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률(Gold Standard)입니다.”
한미동맹이 60주년을 맞았던 지난 2013년, 태미 오버비 미국 상공회의소 부회장은 발효된 지 1년 반쯤 됐던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대해 이렇게 평가했다. 당시 일본의 전격적인 참여로 세를 불리던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도 한미 FTA가 ‘방아쇠 역할’을 했다며 “한미 경제협력은 이제 양자관계를 넘어 아시아와 글로벌 경제의 관점에서도 중요해졌다”고 말했다.
한미 FTA는 TPP의 방아쇠만 당긴 게 아니었다. 미국을 비롯한 주요 참여국은 TPP가 한미 FTA 수준의 개방을 해야 한다는 의지를 굽히지 않았다. 정혜선 한국무역협회 통상연구실 연구원은 “TPP 협상 과정에서 미국이 참여국에 한결같이 말했던 게 한미 FTA가 스탠더드라는 말이었다”고 설명했다. 국내에서 6년여라는 진통을 겪고도 논란이 잦아들지 않은 협정이었지만 국제적으로는 ‘가장 모범적 FTA’로 지칭될 만큼 평가가 달랐던 것이다.
세계 최대 경제대국과 치렀던 협상전쟁은 우리 통상 당국에는 값진 경험이었다. 무엇보다도 자신감이 커졌다. 여한구 산업통상자원부 FTA정책관은 “유럽연합(EU)은 물론 중국·인도·호주 등과 협상에 나설 수 있던 것도 한미 FTA 협상에서 성공했던 경험이 컸다”고 말했다.
한미 FTA를 발판으로 개척한 ‘무관세’ 시장은 전 세계 국내총생산(GDP)의 77%(15건, 54개국)다. 전 세계 3위에 해당한다. 칠레(1위) 등의 국가가 우리보다 순위는 높다지만 주요국 중에서는 우리가 1위다. 이미 타결돼 발효를 앞둔 중미와의 FTA, 협상이 진행되고 있는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 에콰도르, 한중일, 이스라엘 등과의 협정 체결까지 감안하면 우리나라의 경제영토는 더욱 넓어진다.
정 연구원은 “한미 협상을 통해 축적해놓은 경험이 이후 협상에 도움이 됐고 그 과정에서 통상절차법 제정 등을 통해 절차적 투명성이나 관계자 의견 청취 등의 제도도 성숙할 수 있었다”며 “대만이나 일본 민간 연구기관에서 한국이 어떻게 미국이나 유럽과 FTA를 체결했는지 노하우를 많이 물어오는 것도 이 때문”이라고 전했다.
실제로 한미 FTA 이후 우리나라 FTA의 양허율은 급격히 높아졌다. 산업통상자원부의 한 관계자는 “한미 FTA는 우리나라는 쌀, 미국은 자동차 관세 철폐가 쉽지 않았는데 나머지 부분은 대부분 관세를 철폐했다”며 “서로 환경에 따라서 협상을 통해 개방하게 된 건데 그게 모델이 돼서 그다음부터도 90%가 넘는 양허율로 FTA를 맺게 됐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FTA 협상장에 나가면 우리는 이미 강국이 돼 있는데, 협상 상대국들의 표정에서도 그것을 읽을 수 있다”고 전했다.
한미 FTA는 세계 시장을 향하는 기업에도 큰 도움이 됐다. 무역협회의 한 관계자는 “원산지 관리 시스템이 뭔지도 몰랐던 기업들이 한미 FTA를 통해 노하우를 축적할 수 있었고 향후 체결된 FTA를 활용해 시장을 다변화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추게 됐다”고 평가했다. 유무형의 효과가 상당했다는 얘기다.
최원목 이화여대 교수는 “한미 FTA는 개방도가 가장 높은 수준일 뿐만 아니라 투자 보장에 대한 장기적 체제를 갖췄고 환경이나 노동 등 국내 정치적으로 민감한 이슈가 될 수 있는 사안과 관련된 통상 규범도 수립해놓았다”며 “동시에 양국 간 무역구조 측면에서도 플러스 되는 협정인 만큼 여러 나라에 벤치마크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더욱이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가 촉발한 보호무역주의가 확산하면서 TPP 등 메가 FTA가 좌초하고 있다. 다시 양자 FTA 시대가 도래하고 있는 셈이다. 대만은 최근 미국의 탈퇴로 TPP가 좌절하자 한미 FTA를 적극 벤치마킹하려는 움직임도 보이고 있다./세종=김상훈기자 ksh25th@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