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기적으로 큰 예산이 들어갈 뿐 아니라 앞으로 공공기관 평가 기준과 임금체계 개편안을 어떻게 마련하느냐가 관건입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12일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 시대’를 선포하자 공공기관들은 예산 확보와 임금체계 개편, 공공기관 평가 기준 등의 변화가 선행되지 않으면 쉽지 않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크게 세 가지 이유다. 막대한 비용, 근로시간 단축 등 체계 개편, 평가 기준 변화 등이 장애요인이다.
먼저 공공기관 비정규직은 31만명(비정규직 20만명+파견·용역 11만명·2015년 기준)에 달하고 이들을 모두 비정규직으로 전환하기 위해서는 막대한 비용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또 정규직이 늘어나기 위해서는 근로시간 단축이나 수당체계 개편 등도 선행돼야 한다. 기존 정규직의 임금이 줄어드는 결과로 이어진다. 결국 노동자·사용자·정부 등의 사회적 대타협이 있어야 가능하다는 것이다.
비정규직을 정규직화할 경우 그간 공공기관의 경영 효율화에 방점이 찍혔던 평가 기준도 바뀌어야 한다. 기능조정과 구조조정이 한창 진행되고 있는 만큼 혼란이 불가피하다. 금융공기업의 한 관계자는 “정부에서 예산을 내려주고 전환을 일괄지시하면 상황에 맞춰서 전환은 가능하다”면서 “다만 먼저 나서서 정규직 전환 규모나 시기 등을 언급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아직은 공공기관의 정규직 전환이 어떤 방식으로 이뤄질지에 대한 밑그림은 없다. 당장 공공기관이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할 경우 가점을 주는 방식으로 평가 방법 등을 바꿔야 한다. 공공기관의 경영평가를 맡고 있는 기획재정부는 올해 중 평가 기준을 전면 재조정해 정규직 전환을 많이 할수록 더 많은 점수를 줄 것으로 전망된다.
실제 현재 공공기관의 경영실적 평가 기준은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을 유도하는 배점은 낮다. 총 100점 만점에 모든 기관에 공통으로 적용되는 ‘경영관리’ 분야가 50점이고 경영관리 하위 분야 ‘조직 및 인적자원 관리’ 항목의 배점은 4점이다. 이 항목이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노력과 성과를 평가하는 부분이다. 기재부는 비정규직 감축을 유도하기 위해 지난해 12월 조직 및 인적자원 관리 항목의 배점을 2점에서 4점으로 올렸다. 하지만 조직 및 인적자원 관리 항목에는 7가지 세부 평가 내용이 있고 비정규직 부문은 7개 중 하나에 불과해 정규직 전환 노력을 제대로 평가하기에는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조직 및 인적자원 관리 항목의 배점은 4점으로 비교적 크지만 실제 비정규직 감축에 대한 평가 비중은 미미한 구조다. 문 대통령이 “비정규직 감축 노력을 제대로 유도할 수 있게 평가 지침을 바꿔야 한다”고 지적한 배경이다. 정부도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성과 평가 비중을 늘리는 방향으로 지침 개선을 검토하고 있다. 기재부 관계자는 “조직 및 인적자원 관리 항목의 배점을 더 늘리거나 아예 비정규직 부문을 별도 평가항목으로 떼어내는 방안 등을 고민하고 있다”고 전했다.
정규직으로 일괄전환할 경우 막대한 인건비 부담은 물론 생산성이 떨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공공기관들이 가장 우려하는 부분이다. 노동생산성 부문도 경영평가의 주요 항목 중 하나라서 생산성이 떨어지면 불이익을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공공기관 경영평가에서 낮은 등급을 받게 되면 성과급이 삭감되고 최악의 경우 기관장은 해임건의 대상자가 될 수 있다. 기재부에 따르면 최고 S에서 A·B·C·D·E까지 있는 등급 중 E등급을 받으면 기관장은 해임건의 대상이 된다. 2015년 경영평가에서 4곳이 해당됐지만 재임기간 요건(해당연도 말 기준 6개월 이상 재임)이 안 돼 제외됐다. D등급을 받으면 기관장 경고조치가 내려지고 D·E등급을 받은 기관의 상임이사에게도 경고 조치가 이뤄진다. 성과급은 C등급 이상을 받아야만 받을 수 있다.
정규직 전환 압박에 고용 경직성이 커지면 업무를 기관 소속 직원이 아닌 외주업체에 맡기는 방식의 ‘꼼수’가 늘어날 가능성도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런 식의 간접고용은 실제로 2012년 6만3,117명에서 지난해 8만2,264명으로 크게 늘었다./세종=김정곤·서민준기자 mckids@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