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A그룹은 여러 계열사를 통해 수백 개의 지적재산권(IP)을 보유 중이다. 지적재산권이 계속 늘어나면서 이를 효과적으로 통합해 관리·운용하고자 신탁제도를 활용하려 하는데 금융사에 관리·운용을 맡기려니 막상 꺼려졌다. 주로 돈을 맡아주는 금융사가 지적재산권을 효율적으로 관리해줄 수 있을지 의문이 들었기 때문이다.
# B씨는 100억원 규모의 자산가다. 현금보다는 주로 대출 채권을 자산으로 보유하고 있는데 사업 때문에 5년 동안 외국에 머무를 일이 생겼다. 이 때문에 다양한 자산을 한 번에 신탁으로 넘길 생각이다. 그런데 수탁자인 금융사가 제대로 채무인한테 원리금을 받아주고 이를 관리해줄 수 있을지 걱정이 됐다.
앞으로 A그룹과 B씨의 걱정을 해소할 수 있는 특화 신탁전문회사가 등장할 것으로 보인다. 주로 금융사가 수행한 신탁업무를 독립된 전문회사가 맡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기업·개인(위탁자)이 모든 형태의 자산을 묶어 금융사에 위탁해도 이를 특징별로 쪼개 다른 신탁전문회사에 관리·운용을 맡기는 재신탁도 허용된다
20일 금융권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금융위원회가 주도하는 신탁업 개선 태스크포스(TF)는 신탁전문회사 제도 도입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금융위는 신탁업의 전문성 강화와 경쟁력 촉진 차원에서 이 같은 안건을 긍정적으로 검토한 것으로 전해졌다.
신탁업은 자본시장법에 규정된 6개 업무 단위 중 하나로 금융당국은 기본적으로는 은행·보험·증권 등 금융사(46개사 인가)에만 겸영 형태로만 인가를 내줄 수 있다. 부동산 자산만 전문적으로 관리·운용하는 부동산신탁회사(11개사 인가)만 지난 1991년부터 예외적으로 신탁업 진출을 허용해줬다.
금융당국과 업계는 신탁전문회사 제도가 도입되면 신탁업을 통한 자산관리 서비스의 적용 범위가 확장되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예컨대 위의 사례에서 A그룹은 지적재산권의 관리와 운용에 특화된 신탁전문회사에 자산을 맡기면 되고 B씨는 채권 회수 신탁전문회사에 매출 채권 자산을 위탁하면 되는 것이다. 아울러 위탁자의 자산을 단순히 보관해주는 형태의 ‘관리형 신탁회사’ 또는 적극적으로 자산을 굴려서 수익을 내주는 ‘운용형 신탁회사’ 등 신탁 목적에 따라 다른 전문회사의 출현도 가능하다. 실제 일본에서는 신탁전문회사를 업무 범위에 따라 관리형과 운용형으로 나눠 허가 요건까지 차별화했다. 신탁업 개선 TF는 금융지주가 신탁전문회사를 자회사로 둘 수 있도록 허용하는 방안도 검토한 것으로 전해졌다.
전문신탁회사 제도의 활용도를 높이기 위해서는 재신탁 제도가 함께 도입돼야 한다는 의견도 신탁업 개선 TF에서 나오고 있다. 재신탁은 말 그대로 기업·개인의 자산을 관리·운용하는 신탁회사(수탁자)가 특정 재산만 떼어내 신탁전문회사에 맡기는 것을 의미한다. 예를 들면 위탁자가 돈과 부동산을 수탁자인 A은행에 맡겼는데 부동산만 전문적으로 관리·운용하길 원한다면 A은행이 이를 분리해 B부동산신탁회사에 넘겨주는 것이다. 재신탁 제도는 금융위가 2012년 자본시장법 개정을 통해 한 차례 도입을 추진한 바 있어 이번 신탁업 개선 TF에서도 활발한 관련 논의가 이뤄진 것으로 알려졌다.
금융투자업계의 한 관계자는 “신탁업을 겸영 형태로 하는 은행·보험·증권 등의 금융사는 금전이나 증권 자산 외에는 관리·운용 업무에 한계를 보일 수밖에 없다”며 “특수한 형태의 자산은 재신탁 제도를 활용해 전문신탁회사에 넘겨주면 더 전문적인 자산관리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