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경제·금융일반

[리빌딩 파이낸스 2017] 낙하산 인사 전문성 없이 자리만 꿰차...금융산업 발전 '발목'

1부. 금융산업 지배구조를 다시 본다

<2> 멈추지 않는 낙하산

감사·사외이사 등 외부 민원 창구로 전락

낙하산 방지법 등 강력 견제장치 도입 시급

2316A09 금융업계 임원 중2316A09 금융업계 임원 중


‘한국연예예술인총연합회 명예회장, 경남여성정책발전위원, 국민통합21 부산 사하갑 지구당 위원장, 한국윤활유공업협회 상근부회장’

이들은 각각 한국자산관리공사·주택금융공사·예금보험공사·신용보증기금 등 국내 주요 금융공기업 비상임이사의 주요 전직이다. 내로라하는 금융공기업의 비상임이사인 이들의 이력은 꼼꼼히 살펴봐도 금융업과 관련성을 찾기 힘들다. 국내 금융산업에서 낙하산 관행은 뿌리가 깊다. 최고경영자(CEO) 낙하산은 외부의 눈이 많아 줄었다지만 사각지대인 감사·사외이사 등으로 낙하산은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제윤경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최근 9년 동안 금융업계 임원급으로 내려온 낙하산 인사의 수가 무려 1,004명에 이른다고 밝힌 바 있다.


무엇보다 경영의 중심을 잡아줘야 하는 금융회사 사외이사들의 이력은 한심한 수준이다. 경제개혁연구소의 2016년 금융회사 사외이사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국내 109개 금융사의 사외이사 447명 가운데 46.1%인 206명이 전문성이나 독립성이 의심된다. 금융기관의 ‘워치독’ 역할을 해야 할 감사와 사외이사가 전문성은커녕 기본적인 금융지식조차 갖추지 못한 채 자리만 꿰차고 있어 우리나라 금융산업 발전의 발목을 잡는 요인이 되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최운열 민주당 의원은 “감사와 사외이사는 낙하산 비판의 사각지대여서 폐해가 보다 심각하다”며 “최소한 회계장부를 보고 독해할 줄 알아야 하는데 금융지식이 없는 사람이 정치권에서 내려오다 보니 회계장부조차 읽지 못하는 이들이 태반에 이를 정도”라며 낙하산 관행을 꼬집었다.


금융회사 지배구조 모범규준이 도입되면서 CEO·임원 등 눈에 보이는 낙하산에 대해서는 일부 개선이 이뤄졌으나 감사·사외이사 선임은 감시의 눈을 피해 더 교묘한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다. 우리카드가 지난해 4월에 선임한 반채인 사외이사는 선임 과정에서도 논란을 빚었다. 그는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의 가까운 인척으로 국가정보원에서만 30년간 재직했다. 우리카드는 2015년 3월26일 정기주총이 끝난 뒤 1주일이 지난 4월3일 임시주총을 열어 반씨를 사외이사로 선임했다. 규정상 사외이사 선임은 사외이사후보추천위를 거쳐야 하는데 임시주총 당일에 열린 후보추천위에서 반씨를 추천해 사실상 요식행위였다는 지적을 받았다. KB손해보험은 올해 박진현 전 경북지방경찰청장을 사외이사로 선임했고 흥국생명은 국정원 출신의 윤재동 사외이사를 새로 임명했다.

관련기사



국책은행 계열사의 경우 이 같은 행태가 더 심하다. 탁세진 IBK캐피탈 사외이사는 여의도순복음연합 법인사무국장 출신으로 2007년부터 현재까지 여의도순복음연합 감사위원이 주요 경력이다. IBK저축은행의 경우 지난달 강일원 전 청와대 행정관을 사외이사로 선임했다. 강 사외이사는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청와대 정무수석실에서 일하다가 20대 총선을 앞두고 사임한 뒤 부천 소사구 새누리당 예비후보로 나섰으나 당내 경쟁에서 고배를 마신 인물이다.

금융사의 감시인 역할을 해야 할 감사 역시 노골적으로 정치권 인사가 내려와 자리만 차지하고 있는 경우도 허다하다. 신용보증기금 감사는 김기석 한나라당 의원이, 기술보증기금 감사는 서병수 새누리당 의원 후원회 출신 정치인인 최성수씨가, 유암코 감사는 김희락 전 국무총리실 정무실장이 맡고 있다. 이수룡 기업은행 감사도 새누리당 대선 캠프 출신인데다 역시 ‘정피아’ 출신인 정수경 우리은행 감사는 재직 중이던 올해 3월 새누리당에 총선 비례대표 신청을 해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CEO 낙하산은 줄었다지만 지난해 KB금융지주 사장 인선과 최근 기업은행장 선임을 전후해서도 현기환 전 청와대 정무수석이 간다는 소문이 파다하게 돌았다.

금융사의 영업 과정에서 낙하산 임원들이 일으키는 폐해는 심각하다. 전문성이 결여된 사외이사나 감사는 금융사 모니터링 역할은 접어둔 채 외부 민원 창구로 전락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낙하산 방지법과 같이 강제적인 견제장치를 제도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박용진 민주당 의원은 금융회사 임원의 자격요건에 2년 이상의 금융회사 근무경력 또는 금융 관련 분야 교수, 변호사 또는 공인회계사, 금융 관련 공공기관 경력 등 전문성 요건을 추가하는 것을 골자로 한 ‘금융회사의 지배구조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발의했다.

이승희 경제개혁연구소 연구위원은 “사외이사 자격 기준을 강화하고 외부 주주들이 추천하는 독립적인 사외이사가 선임될 수 있도록 선임 절차를 개선해야 한다”면서 “‘자격 있는 사외이사’를 선임하겠다는 금융사의 자정노력도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김병주 서강대 명예교수는 “금융에서 삼성전자·현대자동차가 나오지 않는다고 하지만 삼성전자 사장을 정부에서 낙하산으로 내려보내지 않듯 금융의 후진성은 낙하산 인사와 무관하지 않다”고 말했다. /김보리·조권형기자 boris@sedaily.com

김보리 기자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