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스포츠 라이프

[여행-다이세쓰산 국립공원]눈꽃이 그린 水墨...시간이 멈춘 雪國

삿포로서 3시간여 쉼없이 달려

어둠 내려앉은 아사히카와市 도착

눈꽃 뒤집어쓴 도로 양편따라

차보다 높은 '설벽' 성처럼 이어져

눈탓에 등정 대신 전망대 오르자

은빛 능선 끝없이 펼쳐진 장관

고단했던 여정 보상받기에 충분

눈을 뒤집어쓴 아사히카와시 인근의 농촌마을.눈을 뒤집어쓴 아사히카와시 인근의 농촌마을.


“해설사 배정은 어렵습니다.” 홋카이도관광청에 취재를 위한 해설사 배정을 요청했더니 돌아온 대답이다. 이유인즉 “가족과 함께하는 여행은 사적인 것이므로 해설사 지원이 어렵다”는 것이다. 막막했다. 일본어를 못하는 처지에 눈으로만 훑어보고 쓰는 기사의 완성도가 걱정됐다. 우리말로 듣고 써도 정확성을 담보할 수 없을 때가 많은데 어림짐작 취재로 기사를 써야 할 판이다. 그래도 다 늙어빠진 감성만 믿고 삿포로 신치토세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12월에 홋카이도로 떠난 이유는 다이세쓰산(大雪山)국립공원을 보기 위해서였다. 굳이 다이세쓰산을 보려고 작심한 것은 취재를 준비하기 위해 “홋카이도에 설경을 취재하려고 하는데 언제 가는 게 좋겠느냐”고 관광청에 물었더니 “요즘은 온난화 때문에 홋카이도에서도 12월에는 눈 구경을 하기가 쉽지 않다”고 했다.


눈이 없다고 하니 눈이 있는 다이세쓰산까지 가서 취재를 할 생각이었다. 최소한 그곳에는 눈이 있을 것 같았다. 이름이 다이세쓰(大雪)인데 설마 눈이 없을까.

그런 기대에 부응이라도 하듯 공항에 도착해서 차를 렌트해 숙소로 가는 중에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여장을 풀고 저녁 식사를 하러 나오니 함박눈이 펑펑 쏟아지고 있었다.

이튿날 빌린 차를 타고 삿포로를 출발해 아사히카와(旭川)로 향했다. 눈은 그쳤지만 삿포로 도심에는 눈이 깔려 있었다. 고속도로로 들어서자 길은 두꺼운 눈으로 포장을 한 번 더 한 상태다. 현지 운전자들은 이런 환경에 익숙한 듯했지만 조심 운전을 하기는 이방인인 나와 다를 바 없었다.

내비게이션 안내로는 삿포로에서 다이세쓰산까지 세 시간이면 충분할 것 같았는데 중간에 길을 한번 잘못 든 탓인지 예정된 시간이 지나도록 산은 보이지 않고, 인적 끊긴 시골 길만 이어졌다. 광활한 평야는 눈을 뒤집어쓴 채 숨을 죽이고 있었다. 한참을 운전해도 인가가 보이지 않는 길이 이어졌다. 눈이 그친 곳의 하늘은 파랗고, 눈이 오면 하늘이 어두워졌는데 구름에 가려 파란 하늘이 안 보이는 곳에서 촬영한 사진은 흑백인지 컬러인지 구분할 길이 없었다.


아사히카와는 홋카이도의 정중앙에 위치한 인구 35만의 도시로 다이세쓰 산맥기슭 언저리인 가미카와 분지 중앙에 있는데 170개나 되는 강이 흐르는 곳으로 유명하다. 많은 강이 흐르고 있는 만큼 지난 1932년 건축 당시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아사히카와의 상징 아사히바시 등 총 760개나 되는 교량이 도로를 연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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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눈을 뒤집어쓴 아사히카와는 어디가 강이고, 어디가 다리인지 알 길이 없다. 그저 산으로 향하는 도로로 엉금엉금 차를 몰아가는 와중에 도로 양쪽에는 차보다 훨씬 높은 눈의 벽이 성처럼 이어졌다.

기자가 향하는 다이세쓰산공원은 홋카이도에서 제일 높은 해발 2,291m의 아사히다케산(旭岳)을 주봉으로 하는 일본 최대의 국립공원이다. 다이세쓰산 연봉의 북부는 아사히다케산 외에 호쿠친산·하쿠운산·구로다케산 등이 지름 6㎞에 이르는 중앙 화구를 둘러싸고 있다는데 눈 폭탄이 내린 길을 올라 확인해 볼 수는 없었다.

시내를 벗어나 한 시간쯤 달렸을까. 아직 눈길은 끝나지 않았는데 도로 왼쪽에 나무로 지은 산장이 눈을 뒤집어쓰고 있었다. 그 옆으로 ‘다이세쓰산 국립공원’이라는 입간판이 보였다.

산장 안으로 들어가 직원을 찾아 ‘산을 더 올라갈 수 있는지’ ‘안내책자에 명물로 소개된 로프웨이(케이블카)를 탈 수 있는지’를 물었다. 자신을 지배인 간바야시 야스코라고 소개한 직원은 “본격적인 스키시즌을 앞두고 케이블카를 정비하고 있다”며 “훈련을 와 있는 크로스컨트리 스키 선수들 외에는 손님을 받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인터넷 검색으로는 ‘케이블카는 일부 구간만 정비하고 있다’고 돼 있었는데 상황은 딴판이었다. 망연자실한 우리 처지가 딱했는지 간바야시 지배인은 “위층으로 올라가면 산 정상이 한눈에 들어오는 전망이 나온다”며 우리를 안내했다.

계단을 올라 2층 전망대로 올라가자 1층에서는 나무에 가려 보이지 않던 산 정상이 모습을 드러냈다.

여느 산의 정상이 거뭇거뭇하게 흙이나 나무 색깔을 띠고 있는 것과 달리 온통 흰색을 뒤집어쓴 모습이 장관이었다. 장대한 산의 설경은 4시간 동안 눈길을 헤치고 온 수고를 위로 받기에 충분했고 문명세계로 돌아가기 위한 나머지 한 시간의 여정까지도 보상을 받고 남음이 있었다. /글·사진(아사히카와)=우현석객원기자

눈길을 헤치고 천신만고 끝에 문명세계로 돌아 와 료칸에서 찍은 아사히카와의 야경.눈길을 헤치고 천신만고 끝에 문명세계로 돌아 와 료칸에서 찍은 아사히카와의 야경.


다이세쓰산 국립공원의 온천산장 2층에서 바라본 산 정상. 하얀색 정상이 사뭇 위압적이다.다이세쓰산 국립공원의 온천산장 2층에서 바라본 산 정상. 하얀색 정상이 사뭇 위압적이다.


문성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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