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정권과의 차별화에 치중했던 문재인 대통령이 박근혜 정권에서 임명된 장관들과 오찬 간담회를 하고 좋은 것은 계승하고 나쁜 점은 버린다는 ‘사단취장(捨短取長)’의 기조를 강조했다. 문 대통령의 강한 개혁 드라이브에 술렁였던 공직사회를 안정시키겠다는 의도로 해석된다.
문 대통령은 26일 청와대에서 유일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등 박근혜 전 대통령이 임명한 국무위원들과의 오찬 간담회를 열었다. 문 대통령은 “가장 먼저 만났어야 하는 분들인데 인수위 없이 시작하다 보니 경황이 없어 늦었다”며 “국정 공백과 혼란, 심지어는 국정이 마비될 수 있었던 어려운 시기에 국정을 위해 고생하신 것에 감사를 표하고 싶어 오늘 모셨다”고 만남의 취지를 설명했다. 박수현 청와대 대변인은 “전 정권의 국무위원들과 오찬을 하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라고 설명했다.
문 대통령은 국정 운영의 연속성을 강조하며 탄핵정국과 대선 국면에서 국정을 운영했던 국무위원들을 격려했다. 문 대통령은 “국정 운영의 연속성은 매우 중요하며 이런 차원에서 국무위원 여러분이 도와주기 바란다”며 “정권이 바뀌긴 했으나 단절돼서는 안 되고 잘한 것은 이어져야 하고 문제가 있는 것은 살펴서 보완하고 개선해나가자”고 밝혔다.
이어 문 대통령은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는 요구가 있으므로 개각은 불가피하나 여러분은 엄연한 문재인 정부의 장관들”이라며 “정권은 유한하지만 조국은 영원하다. 자리를 떠나시더라도 새 정부의 국정을 보면서 자문하고 조언해주시면 새 정부가 좀 더 잘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국무위원들도 문 대통령의 정책 연속성 기조를 환영하며 고언을 아끼지 않았다. 특히 문 대통령이 일자리 창출을 통한 내수 진작에 드라이브를 걸고 있는 만큼 경제 부처 수장들의 우려와 제안이 잇따랐다. 유 경제부총리는 “지난 정부의 마지막 내각이자 새 정부의 첫 내각이라는 자세로 최선을 다하겠다”며 “수출을 중심으로 경제 회복의 불씨가 살아나고 있지만 내수와 소비부진의 과제는 여전하다. 이 불씨를 잘 살리는 것이 당면과제”라고 설명했다. 최양희 미래창조과학부 장관은 “최근 수출 호조는 반도체 등 정보기술(IT) 산업의 몇 가지 경쟁력에 힘입은 바 크지만 다양성과 역동성의 부족이 문제”라며 “좋은 기업을 만들기 위해서는 기반이 되는 과학기술 투자를 확대하고 기존의 산업도 4차 산업혁명화하는 등 관련법과 제도의 정비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임종룡 금융위원장은 “시장은 불확실성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므로 정책의 일관성 있는 메시지가 중요하다”며 “가계부채 문제는 금융정책만으로는 안 되고 성장 복지를 포함한 종합대책이 필요하다. 기업 구조조정의 문제는 확고한 원칙을 세우는 것이 중요하고 그 원칙은 이해관계자의 손실 분담이 돼야 한다”고 조언했다.
외교·통일 분야 장관들도 문 대통령에게 조언했다. 윤병세 외교부 장관은 “최근 특사파견과 관련해 초기 반응이 좋은 것 같다”며 “유엔 등 국제 공조관계를 잘 활용하고 주변 4국에 더해 유럽연합(EU)과 아세안(ASEAN)과의 관계를 잘 구축해야 한다”고 밝혔다.
홍용표 통일부 장관은 대북 인도지원과 민간교류 확대 방침을 밝힌 문재인 정부의 대북 방침에 우려를 표시했다. 그는 “북한과의 민간교류 관리가 중요한데 제가 학자일 때는 (정치와 민간의) 분리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지만 현직에 와보니 쉽지 않은 부분이 있다”며 “민간교류 기준을 잘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