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일 방송된 KBS2 ‘다큐멘터리 3일’에서는 ‘쪽방촌의 기적 - 요셉의원 72시간’이 전파를 탔다.
연말을 맞은 영등포 번화가는 쇼핑객들의 발길과 화려한 네온사인으로 빛난다.
이곳에서 몇 발자국만 떨어져 골목길로 접어들면 나타나는 파란색의 판자집 지붕들. 바로 600여 세대의 주민들이 생활하는 영등포 쪽방촌이다.
컴컴한 방 안, 몸 하나 겨우 누일 공간에 각자가 외로이 지내는 곳. 고된 일이 끝나면 한 칸의 방 외엔 갈 곳 없던 이들에게 20여년 전, 치유의 공간이 생겼다.
진료비에 드는 비용은 0원, 하루 60여 명의 봉사자들과 20여 명의 의료진이 대가로 받는 비용도 0원인 무료병원 ‘요셉의원’이다.
의료보험의 혜택조차 받지 못하던 주민들은 이곳에 들러 무료로 진료를 받고 빵 한쪽 안부 한 마디를 나누며 그 어떤 하루보다 환한 일상을 맞는다. 환자들과 정을 나누는 봉사자들의 얼굴에서도 좀처럼 미소가 떠나지 않는다.
■ 쪽방촌에 찾아 온 기적, 나눔
요셉의원의 시작은 1987년, 선우경식 원장이 신림동 시장 2층 건물에 열었던 낡은 병원이다. 열악한 환경 탓에 약은 해외에서 구해와야 했고, 한 번 쓴 주사바늘은 매번 소독해서 써야 할 만큼 어려웠던 병원 살림에 걱정이 끊일 날은 없었다.
그런데 그때마다 기적이 찾아왔다. 누군가로부터 라면후원이 들어왔고, 환자를 치료할 의료도구가 없을 때면 어디선가 도움의 손길이 찾아왔다. 위기의 순간마다, 익명의 소액기부와 봉사가 이어지면서 요셉의원은 기적 같은 29년을 일궈왔다.
보리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5천 명을 먹여살렸다는 오병이어의 기적은 성경으로만 전해지는 게 아닐지도 모른다. 병원의 직원들은 입버릇처럼 “언제나 부족했지만, 언제나 채워져 있었다”고 말한다. 8천 여 명의 후원자, 29년 간 60만 여 건의 무료 진료는 나눔의 기적이 만든 요셉의원만의 진기록이다.
■ 참인술로 환자들을 돌보는 의료 봉사자들
오후 1시, 병원의 문이 활짝 열리면, 일반 봉사자와 의료 봉사자들을 합쳐 하루 27여 명의 봉사자들이 요셉의원에 출근한다. 낮부터 밤까지 열리는 진료과목은 총 23개. 7시부터 저녁 9시까지 이루어지는 밤 진료엔 근무 병원을 퇴근하고 찾는 의사들이 많아 병원은 더욱 붐빈다.
정년퇴직을 6년 앞뒀던 2009년, 신완식 원장은 병원 과장과 교수직에서 일순간 퇴임했다. 명예와 부를 내려놓고 그가 택한 것은 요셉의원이었다. 요셉의원의 초대원장인 고 선우경식 박사의 타계 소식이 앞만 보고 살던 그의 마음을 움직인 것이다. 10원 한 푼 못 받는 무급 봉사직이지만, 그는 어려운 이웃들을 돕는 생활에서 그는 진정한 웃음을 찾았다고 말한다.
“요셉의원에 온 다음부터는 굉장히 얼굴이 편해보인다 그런 얘기를 많이 듣고 있어요. 그리고 교수 적에는 딴사람들한테 고맙습니다 이런 말을 별로 많이 해보지 못했던 것 같아요. 여기 오게 되면 항상 감사합니다 하는 말이 입에 붙어서 다니죠”
- 신완식 원장, 66세
요셉의원 설립 초기부터 고 선우경식 원장과 가난한 이웃들을 돕겠다는 뜻을 함께 해왔던 영상의학과 봉사자, 최동식 씨. 하지만 술을 먹고 막무가내로 행패를 부리는 환자를 대할 때마다 그만 둘 궁리를 수도 없이 했다. 그럼에도 이곳을 떠나지 못했던 이유는 하나, 다 가질 수 있었음에도 모든 것을 내려놓은 선우경식 원장의 참인술과 사랑이었다.
“선우 원장이 직원들하고 회의 때마다 하신 말씀이 있어요 .“우리가 아니면 이 환자들이 어디 가서 하소연을 하겠냐? 환자를 이해해야 된다” 당시 선우경식 원장이 돌아가셨을 때 운구가 여기 병원을 한 바퀴 돌았어요 .그때 이 동네 사람들 다 울었어요 영등포 슈바이처가 돌아가셨다고“
- 영상의학과 최동식씨, 81세
요셉의원과 19년째 인연을 맺고 있는 김정순 간호사는 병원에서 환자들의 어머니로 통한다. 때론 다그치기도, 어르기도 하는 그녀의 처방법에 환자들은 어느새 마음을 열고 입을 연다. 옷이 없는 환자들에겐 옷을 내어주고, 맨 손으로 폐지를 줍는 할머니가 지나가기라도 하면 병원으로 불러 와 거친 손을 치료해주는 김정순 씨. 그녀는 진료실을 넘나들며 살뜰히 환자들을 챙기는 쪽방촌 주민들의 둘도 없는 이웃이다.
“가족들은 엄마는 병원에서만 잘한다고. 이중 성격이래요 저보고. 근데 아들은 엄마를 가졌잖아요. 남편도 아내를 가졌는데 큰 엄마 노릇은 못해도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서 보살펴드리자 싶어요”
- 김정순 간호사, 54세
■ 요셉의원을 찾는 우리네 이웃들
한두 달 전부터 몸이 안 좋던 신유병씨가 요셉의원을 찾았다. 금전적 여유가 없어 치료를 미루던 중 갑자기 배에 복수가 찬 것. 진단 결과 그는 종합병원으로 옮겨 치료를 받아야 할 상황이었다. 병원비 걱정으로 잠시 안색이 어두워졌으나 요셉의원을 찾는 환자들은 전원을 하게 돼도 무료라는 말에 그제야 얼굴이 펴진다. 요셉의원에서는 서울시 병원과 연계해 의원 내에서 해결되지 않은 응급상황 시 무료로 병원에 입원 및 수술조치를 취한다.
“저는 이렇게까지 전문적으로 해주실 줄은 몰랐어요. 봉사로 운영되는 병원이면 대충 피 검사나 하는 줄 알았는데 이렇게 상세하게 해주시니까 고맙죠”
-신유병 환자, 55세
5년 전, 요셉의원에서 틀니치료를 받았던 박용모씨는 치아가 다 빠지고 2개만 남은 상태로 10년을 생활했던 환자다. 비싼 치료비 탓에 치과는 언감생심 꿈도 꾸지 못했던 박씨. 그런 그가 요셉의원에서 무료 시술을 받게 된 후 음식을 자유자재로 먹게 된 것은 물론, 사람들과 대화하는 기쁨을 되찾았다며 행복해 한다.
“먹는 것보다도 사람하고 대화할 수 있다는 게 얼마나 좋은지 모르겠어요. 그 전엔 치아가 없으니까 말을 해도 말이 새고 모르는 분들한테 가서 이야기하기엔 자신감이 안 섰어요. 손을 가린다거나 위축이 되는데 이거 하고 나서 말 하고 먹는 게 다 해결되잖아요”
-치과 환자 박용모씨, 59세
“여기는 아기가 엄마 품에 안기듯이 아픈 사람들을 안아주는 곳이에요. 진짜 여긴 없어지면 안돼요. 여기는 제2의 슈바이처에요”
- 피부과 환자 송병구씨, 57세
[사진=KBS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