사람이 없어 건물주와 세입자가 서로 눈치만 보는 형편”이라며 “이런 분위기가 내년 상반기까지 계속되지 않겠느냐”고 걱정했다. 경기불황의 여파가 골목상권으로 대표되는 일반식당과 커피숍 그리고 치킨집·호프집 등으로 번지고 있다. 여기에 최근에는 조류인플루엔자(AI)까지 덮쳐 소비심리를 더욱 위축시키고 있다.

폐업대행업체들도 고민이 많다. 외식업계의 폐업이 급증하면서 일감이 두 배 가까이 늘었지만 사들인 중고 집기류의 판매가 거의 이뤄지지 않고 있다. 폐업대행업체에서 매입담당 업무를 담당하는 김경한(48)씨는 이날 찾은 커피숍 외에도 폐업을 앞둔 서울 시내 가게 5곳의 견적을 보러 다녔다. 그는 “요즘 폐업하는 곳이 워낙 많아 오래된 가게의 집기류는 아예 거들떠보지도 않는다”며 “폐업은 많고 창업은 없어 웬만한 물건은 사와도 회전이 안 돼 그대로 창고에만 쌓인다”고 설명했다. 폐업하는 곳의 물건을 중고로 매입해 개업하는 곳에 판매, 수익을 남기는 구조인데 사와도 팔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최근 국세청이 발표한 자료를 보더라도 음식업을 하는 자영업자들의 상황은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 국세청이 발표한 2005~2014년 개인사업자 신규·폐업 현황을 보면 창업은 967만개, 폐업은 799만개로 집계됐다. 이 중 음식점 폐업은 172만개로 전체 폐업의 21.6%나 차지했다. 이러한 자영업자들의 몰락은 저성장으로 소비가 크게 둔화된 것이 주원인이다. 여기에 올해는 김영란법과 AI 등의 여파까지 겹치면서 타격이 더 심화하고 있다. 또 개인 음식점보다는 프랜차이즈 매장을 선호하고 대형 쇼핑몰에서 소비하는 패턴이 확산되는 점도 개인 자영업자들에게는 불리하게 작용하고 있다. 강병오 중앙대 산업창업경영대학원 겸임교수 “경기위축 속에 소비자들의 저가수요가 확대되자 중소 상인들의 출혈경쟁이 커지고 있는 상황”이라며 “매출이 줄면서 결국 폐업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고 말했다. /최성욱·박우인기자 secret@sedaily.com

최성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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