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씨는 누구에게도 말 못할 고민이 생겼다. 아내가 한 남자로부터 며칠 뒤 주말에 호텔에서 만나자는 내용의 문자가 온 것을 우연히 보게 된 것이다. 결국 그는 친구에게도 하소연하지 못하고 평소 자주 이용하는 인터넷 사이트에 접속해 어찌할 수 없는 마음을 담아 글을 올린다. 충격적인 내용에 네티즌들은 그의 말을 믿지 못하고 의심하는 댓글을 단다. 이에 화가 난 A씨는 그 댓글에 반박하는 댓글로 응수한다. 여기에 다른 댓글러들이 참여하면서 댓글은 댓글을 낳았다. 피튀기는 흙탕물 싸움에 이도저도 못하는 A씨는 아무런 고민 해결도 하지 못한 채 아내와 이혼을 결심한다. 지난해 말 방영된 드라마 ‘이번 주 아내가 바람을 핍니다’의 한 장면이다.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혼탁한 정치판에도 수많은 댓글러들이 활동하고 있다. ‘홍보형’, ‘폭탄형’ 등 유형도 다양하다. 단순히 사이버 세상을 헤매며 자시의 의견을 표출하는 ‘개인’들도 있지만, 암암리에 조직적으로 활동하는 댓글러도 적지 않다는 건 정치권에서 공공연한 비밀이다. 조직적 댓글러들을 적발하는 것은 쉽지 않다. “댓글을 다는 사람의 아이디 뒷부분이 익명 처리돼 아이디의 앞부분이 동일하다는 이유만으로 동일인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고, 한 사람이 다수의 아이디를 보유할 수도 있기 때문”(네이버 관계자)이다. 다만, 아이디 앞 네글자가 동일하고 댓글까지 유사하다면, 동일인이 여러 댓글을 올린 것으로 추정할 수 있을 뿐이다. 최근 안철수 국민의당 대선 후보측이 포털 실시간 검색을 조작한 혐의로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대선 후보 팬클럽인 ‘문팬’ 관계자 13명을 검찰에 고발한 것은 인터넷이라는 공간이 여론을 결코 온전히 반영하지 못한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인터넷에서 의견을 표출하고 여론을 영향을 미치려 하는 댓글러들, 그들의 활동을 추적해봤다.
◇‘폭탄형’ =폭탄을 투하하듯 기사에 댓글을 퍼붓는 댓글러들이 있다. 아이디 ‘u_ji****’는 10일 [문재인·안철수 공약 대해부 <상>] 文 ’대기업-채찍, 중기-당근‘...安 “기업 죄없다” 우클릭 행보 란 제목의 기사에서 오후 7시 37분부터 39분까지 2분간 같은 내용의 댓글을 무려 7번 연속 투하했다. “박사모 정광용 ”MB, 이재오 의원에게 안철수 밀라 지시“ http://m.newstown.co.kr/news/articleView.html?idxno=123736”가 해당 댓글의 내용이다.
같은 날 [文>安? 安>文?, ‘오락가락 여론조사’로 본 한국정치]라는 기사에는 아이디 drfl****가 오후 4시 56분부터 59분까지 3분간 “애국자 조원진을 지지하세요!!”, “망설일 필요가 없읍니다. 조원진의원이 답입니다.”등 6개의 댓글을 줄줄이 달았다.
drfl****는 또 오후 4시 40분부터 42분까지 2분간 “나라를 구하는데 있어서는새누리당의 조원진 의원만이 답이다.”, “조원진, 조원진, 조원진, !!” 등 3개의 댓글을 연속으로 달았다. 그의 댓글은 이날 하루 이 기사에만 10여개에 달했다.
◇‘홍보형’=어떤 이유에서인지 특정 후보를 과도하게 띄우는 댓글도 적지 않다. 11일 [‘안보 선빵’ 날린 문재인..한방 먹은 안철수]라는 기사에는 아이디 ‘love****’이 “국정 경험이 이래서 중요함”(오후 2시 43분), “안보는 역시 문재인이다!!”(오후 2시 48분), “문 대통령님 적극 지지합니다 제발 꼭 당선되셔서 부정부폐 청산에 힘써주세요”(오후 2시 54분), “안보는 문재인!!!!!!”(오후 4시 9분) 등 몇 분 간격을 두고 주기적으로 댓글을 올렸다. 그는 다음날 오후 12시45분에도 “안보 대통령 문재인..특전사에서도 최고의 병사였던 그가 대한 민국을 책임진다.”는 댓글을 달았다.
특정 후보의 ‘업적’을 구체적으로 나열하는 ‘인텔리전트 홍보형’ 댓글러도 있다. 아이디 ‘sang****’은 [[장미대선 D-30]안철수, 오픈캐비닛 제안··· “대탕평의 시대 열릴 것”]이란 제목의 기사에서 지난 9일 오후 12시 6분부터 13분까지 안 후보의 국회의원 의정 활동을 상세히 적시했다.
그가 단 댓글은 “[안철수 홍보]∨세월호특별법 개정안(특조위 활동기간 보장 및 권한 강화)∨블랙리스트 방지법∨영화산업 대기업 독과점 방지법∨공정성장 3법(공정위 권한 강화,벤처산업 육성)…?김영란법 개정안도 대표발의(법 시행 전부터 기자들과 더치페이)∨단통법 기권∨도서정가제 표결 불참” 과 같은 내용이다.
◇‘반박형’ =다른 댓글을 하나하나 지목하며 조목조목 반박하는 댓글러들도 눈에 띄었다. 닉네임 ‘브루스리’는 [안철수 ‘대형 단설유치원 신설 자제’ 공약에 부모들 부글부글]이란 제목의 기사에서 11일 오후 5시 15분부터 50분까지 4명의 네티즌들에게 반박하는 댓글을 남겼다. 나름의 근거들을 제시하며 안 후보의 유치원 공약의 허점을 꼬집는 내용이다. 그는 오후 5시 15분 닉네임 ‘슬픈사랑의비’의 댓글에 “유치원이 필요로 하는 교직원·인건비·보조교사·교육 운영 지원 등을 확대하겠다.->지금 어린이집을 비롯해서 다 하지만 교사.보조교사 박봉에 시달리고 그 돈 원장 주머니에 들어간다. 감독 안됨 … 교사 대 유아 비율을 낮추고 시설 지원을 확대해 질 높은 유아교육을 실현하겠다.->그걸 왜 국공립 확대하는거에 안씀? 단설, 병설이 지휘.감독하기도 좋은데?”라고 반박했다.
◇‘막말형’ =11일 [‘안보 선빵’ 날린 문재인..한방 먹은 안철수]기사에 haje****은 오후 6시39분 “특전사 폭파주특기 우수사병, 도끼만행 보복작전 후방 경계조 투입, 기무사 장군 대령급 수십명 지지선언, 민주화 운동 투옥, 그러면서도 고승덕이 16등 졸업한 기수에 사법연수원 차석졸업, 차석졸업하고 지방 내려가서 인권변호사, 이게 인간이냐??? 이런 대통령 좀 가져보자 !!!!!!”라는 알 수 없는 내용의 댓글을 남긴데 이어 입에 담기 어려운 막말도 여러건 남겼다. 건전한 비판과 비난을 구분하지 않은 채 과도하게 특정 후보를 비난한 것이다.
아이디 ‘zxcv****’는 [文 굳히기냐 安 골든크로스냐..대권 향배 가를 4가지 변수]라는 제목의 기사에 지난 12일 9시 20분부터 30분까지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 측을 비난하는 댓글을 네 번 달았다.
“문재인은 안철수 공약 베끼기는것도 모자라 사드도 따라하네 요즘 포차산업 말하던데 무슨뜻인지는 알까?”(12일 오전 9시 20분) “네이버부사장이 문재인캠프로 영입됨 .문재인 댓글부대 대응팀이 베댓조작하는건 다들 알고 있는팩트ㅡ 보태자면 현재 오유.다음.네이버 외 5개 사이트에서 조직적으로 문빠들이 활동중임. 그러니 문재인이 얼마나 독선적이고 낡은구태인가...아직도 이게 통할거라 보는지..아무도 속지 않는다..다만 문빠들만 맹신할뿐”(오전 9시 30분) “종편 재인티비시가 띄우는후보 절대안됨. 재인티비시가 삼성거다 이재용 사면시키려고 문재인 미는거 국민들 다들알거다”(오전 9시 22분) “문재인 대통령 되면 기득권 쓰레기들 넘쳐날거다. 박근혜 명예퇴진 발언하고 뒤늦게 촛불광장 숟가락 얹은 철면피가 문유라는 누굽니까아아아아아”(오전 9시 24분) 등이다.
대선판의 프로댓글러, 그는 누구인가?
/김능현기자 김기혁기자nhkimchn@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