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경스타 문화

[인터뷰②] 고성현, “팬텀싱어 박상돈, 네가 갈고 닦은 칼이 어떤 것인지 보자”

성악가가 목이 아닌 ‘몸’으로 노래를 한다는 건 어떤 걸까.


모든 젊은 바리톤들의 롤 모델이자, 성악인들이 탐구하고 싶은 대가 바리톤 고성현과 JTBC ‘팬텀싱어’ TOP12으로 알려진 바리톤 박상돈이 ‘드디어’ 만났다.

고성현씨는 “목이 아닌 몸으로 노래를 하기 위해 엄청나게 노력했다.”는 숨겨진 일화도 공개했다.

바리톤 고성현이 ‘시간에 기대어’ 악보를 ‘사랑해’라는 사인과 함께 박상돈에게 선물로 전달했다./사진=조은정 기자바리톤 고성현이 ‘시간에 기대어’ 악보를 ‘사랑해’라는 사인과 함께 박상돈에게 선물로 전달했다./사진=조은정 기자


”몸으로 노래를 하기 위해 물 속에서도 노래를 해봤어요. 소리가 들리냐? 고 물어보면 안 들려요. 그런데 물 속에서 파장이나 진동이 있어서 물이 흘러가는 게 보이거든. 그걸 느끼는거지. 사자, 호랑이, 퓨마, 치타가 우는 모습을 보려고, 동물원도 꽤 찾아다녔어. (실제로 정글의 동물이 내는 소리를 시연한)‘엉’ ‘엉’ ‘엉’ 소리가 나더라. 정글의 왕은 들숨의 위치에서 소리를 내. 특히 ‘큰 놈일수록 ’엉‘ 소리를 내는데 그 소리가 산을 울려. 한번 경험해봐.”

그는 “시간이 지나고 경험을 하다 보니 노래는 있는 그대로, 조금 모자란 듯 불러야 좋다.”고 했다.

최근 JTBC ‘팬텀싱어’ 열풍 속 주인공인 테너 유슬기·백인태, 베이스 바리톤 권서경의 스승이기도 한 고성현씨는 인터뷰 중간 중간 제자들에 대한 애정 넘치는 이야기도 빼놓지 않았다.

“슬기, 인태, 서경이 너희는 젊음 자체로 사랑 받을 수 있으니. ‘비어있게 노래하라’고 말했어. 얘네들 소리가 번쩍 번쩍 하잖아. 얼마나 좋아. 뉴욕 경매 시장에서 고가에 팔리는 그림을 보면, 비어 있는 여백이 많은 그림이 비싸게 팔려. 그게 때가 있겠지.”

박상돈이 영웅 고성현씨를 얼마나 닮고 싶어하는지는 그의 숨겨진 소원에서도 엿볼 수 있었다. 박씨의 소원은 다른 것도 아닌 ‘고성현의 오른 손’이었다.

“말도 안 되는 이야기이긴 한데, 옥션에서 선생님의 오른손을 들고 나온다면 꼭 사고 싶어요. 신기하잖아요. 손을 딱 들면 노래가 나와요.”

후배의 이야기에 웃음을 보이던 선배는 “오른쪽 팔을 드는 폼은 엔리코 카루소 영향이 커. 그 분은 활을 쏘듯이 하늘을 향해 소리를 냈어. 그렇게 내 자신을 끌고 가면서 공부를 했어. 정말 베르디아노가 되고 싶으면 베르디가 태어난 부세토에 가서 3년 정도 살아봐. 정말 그래야 해. 나를 가르쳐준 사람도 10년 동안 이태리에 살면서 테크닉을 잘 연마 했으니까 2가지만 명심하라고 했어. 평생 스타카토 훈련을 하는 것, 그리고 무대가 너의 스승이라는 것. 그 가르침을 계속 따르고 있어.”

인터뷰 말미, 박상돈은 “저는 선생님께서 사자 같은 모습으로 영원히 불타 주셨으면 합니다.”라고 말했다.

물론 고성현은 “난 그걸 못 지켜. 자기가 사자가 되어야 해.”라고 말하며 단칼에 거절했다.

바리톤 고성현, 박상돈이 19일 오후 서울 성동구 한양대학교에서 인터뷰에 앞서 포토타임을 갖고있다./사진=조은정 기자바리톤 고성현, 박상돈이 19일 오후 서울 성동구 한양대학교에서 인터뷰에 앞서 포토타임을 갖고있다./사진=조은정 기자


/사진=조은정 기자/사진=조은정 기자


“아비 사자가 언제 무리에서 떠나는 줄 알아? 아들이 다 큰 사자가 된 게 보일 때야. 그럼 아비는 거기를 떠나야 해. 하이에나의 밥이 되고 흙으로 돌아가는거지. 물론 더 생각해보면, 걔네들에게 안 잡혀 먹고, 하이에나랑 어떻게 친해질 수 있을까? 에 대해서도 고민해보겠지.”


고씨에 따르면, “박상돈이 해가 쨍쨍하게 떠 있는 오전 11시의 인생이라면, 고성현씨는 곧 해가 지는 시간이 다가오는 오후 5시 인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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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에서 온 대포” ,“미사일” ,“콰트로 바리토니”(4명의 몫을 하는 바리톤이라는 뜻)란 별명을 지닌 세계적인 성악가 바리톤 고성현이 약한 모습을 보인다고 말 할 수도 있지만, 그는 시간의 흐름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대가의 한마디는 그래서 더욱 힘이 셌다.

“자동차 기름을 예로 들면, 자기는 기름이 가득 차 있어. 난 속도를 올리면서 계속 가다보면, 곧 에너지가 떨어져. 젊음이 끝까지 가는 게 아니잖아. 사무라이가 절대 나보다 강한 상대 앞에선 칼을 뽑지 않듯, 내 성악 인생이 평생을 가지 않을거란 걸 알고 있어. 내가 ‘콰트로 바리토니’라고 해서 큰 냉장고라고 쳐. 그런데 냉장고에 음식이 가득 차 있어도 안 먹을 때 더 멋있듯 그렇게 하고 싶어. 냉장고 크기도 조그만한데 그 안에 음식도 없으면 얼마나 불쌍해? 성악이란 장르에서 난 꽉 찬 냉장고가 되고 또 거기서 꺼내먹지 않는 걸 택하겠어. 이제야 나도 철이 드는거지.”

30년을 한길만 바라보며 살아온 고성현씨와의 대화를 통해서 깨달은 건, “그 어떤 테크닉보다 위대한 건 ‘맑은 영혼으로 노래하는 것’”이었다.

고씨는 “제자들에게 ‘노래하려면 너부터 맑아져야 한다’ 란 말을 해. 노래하는 사람들이 좀 솔직하게 했으면 해. ‘붕’ 뜨면 한방에 ‘훅’ 가는 게 순리야. 사람 정신이 맑지 않으면 금방 끝나. 모든 분야에서 정말 중요한 건 자신의 생각과 마음이야. 여기에 ‘착함’이 인도한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

인디안 우화에 고성현씨가 경험한 ‘늑대 이야기’가 전한 여운은 강했다. 고씨는 “사람에겐 나쁜 늑대와 착한 늑대가 있다.” 며 “어떤 늑대에게 밥을 줄지는 주인 마음이야. 노래를 하는 사람이 비교적 착한 늑대에게 밥을 주는 게 마음이 통하지 않을까. ”라고 말했다.

이어 “노래는 곧 사랑이니, 노래를 계속 하기 위해선 사랑을 해야 한다” 며 박상돈에게 연애를 적극 권유하기도 했다. 그는 곧 ”끝까지 노래해. 사랑과 착함이 생기면 다른 이들에게 퍼줘. 퍼주는 게 나아.“라고 당부했다.

고성현은 오페라에 대한 사랑에 더해, 우리 가곡이 후배들의 입을 통해 계속해서 전파되길 원했다. “내 나이가 이제 60을 바라보고 있어. 모험을 해야 할 때가 아닌, 정리하면서 책임을 져야 할 나이야. 그래서 절대 당근만을 주지 못해. 채찍도 줘야 해. 후배 세대들이 좀 더 그걸 따라줘서 외국 곡 ‘마이웨이’ 2번 부를 걸 한번 부르고 ‘봄처녀’ ‘비목’ ‘청산에 살리라’를 한번이라도 불러줬음 해. 그렇게 가도 되지 않겠냐. 힘을 싣고 싶어. 매스컴의 파급효과를 느꼈듯 우리 가곡의 아름다움도 널리 알려야지.”

인터뷰를 끝내며, 박상돈은 “음악적인 건 물론이고 선생님의 사상과 철학까지 담아가는 특별하고 유익한 시간이었다.”며 살짝 작업의 기술(?)을 발휘하며 영웅의 전화번호를 물어보기에 이르렀다.

선배는 후배의 꿈을 적극적으로 응원했다. “한번 올라와 봐. 네 칼이 어떤 것인지 보자.”고 말하며 흔쾌히 번호를 건넨 것.

“상돈이든 다른 젊은 바리톤 후배들이든, 나한테 찾아와서 ‘한번 오디션 보게 주세요’라고 제안하는 그걸 거절하면 안 돼. 거기서 거절을 하거나, 돈을 요구한다면 아티스트가 아닌거지. 그런 전화를 받으면 거의 만나서 지키려고 노력해오고 있어. 상돈이도 오디션 없이 노래만 가지고 와라. 걱정 말고 와.”

정다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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