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스포츠 문화

신희권 교수 "서울은 동양의 로마...한양도성 따라 역사 숨결 느끼세요"

'한양도성:서울을 흐르다' 펴낸 신희권 서울시립대 교수

성곽 따라 즐기는 서울 한바퀴

백악산·낙산 등 6개 구간 소개

문헌기록·고고학 성과 곁들여

삼국 토성기술·성곽축조술 응축

선인들의 장인정신 엿볼수 있어

‘한양도성, 서울을 흐르다’의 저자 신희권 서울시립대 국사학과 교수 /사진제공=출판사 북촌‘한양도성, 서울을 흐르다’의 저자 신희권 서울시립대 국사학과 교수 /사진제공=출판사 북촌




광화문 인근 경복궁역을 지나 서촌을 관통해 닿은 청운효자동주민센터 옆길을 따라 청와대 앞 무궁화동산에 도착한다. 토요일 촛불집회 시위대의 동선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아니다. 성곽을 따라 걸으며 도성 안팎 풍경을 구경하는 순성(巡城)의 시작으로, 발길은 백악산(북악산)과 인왕산 중간에 위치한 창의문(자하문)으로 향한다. 신희권 서울시립대 국사학과 교수의 신간 ‘한양도성,서울을 흐르다’(북촌 펴냄)의 첫 장이다.


“서울은 가히 동양의 로마입니다. 서양의 로마·아테네처럼 2,000년 역사를 가진 큰 도시가 동양에 있습니까? 중국 북경이나 일본 동경도 모두 중세 이후 성장했죠. 반면 서울은 일찍이 도읍의 면모를 갖췄고 그 역사를 ‘한양도성’이 함께 했습니다. 서울같은 대도시에 이런 대규모 성곽이 남아있다는 것은 세계사 어디에도 없는 우리만의 유산입니다.”

태조 이성계는 1396년 조선 개국과 동시에 성을 쌓았다. 도성은 국가의 위엄이자 역사의 윤곽이 됐다. 전체 둘레 18.63㎞에 이르는 대규모 공사에 태조 때 19만여 명, 세종 때 개축에 32만 명이 투입돼 단일 성곽으로 최다 인원인 50만 명이 동원됐다.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이 소장한 ‘광여도’ 중 ‘도성도’에 나타난 한양도성의 모습은 현재와 별반 다르지 않다. /사진제공=출판사 북촌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이 소장한 ‘광여도’ 중 ‘도성도’에 나타난 한양도성의 모습은 현재와 별반 다르지 않다. /사진제공=출판사 북촌


“자하문 터널을 지나면 창의문 좌우 성벽이 보이고, 대학로 쪽은 낙산 구간이 있습니다. 인왕산, 남산 등 사대문 외곽을 둘러싸고 있는 한양도성은 어디서든 보이는 곳이라 서울에 사는 사람들은 누구나 언제든 만날 수 있죠. 한양도성이 어떤 역사적 의미를 갖는지 정확히 알리고 싶어 역사적 문헌기록과 고고학적 발굴성과를 곁들여 책을 썼습니다.”


신 교수는 자타공인 서울 도성 전문가다. 그는 백제 왕성인 위례성(풍납토성)을 처음 팠고 조선의 정궁인 경복궁과 광화문 복원을 주도했으며 불타버린 숭례문 발굴에도 참여했다. 백제부터 조선까지 서울에 자리 잡은 도성을 모두 발굴한 고고학자는 그가 유일하다. 문화재청 창덕궁관리소장과 국립고궁박물관 유물과학과장의 이력까지 합치면 왕궁과의 인연이 질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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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교수가 택한 순성길은 태조 때 축조 방식을 따라 자하문에서 시작해 동쪽 시계방향으로 백악산·낙산·흥인지문·남산·숭례문·인왕산의 6개 구간으로 서울을 한바퀴 돈다. 각 장이 넷으로 나뉘었으니 24절기에 맞춘 1년 답사코스로도 손색없다.

한양도성의 낙산 구간에서 만날 수 있는 ‘각자성석’. 공사 참여자의 이름을 돌에 새기는 방식으로 ‘책임시공’을 실천한 전통을 보여준다. /사진제공=출판사 북촌한양도성의 낙산 구간에서 만날 수 있는 ‘각자성석’. 공사 참여자의 이름을 돌에 새기는 방식으로 ‘책임시공’을 실천한 전통을 보여준다. /사진제공=출판사 북촌


“백제의 토성기술부터 삼국시대 방어력 높은 성곽 축조술이 한양도성에 응축돼 있습니다. 각 돌마다 어느 지역의 사람들이 쌓았고 감독이 누구였는지를 새긴 ‘각자성석’이 있는데요, 나중에라도 하자보수나 부실공사에 책임을 지울 수 있었죠. 장인정신에 기반한 ‘책임시공’의 전통을 보여줍니다.”

북대문인 숙정문과 북소문인 창의문은 풍수상 왕실에 해가 된다고 여겨 폐쇄된 적도 있는데, 신 교수는 창의문에 대해 인조반정 때 능양군과 반정군이 도성으로 침입한 경로라는 사실을 책에서 밝힌다. 1976년 박정희 전 대통령의 지시로 복원된 숙정문은 태조 때 건물 형태로 재건했지만 현판은 당시 ‘숙청문’이 아닌 중종 이후 문헌에 등장하는 ‘숙정문’이라는 오류도 지적했다. 신 교수는 특히 “몇 년 전 발굴됐지만 자취를 감춘 청계천의 오간수문이나 동대문운동장에서 발굴된 이간수문의 복원은 아쉬운 대목”이라며 “성곽의 경우 뿌리만 남은 것을 ‘상상’으로 윗부분까지 복원하는 강박이 있는데 그것은 세계적 문화재 복원 추세에 역행하는 것으로, 실질적 고증이 가능한 선까지만 보여주면서도 감동을 전할 수 있는 문화재 철학에 대한 재점검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한편 한양도성의 내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 심의를 앞두고 있는 것과 관련해 신 교수는 “한양도성은 당시 중국에서 시작된 동아시아 유교질서에 입각한 도성제도를 따르는 보편성 속에서 이른바 백악·낙산·남산·인왕산의 4개산을 연결한 서울 고유의 지형을 이용한 특수성을 두루 갖췄다”면서 “태조때 기틀을 마련해 세종 때 돌로 고쳐 쌓고 임진왜란·병자호란 후 숙종 때는 방어적 기능을 강화하고 영조는 ‘도성수비론’을 내세우며 완비하는 과정으로 조선의 역사가 모두 담겨 있으면서 오늘날 시민들과 함께 호흡한다는 점에서 유네스코 정신에 부합한다”고 설명했다.

조상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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