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강 커제 9단은 업그레이드된 바둑 인공지능(AI) 알파고에 맞서기 위해 나름대로 많은 준비를 했다. 최근 중국리그에서는 패배를 감수하면서까지 새로운 전략을 시도했다. 바둑에 공식 세계랭킹은 없지만 커제는 누구나 인정하는 세계 1위의 최고수. 균형적인 바둑을 두다가 중간 이후 우위를 잡고 앞서는 스타일이 커제를 세계 최강으로 이끌었으나 알파고 앞에선 그것도 무용지물이었다.
23일 중국 저장성 우전에서 열린 알파고와의 3번기 1국. 흑으로 선착한 커제는 우상귀 소목에 첫 돌을 놓았고 알파고가 우하귀 하점에 착수하자 좌상귀 3·3에 착수했다. 현장은 물론 국내 중계진들도 예상 못 한 ‘깜짝’ 포석이었다. 극단적으로 실리를 추구하는 3·3 포석은 현대 바둑에서는 좀처럼 보기 드문 포석이다. ‘인간의 바둑’으로는 알파고를 이길 수 없다고 판단한 커제의 한발 빠른 승부수였다. 그러나 3·3 포석도 ‘신의 한 수’가 되지는 못했다. 100수가 채 되기 전에 커제는 판을 짜기 어려운 국면에 처했다. 알파고는 두터움을 활용하는 능력과 균형감각을 앞세워 야금야금 형세를 유리하게 가져갔다. 결과는 289수 만에 알파고의 1집 반승. 앞서 97수째가 커제에게는 또 한 번의 승부수였다. 중앙에 울타리를 크게 쳐 상변 흑진을 전부 집으로 만들겠다는 심산. 알파고가 흑진 속으로 들어가자 커제는 퇴로를 차단했지만 알파고는 너무나도 유유하게 수습에 성공했다.
이날의 알파고는 인간의 계산을 뛰어넘는 신기의 수를 보여주는 대신 정석적이며 신속한, 물 흐르듯 막힘 없는 바둑으로 커제를 압도했다. 초반의 좌상 바꿔치기 외에는 쉽게 쉽게 두면서도 균형 속에 유리한 상황을 지켰다. 목진석 9단은 “커제가 뜸을 들인다고 할 정도로 굉장히 신중하게 잘 해나가고 있지만 알파고는 그에 너무나도 쉽게 대응하면서 실수조차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그는 “알파고가 마스터라는 이름으로 온라인 60국을 진행하던 때부터 싸우지 않고 이기는 바둑의 정수를 계속 보여주고 있다”고 평가했다.
이번 이벤트 명칭은 ‘바둑의 미래 서밋(Future of Go Summit)’. 1년여 전 이세돌 9단과의 대국은 ‘구글 딥마인드 챌린지’였다. ‘도전자’ 알파고는 이미 옛날 얘기가 돼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