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레이시아 보건당국은 21일 기자회견을 열어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의 이복형인 김정남으로 추정되는 남성이 심장마비를 일으켰다는 증거가 없으며 시신에는 별다른 외상도 없었다고 밝혔다. 사망자의 신원과 사인은 여전히 오리무중이며 김정남의 시신 인수를 위해 지난 20일 저녁 말레이시아에 입국한 것으로 알려진 김한솔의 행방이 묘연한 가운데 시신 인도를 요구한 유가족도 아직 없는 것으로 파악됐다.
누르 히샴 압둘라 말레이시아 보건부 장관은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종합병원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시신에서는 외상이 없었으며 (뾰족한 것에) 뚫린 자국도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부검으로 얻은) 법의학 표본은 분석을 위해 공인된 연구소에 보내진 뒤 수사 경찰에 곧바로 전달됐다”며 “이런 분석들은 사망자의 신원 확인과 사인 확인을 의미하며 두 가지 모두 아직 결과가 나오지 않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북한 측의 비판을 의식한 듯 “전문 인력이 현행법과 국제적 기준에 의거해 사인 규명 및 신원 확인 작업을 진행하고 있으며 예의를 갖춰 시신을 관리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말레이시아 입국설이 돌았던 김정남의 아들 김한솔의 행방은 안갯속을 걷고 있다. 압둘 사마흐 마트 말레이시아 셀랑고르 지방경찰청장은 이날 싱가포르 보도채널 채널뉴스아시아에 “지금까지 김정남의 시신 인도를 요구한 유가족은 없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만약 유족이 시신 인도를 위해 말레이시아에 들어오더라도 유족 신변 보호를 위해 필요할 때까지 비공개에 부칠 방침”이라며 해석의 여지를 남겼다. 김한솔 입국설과 관련해 이날 오전1시40분(한국시각 오전2시40분)께 대테러 요원이 투입됐던 시신 안치 병원의 경계가 10여시간 만에 해제돼 주목받기도 했다. 말레이시아 현지 통신사 베르나마는 이날 “오전10시20분(한국시각 오전11시20분)쯤 10여명의 특공대원을 태운 넉 대의 차량이 쿠알라룸푸르 병원 영안실에서 모두 철수했다”며 병원 주변의 경계가 김한솔 도착설이 퍼지기 이전인 20일 수준으로 회복됐다고 보도했다. 대테러 요원들이 경찰 인력과 함께 병원 영안실에 배치된 정황은 김한솔의 시신 참관 가능성에 무게를 싣는 근거다.
현지 언론들은 20일 저녁 마카오발 에어아시아 AK8321 항공기에서 안경을 쓰고 마스크를 착용한 채 내렸던 한 청년이 김한솔이었을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김한솔의 탑승 가능성이 제기된 에어아시아 직원들이 한결같이 침묵을 지키고 있다”며 “기내에 젊은이들이 거의 없었고 안경을 썼던 어린 청년은 단 한 명”이라는 탑승객의 발언을 전했다. 더스타도 20세 내외로 추정되는 한 청년이 공항에 도착한 뒤 빠져나가는 장면이 담긴 동영상을 관련 기사에 첨부했다.
한편 이날 나집 라작 말레이시아 총리는 말레이시아 경찰의 수사 결과에 강한 불신을 표현한 강철 말레이시아 주재 북한대사의 발언을 두고 “외교적으로 무례하다”며 비난했다. 외교적 대응도 이어졌다. 모하맛 니잔 북한 평양주재 말레이시아 대사는 이번 사건과 관련해 당국의 소환명령을 받고 21일 평양서 출국, 이날 귀국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말레이시아 당국이 피살 사건과 관련된 북한 측 반응에 ‘대사 소환’이라는 강경 모드로 대응함에 따라 40여년간의 양국 간 밀월 관계에 금이 갈 가능성이 제기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