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탄유리에 경찰 보호요청까지=국립현대미술관이 천경자 화백의 작품으로 여겨 소장한 일명 ‘미인도’를 과천관의 소장품 특별전을 통해 18일 공개했다. 미술관이 기획해 1990년 4~11월 전국 순회전 형식으로 열린 ‘움직이는 미술관’전 이후 공개 전시에 나오기는 27년 만에 처음이다. 2층 제 4전시실에 걸린 ‘미인도’에는 작가명이 없다. 미술관 측은 소장품 일련번호 ‘KO-00352’와 함께 ‘작가 미상,미인도,1977년,29×26㎝,화선지에 채색’이라는 캡션으로 이 작품을 구분한다. 이례적으로 전시 간담회에 배석한 박성재 변호사(법무법인 민)는 “유족 측이 저작권, 저작인격권, 성명표시권 등에 강력하게 문제를 제기하며 법적 다툼이 진행중인 상황이라 유족을 배려한다는 입장에서 작가명을 밝히지 않고 전시한 것으로 안다”고 설명했다. 진위문제에 대한 논란의 확대재생산을 방지하려는 의도다. 미술관 측은 ‘미인도’ 공개와 관련해 발생할지 모를 불의의 사고를 대비해 방탄유리로 작품 주변을 에워쌌고 경찰에 보호요청도 해 뒀다. 그 결과 전시실 안쪽 공간을 차지한 ‘미인도’는 루브르박물관의 ‘모나리자’처럼 나 홀로 빛난다. 작품 앞쪽으로 관객 접근을 차단하는 듯 난간이 놓여있지만 이는 김민애 작가의 설치작품이며, 그 안쪽으로 들어가 근접해서 관람하는 것도 가능하다. 작품 아래나 옆에서는 석채의 반짝임도 볼 수 있다. 그 앞에는 1991년 이후 전개된 그간의 진위 논란이 아카이브(작품관련 자료)전시 형식으로 진열됐다. 국사범인 김재규 전 중앙정보부장의 자산 압류 과정에서 당시 재무부를 통해 1980년 문화부로, 다시 미술관으로 이관된 작품 39점의 목록도 공개됐다. 여기에는 동양화가 심산 노수현의 산수화가 500만원(이하 당시 평가액)으로 최고가에, ‘미인도’는 30만원으로 남농 허건의 산수화와 비슷한 가격으로 적혀있다. 천경자 작품의 경매 최고가 거래작은 지난달 서울옥션에서 8억2,000만원에 낙찰된 ‘고흐와 함께’이다.
◇여전히 끝나지 않은 논란= ‘미인도’가 공개된 이번 소장품전의 제목은 ‘균열’. 구축된 권위와 강요된 질서에 도전하는 예술의 태도를 뜻하는 ‘균열’은 진위를 둘러싼 논란 그 자체도 포함한다. 미술관 측은 위작 논란이 제기되기 전인 1990년 8월31일 천 화백에게서 받은 ‘복제품발간 승인서’도 공개했다. 이는 지난해 소송 중 공개돼 ‘가짜 사인 승인서’ 논란을 낳았다. 일각에서는 강아지를 안아 팔을 움직이기 어려운 천 화백이 “대신 사인하라”고 했다는 일화가 전한다. 미술관 측은 “당시 직원이 직접 천 화백 댁에 가서 현장에서 도장을 찍어 받아왔다는 내용이 검찰 불기소 사유에 명시돼 있다”고 밝혔다. 이 승인서를 기반으로 제작된 ‘미인도’ 복제품 포스터는 1991년 순회전에서 진품 대신 전시됐고 그 바람에 오해한 천 화백이 원본을 보여달라고 했는데 공교롭게도 액자가 교체되어 ‘위작’으로 판단했다는 게 미술관 측 주장이다. 현재는 원래 액자로 바뀐 상태다. 장엽 미술관 소장품자료관리과장은 “꽃·나비·화관 등 반복적으로 사용된 모티브와 유사한 도상을 보여줄 수 있는 1970년대 천 화백의 여성 인물화가 다수 존재하지만 저작권 문제로 함께 전시할 수 없다”고 밝혔다. 이처럼 유사한 도상을 진품이라 주장하는 쪽에서는 “선호해서 반복적으로 사용한 것”으로, 위작 주장 측에서는 “짜깁기한 결과가 미인도”라고 주장하는 상황이다. 한편 검찰의 지난해 12월 진품 발표에도 불구하고 항고한 유족 측 공동변호인단인 배금자 변호사는 “저작권자가 아닌 사람을 저작권자로 표시하는 것은 명백한 범죄”라며 “전시를 할 경우 사자(死者) 명예훼손과 저작권법 위반으로 고소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바르토메우 마리-리바스 관장은 “미인도를 공개한 것은 특정한 결론으로 유도하기 위한 것은 결코 아니며 논란의 대상이 아닌 감상의 대상으로 작품을 보길 바란다는 뜻”이라며 “미술관은 ‘미인도’가 진품이라 믿어왔고 검찰의 판단을 존중하지만 유족이 항고한 만큼 진위 여부를 따로 말하지는 않는다는 입장”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