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계 기업의 상장폐지 ‘흑역사’가 되풀이될 조짐이지만 한국 증시 입성을 노리는 중국 업체에는 별다른 영향을 주지 않는 것으로 확인됐다. 일부 중국계 기업들이 상장철회를 준비 중이라는 루머가 시장에서 떠돌고 있지만 지난해의 2배에 달하는 10개 이상의 업체가 올해 코스닥 상장을 추진 중이다. 일정 부분 ‘차이나 리스크’를 감수해도 한국 시장의 매력이 큰 만큼 국내 증시에 문을 두드리는 중국 기업의 수는 계속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5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자진 상장폐지를 결정한 웨이포트와 감사 문제를 겪고 있는 중국원양자원까지 퇴출되면 국내 증시에서 자취를 감추는 중국 기업은 모두 9개로 늘어난다. 지금까지 국내에 상장된 22곳의 중국기업 생존율이 60%에 불과한 것이다.
잠잠했던 중국 기업의 잇따른 상장폐지 소식이 국내 투자자에게 ‘차이나 포비아’를 불러오지는 않을지 업계는 긴장하고 있다. 가뜩이나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배치를 둘러싸고 한중관계가 악화된 상황에 투자자들로부터 외면을 받지는 않을지 걱정이 큰 상황이다. 올해 중국기업 2곳의 상장을 준비하고 있는 한 증권사의 관계자는 “한국거래소나 금융감독원 등이 중국기업을 전보다 까다롭게 심사할 수도 있고 중국 기업에 대한 불신으로 인해 투자자들의 심리가 위축될 가능성도 높다”고 우려했다.
하지만 정치적 악재일 뿐 중국 기업의 국내 시장 진출은 줄어들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올해 상장을 노리는 중국 기업은 컬러레이·그린바이오소스·트리플엑스인터내셔널바이오사이언스·산둥톈타이·경방차업 등 12~13곳에 이른다. 지난해보다 2배 이상 많고 상장을 검토하는 기업만 해도 20~30곳이나 된다. 유안타증권을 주관사로 상장을 준비 중인 중국 우롱차 부문 1위 업체 경방차업은 한국 증시 상장 이후 한국 시장 진출도 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올해 상장을 추진 중인 한 중국 업체 관계자는 “내부에서도 중한관계에 대한 우려가 있지만 한국 시장 상장이 기업의 성장에 득이 된다고 판단했다”고 전했다.
중국 기업 입장에서는 한국 시장이 주는 매력이 크기 때문에 선호한다는 것이다. 중국 증시에 상장하려는 업체가 워낙 많은데 그나마 자금조달이 용이하고 안정적인 한국에서는 기간을 단축할 수 있어서다. 중국 기업 상장을 주관하는 한 증권사 관계자는 “중국 기업들은 예측 가능한 시간 안에 자금조달이 가능한 한국 시장에 오기 위해 일정 부분 디스카운트 받는 점을 알고 있다”며 “그럼에도 한국 시장 진출을 희망하는 업체는 더욱 늘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부터 국내 증시에 상장한 2세대 업체들은 투자자들로부터 불안심리를 잠재우고 있다. 골든센츄리·크리스탈신소재 등은 배당을 통해 주주친화정책을 펼치며 신뢰를 쌓았다. 문제 있는 기업을 상장했을 때의 이미지 악화를 우려해 주관사도 더욱 철저한 검증에 나서고 있다. 조광재 NH투자증권 상무는 “중국 기업에 투명성이 담보되지 않은 상태라 실사를 철저하게 하고 있다”며 “지금 상장을 노리는 업체들은 한번 검증을 거쳤다고 봐도 좋다”고 말했다.
이번 기회에 문제 있는 기업들을 걸러내면서 다른 기업에 긍정적인 효과로 작용할 수도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익명을 요구한 한 증권사 기업공개(IPO) 담당자도 “중국원양자원은 이미 리스크가 노출됐던 곳이라 현재 남아있는 중국 기업에 미치는 영향은 크지 않다”며 “문제는 털고 가는 것이 상장을 준비하는 기업 입장에서도 더 나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