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일 방송된 KBS2 ’다큐멘터리 3일’에서는 ‘시간도 쉬어가는 마을, 삼지내 - 담양군 창평 슬로시티’ 편이 전파를 탔다.
낡은 가게, 허름한 간판, 오래된 한옥과 5일장...누군가는 시간조차 멈춰선 마을이라 말하지만 이곳의 시간은 다만 느리게 흐를 뿐이다.
전통가옥과 옛 돌담장이 마을 전체를 굽이굽이 감싸고 있는 ‘창평 슬로시티(삼지내마을)’는 2007년 청산도, 증도와 함께 아시아 최초의 슬로시티로 지정됐다. 느리고 고집스러운 대신 세월의 진국, 세상살이의 진미를 맛볼 수 있는 마을이다.
마을 안으로 월봉천과 운암천, 유천 세 갈래의 물길이 모인다는 뜻의 삼지내(삼지천)는 500여년 역사를 지닌 창평 고씨 집성촌이다. 실개천을 따라 겨울을 가득 담은 이곳은 과거의 시간이 그대로 담겨있다. 문화재로 지정된 300년이 넘는 3.6km의 돌담길과 조선후기부터 약 100년의 시간을 보낸 한옥 15채가 고스란히 보존되고 있는 마을. 이는 창평이 슬로시티로 선정된 이유다.
슬로시티의 상징, 달팽이를 본 딴 <달팽이가게>는 창평 슬로시티 사무국의 간판이다. 이곳을 지키고 있는 박희연(50) 사무국장은 이 마을을 처음 둘러본 후 일주일 만에 운명처럼 창평에 자리 잡았다. 박희연 씨는 삼지내를 찾는 사람들이 느리게 살아가는 삶의 방식을 터득하고 돌아가기를 희망한다고 말한다.
“옆을 둘러볼 수 있는 시간이 있고 옆을 둘러보면 아름다운 광경이 있잖아요. 느리게 사는 삶이 좀 더 인간적으로 살 수 있는 삶이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들어요.”
- 박희연, 50세
창평 슬로시티를 대표하는 먹거리는 슬로푸드의 정수라 일컫는 쌀엿이다. 현대의 속도를 따르기보다는 나고 자란 삶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온 이 마을 사람들에게 전통음식 쌀엿은 오래 전의 방식 그대로를 이어받은 산물이다.
창평쌀엿은 조선시대 궁녀들에 의해 알려지게 됐다. 바삭하며 이에 붙지 않는 것이 특징이다. 이 마을은 명절마다 전통쌀엿과 한과를 찾기 위해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창평쌀엿을 만드는 가장 큰 비법은 바로 오랜 기다림과 인내, 그리고 정성이다.
쌀엿이 완성되기까지, 끝없는 기다림과 고단한 과정의 연속이다. 식혜에서 조청, 그리고 갱엿을 만드는 작업은 꼬박 하루를 쏟아 부어도 모자라다.
그 가운데 ‘바람 넣는 작업’은 쌀엿을 만들 때 가장 중요한 과정이다. 갱엿을 늘려 화롯불 위로 두 명이 잡아당기며 바람(수증기)을 넣는 작업이다. 무려 80번~100번 정도의 늘림이 필요하다. 수증기가 들어간 엿가락은 결이 예쁘게 만들어지며 바삭한 창평쌀엿이 완성된다.
“엿을 만드는 일도 공부예요, 마음공부. 바쁘다고 막 하면 안 되고 차분하니 마음을 가다듬고 해야 좋은 엿이 나오죠.“
- 이옥순, 69세
1960년대 본격적으로 형성된 창평장은 5일과 10일, 15일 등 닷새에 한 번 열리는 5일장. 장날이 되면 자리를 맡기 위해 가까이는 광주, 멀리는 보성에서부터 상인들이 모여든다. 장날이 되면 경운기 가득 직접 지은 농산물을 싣고 좌판을 펼치는 할머니들과 뻥튀기장수까지 시골 5일장 특유의 이색적인 난전이 펼쳐진다.
창평장에서 빼놓을 수 없는 두 가지는 바로 한과와 국밥이다. 설 대목을 앞둔 전통시장은 한과를 찾으러온 주민들과 관광객들로 북적인다.
창평은 순대와 돼지고기를 가득 넣은 국밥으로 유명하다. 국밥거리가 형성될 정도로 이 지역의 명물이다. 값싸고 푸짐한 국밥 한 그릇은 창평 5일장을 본 마을 사람들의 허기진 배를 든든하게 채워주는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이렇게 느리게 사는 것도 좋은 삶이구나... 그러면서 잠깐 마음을 쉬어갈 수 있었으면... 한 번쯤 기억을 떠올렸을 때 ‘거기 갔더니 마음이 편했어, 다시 한 번 그곳에 가고 싶다’라고 생각할 수 있는 정도의 여유를 가지면서 살았으면 좋겠어요.“
- 김은정, 43세
[사진=KBS2 ‘다큐멘터리 3일’ 방송화면캡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