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애연기자의 ‘담배 한 개비’] 담뱃갑 경고 그림, 과연 효과가 있을까?

흡연자의 시선에 비친 '담뱃갑 경고 그림' 도입

장기적인 관점에서 효과 있을 것

경고 그림 외면하기 위한 '꼼수' 등장

23일부터 제조되는 모든 담배제품의 담뱃갑에 흡연 폐해를 나타내는 경고그림이 표기된다. /연합뉴스23일부터 제조되는 모든 담배제품의 담뱃갑에 흡연 폐해를 나타내는 경고그림이 표기된다. /연합뉴스





흡연자들에게 담배 선물은 ‘가뭄에 내린 단비’와 같습니다. 해외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지인들이 ‘맛이나 보라’며 담배를 보루째 들이밀 때마다 반가운 마음을 금할 길이 없습니다. 한 갑에 4,500원이라는 부담스러운 가격에 담배를 구입하다 지친 지갑에 잠시나마 위로를 줄 수 있기 때문에 선물이 들어올 때면 절대 마다하지 않습니다.

면세점을 벗어나 현지에서 사온 담배라면 이야기는 달라집니다. 담뱃갑 경고 그림이 붙어 있는 현지 담배들은 흡연 욕구를 단번에 없애버리기 때문에 선물을 받더라도 케이스는 과감히 버린 후 ‘형형색색’ ‘알록달록’한 국내 담뱃갑에 옮겨 담아버립니다.

tvN ‘SNL’ 방송화면 캡처tvN ‘SNL’ 방송화면 캡처


이제 이마저도 쉽지 않은 현실이 될 것 같습니다. 당장 23일부터 국내에서 제조되는 모든 담뱃갑에 흡연 경고 그림이 부착되기 때문이죠. 지난 2015년 1월부터 무려 80%(기존 2,500원에서 4,500원으로 인상)가 인상된 ‘2015 담뱃값 인상 쇼크’ 이후 새로운 시련이 흡연자들에게 닥친 것입니다. 정부가 공개한 담뱃갑 부착 경고 그림은 총 10종입니다. 폐암부터 후두암, 방광암 등 흡연으로 인해 발생하는 질병에 걸린 사람을 적나라하게 등장시킨 그림 5종과 간접흡연, 조기사망 등 비흡연자에게 발생할 수 있는 악영향을 담은 그림 5종이 공개됐습니다. 23일부터 제조되는 담뱃갑 앞·뒷면에 각각 30%나 되는 공간에 경고 그림이 놓이는 것이죠.

보건복지부가 보도자료를 통해 제시한 담뱃갑 경고 그림 도입 후 흡연율 변화.보건복지부가 보도자료를 통해 제시한 담뱃갑 경고 그림 도입 후 흡연율 변화.


흡연자들 사이에서는 정부가 경고 그림을 넣겠다며 그 근거로 제시한 해외자료에 대해서 갑론을박이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정부는 경고 그림 부착만으로 흡연율이 무려 4.2%나 떨어지게 될 것이라고 호언장담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경고 그림 부착을 의무화한 국가들이 대부분 흡연율 감소 효과를 봤다는 논리죠. 일례로 캐나다는 경고 그림을 도입하기 직전인 2000년 전체 흡연율이 24%에 달했지만, 도입한 해인 2001년 22%로 줄어들었고, 2005년에는 20%까지 감소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정부가 내세우는 통계는 ‘자연적인 흡연율의 감소’를 고려하지 않았다는 맹점이 있습니다. 캐나다의 경우 경고 그림 도입 전후 5년간의 흡연율 추세를 보면, 도입 전 5년 동안에는 연평균 1%가 감소했지만 도입 후 5년 동안에는 연평균 0.4%가 감소해 오히려 흡연율 감소 추세가 완만해졌습니다. 싱가포르의 경우, 흡연율이 2004년 12.5%였으나 경고 그림을 도입한 이후 오히려 2012년에는 14.1%로 증가한 사례도 있습니다.

외국에나 있던 경고 그림이 국내에서 판매되는 담뱃갑에도 생기게 됨에 따라 흡연자들의 반응은 둘로 엇갈리고 있습니다. 한 쪽은 “이왕 이렇게 된 거 이참에 끊어버리자”라는 반응입니다. 줄어드는 흡연 공간과 끊임없이 나오고 있는 ‘핍박’에 견디다 못해 흡연자 그룹에서 ‘엑소더스’를 선언해 버린 것이죠. 아마 정부에서 경고 그림을 도입하며 의도한 것도 이와 다르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문제는 다른 한 쪽입니다. 이들은 “이렇게 할 것이면 아예 담배를 만들지 마라. ‘세금덩어리’ 담배를 비싼 돈을 주고 사서 피우는 것도 억울한데 이제는 혐오스러운 그림까지 붙이는 것이냐”며 펄쩍 뛰고 있습니다. ‘의지박약’형 인간인 저 역시도 이번 경고 그림 도입 만큼은 후자와 뜻을 같이 하고 있습니다.




도입을 앞둔 요즘, 담뱃불이 붙여지는 어느 곳에서나 ‘경고 그림이 꼭 필요한가’에 대한 격렬한 토론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평소 금연 의지가 있었던 흡연자들의 경우 인터넷 검색을 통해 금연보조치료제를 구입하거나, 전자담배를 구매하기 위해 대리점을 찾아야겠다는 다짐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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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대로 금연 의지가 없는 흡연자는 곧바로 ‘꼼수’를 찾기 시작했습니다. 가장 먼저 등장한 것이 8,90년대에나 쓰였을 법한 ‘담배 케이스’죠. 시중에 판매되고 있는 담배 케이스는 가죽부터 스테인리스까지 다양한 소재로 제작되고 있습니다. 실제 경고 그림 부착이 코앞으로 다가온 시점부터 흡연구역에서 담배 케이스를 사용하는 흡연자들도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담배 케이스를 직접 사용해 본 지인들은 기존 담뱃갑처럼 가벼운 압력에 담뱃갑이 구겨지거나 주머니에 담뱃잎을 남기는 ‘불상사’를 막을 수 있다며 호평까지 남길 정도입니다.

경고 그림이 없는 담뱃갑을 모아서 대용으로 쓰겠다는 흡연자도 많습니다. 도저히 경고 그림이 부착된 담배를 가지고 다니면서 피울 수 없다며 그전까지 최대한 담뱃갑을 많이 모아 내용물만 옮겨 쓰겠다는 것입니다.

아예 담배를 사재기 하겠다는 흡연자도 있습니다. 경고 그림이 부착되는 담배는 23일 이후 생산되는 제품이 해당되기 때문에 미리 많은 물량을 구입해 두겠다는 것이죠.

지금껏 여러 난관을 극복하며 애연 생활을 이어가고 있는 저 역시도 ‘꼼수’ 하나를 생각하고 있습니다. 보통 화장품을 넣어 다니는 파우치 하나를 사서 그 안에 개비만 담아 다니면 혐오스러운 그림을 조금이나마 외면할 수 있지 않을까요?



이번 담뱃갑 경고 그림 도입에 대해 외국 생활을 오래 한 흡연자들은 “처음에만 반짝 관심을 가질 뿐, 점점 익숙해져 기존 담배와 차이점이 없어질 것”이라고 입을 모았습니다. 흡연을 오랫동안 지속해 온 흡연자들에게는 혐오스러운 경고 그림이 담뱃갑의 장식처럼 의미 없게 된 ‘경고 문구’와 다를 바가 없다는 것이죠. 경고 그림 도입 자체에 대한 적나라한 불신을 보여줬습니다. 물론 일부 흡연자들의 생각으로 걱정스러워 하는 일반 흡연자들의 의견과는 차이가 있습니다.

다만 경고 그림으로 인해 ‘신규 진입’을 차단할 수 있다는 데에는 대부분의 흡연자들이 동의하고 있습니다. 편의점 계산대 뒤편 형형색색의 예쁜 담뱃값에 끌려 흡연을 시작한 사람들이 많은 탓에 혐오스러운 그림 한 컷만으로도 담배에 대한 접근성이 줄어들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한정판으로 출시되는 담뱃값을 마치 ‘명품’이라도 되는 것처럼 소중히 모았던 경험을 떠올려 보면 담뱃값 디자인의 변화에 얼마나 흡연 욕구가 달라지는지 알 수 있을 정도입니다. 금연단체들이 주장하고 있는 일종의 ‘진입 장벽효과’ 역할을 기대할 수 있다는 논리와 같은 맥락이죠.

저는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고민이 깊습니다. ‘최후의 수단’인 금연을 선택할 수는 없는 노릇이고, 그렇다고 혐오스러운 그림을 매일 볼 수도 없으니.

이종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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