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리빌딩은 일본의 부동산 디벨로퍼다. 모리빌딩이란 이름은 다소 낯설더라도 일본을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이면 ‘롯폰기힐스’는 들어봤을 것이다. 롯폰기힐스는 일본 도쿄 최대 규모의 도시재생 사업으로 이를 개발한 회사가 바로 모리빌딩이다. 한국에서는 모리빌딩도시기획이라는 이름으로 주로 디벨로퍼들을 돕는 역할을 하고 있다. 서울 신도림의 구도심을 호텔·오피스·리테일로 복합 개발한 ‘디큐브시티’가 한국에서 참여한 대표적인 프로젝트다.
박희윤(48) 한국지사장은 지난 2006년부터 모리빌딩에 합류해 한국 사업을 이끌고 있는 도시재생 및 도시개발 전문가다. 최근 들어 도시재생과 도시 경쟁력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지면서 박 지사장도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웬만한 도시 관련 세미나나 위원회에 그의 이름이 빠지지 않고 반드시 등장할 정도로 도시 전문가로 인정받고 있다. 그런 박 지사장을 만나 도시에 관심을 갖게 된 이유, 새 정부 들어 화두가 되고 있는 도시재생과 도시 경쟁력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서울 도시재생, 낙후지역 개발도 좋지만
인천공항~강남·도심·여의도 업무지구간
접근성 개선·미세먼지 줄여야 경쟁력 UP
◇도시를 사랑했던 소년, 끝내 꿈을 이루다=박 지사장의 고향은 경상남도 마산이다. 마산은 일제 시대 남해안을 대표하는 항구 도시였으며 지금도 당시 일본인들이 버리고 간 적산가옥들이 많이 남아 있다. 박 지사장이 살던 집도 적산가옥이었으며 고향집이 있었던 신마산은 일본인들이 철저하게 도시계획을 세워 만든 도시였다. 그는 그곳에서 자라면서 아주 어린 시절부터 도시를 좋아하고 도시와 관련된 일을 하겠다는 꿈을 키웠다고 밝혔다.
하지만 박 지사장이 처음부터 도시 전문가로 순탄하게 자신의 이력을 쌓아온 것은 아니다. 주변을 둘러보면 이런저런 이유로 꿈을 포기하고 현실에 안주하는 경우를 쉽게 볼 수 있다. 박 지사장도 그런 사람 중 한 명이 될 뻔했다.
실제 그의 첫 직장은 은행이었다. 지금의 그를 생각하면 쉬이 상상이 가지 않는다. 박 지사장이 은행원으로서 사회 첫발을 내디딘 것은 집안 사정이 어려웠기 때문이었다. 꿈을 좇기보다는 우선 눈앞에 닥친 현실적인 문제들을 해결해야만 했다. 박 지사장은 대학에서 전자계산학을 전공하고 졸업 후 경남은행에 입사해 전공을 살린 코딩 업무를 맡았다. 나중에는 코딩에 지루함을 느껴 지점으로 나가 영업도 해봤지만 이 역시 만족스럽지 않았다.
그렇게 매일매일을 지루함과 싸우던 시절 항상 마음속에 부담으로 남아 있던 문제가 해결되면서 결단을 내렸다. 박 지사장은 “은행원으로 일하면서 서른 즈음에 집안의 부채를 다 갚게 되자 마침내 부모님께 하고 싶은 공부를 하겠다고 말씀드렸다”며 “그때 결단을 내리지 않으면 평생 후회하며 살아갈 것 같았다”고 말했다.
그렇게 하고 싶은 일을 찾아 처음으로 고향 마산을 떠나 한국을 대표하는 도시계획 전문가인 최막중 교수(현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가 있던 한양대 도시대학원에서 석사 과정을 밟았다. 꿈을 향해 나아가는 그 자체가 즐거웠던 시절이었다. 박 지사장은 “대학원에 다닐 때는 밤새 연구실에 있었다”며 “한국 최고의 도시 전문가들의 생각과 도시 관련 책을 소화하고 흡수하는 데 여념이 없던 시절이었다”고 말했다. 그 이후 박 지사장은 일본 와세다대 대학원에서 도시재생·도시개발을 전공하고 모리빌딩에 입사해 여러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도시 전문가로 인정받게 됐다.
◇‘도시 경쟁력’에 대한 고민이 필요한 시점=최근 한국 사회에서도 도시재생과 도시 경쟁력에 관한 논의가 폭넓게 진행되고 있다. 우선 새롭게 들어선 문재인 정부가 도시재생 뉴딜을 대표적인 공약 중 하나로 내세우고 있다. 박 지사장은 현 정부의 도시재생 정책을 어떻게 평가하고 있을까. 그는 기대와 아쉬움을 동시에 나타냈다. 박 지사장은 새 정부가 도시재생 문제에 관심을 나타내는 것에 대해서는 우선 환영의 뜻을 나타내면서도 “도시재생은 크게 낙후된 지역의 생활환경을 개선하는 것과 도시 경쟁력을 올리는 것, 두 가지 측면에서 얘기할 수 있는데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도시 경쟁력에 대한 얘기는 구체적으로 언급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특히 “한국 사회가 참고 사례로 자주 언급하는 이웃 나라 일본의 경우 도시재생 관련 논의에서 90% 이상을 도시 경쟁력이라는 관점에서 접근하고 있다”며 “한국도 전체 도시재생에서 최소 50% 이상은 도시 경쟁력에 대한 내용이 포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 지사장이 이처럼 도시 경쟁력을 강조하는 이유는 한 도시의 경쟁력이 곧 국가의 경쟁력으로 연결된다고 믿기 때문이다. 도시 경쟁력 제고를 통해 한국 경제를 살리고 새 정부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일자리 문제도 해결할 수 있다고 그는 말한다. 박 지사장은 “한국은 일본이나 미국·중국과 달리 내수만으로 성장하기에는 한계가 있으며 일자리 창출을 위해서는 싱가포르나 네덜란드와 같이 외국계 기업과 자본이 찾아오는 도시 경쟁력을 갖춰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특히 최근 저가 항공 발달로 과거 유럽처럼 동아시아 지역이 하나의 생활권이 돼가고 있다”며 “이를 감안하면 하루빨리 도시 경쟁력을 갖추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런 측면에서 그는 서울을 포함한 수도권과 지방이 균형적으로 발전해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입장을 밝혔다. 박 지사장은 “국내 도시들끼리 경쟁을 할 때는 파이를 나눠 가져도 되지만 이제는 동아시아 도시들 간의 경쟁이 벌어지고 있는 상황”이라며 “한국을 대표하는 대표 도시인 서울이 경쟁력을 가져야만 사람들이 찾아오고 서울을 방문한 사람들이 한국의 다른 도시들도 둘러보게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도 이미 균형발전론을 포기했다고 그는 덧붙였다.
향후 교통 인프라 몰리고 가용 용지 넓은
서울역~용산역~여의도 지역 가장 기대
◇서울 업무 지구 간의 연결성, 미세먼지 해결해야=한국을 대표하는 서울의 도시 경쟁력을 떨어뜨리는 가장 큰 문제점으로 그는 업무 지구 간의 연결성 미흡과 미세먼지를 꼽았다. 업무 지구 간의 연결성 문제는 공항에서 서울 3대 업무 지구(강남·도심·여의도)까지의 연결성과 3대 업무 지구 간의 연결성 문제를 모두 해결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박 지사장은 “여의도를 제외하고 도심과 강남은 김포공항과 인천공항에서 접근하기가 너무 힘들다”며 “전 세계적으로 가장 경쟁력 있는 도시 중 하나인 영국 런던도 도심과 히드로 공항과의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계속 인프라 시설을 개선하고 있는데 서울도 가장 시급하게 개선해야 하는 부분이 공항과 업무 지구 간의 접근성”이라고 말했다.
3대 업무 지구 사이의 떨어지는 접근성도 문제점으로 지적했다. 그는 “광화문과 강남의 경우 사무실에서 사무실로 이동하는 시간이 30분 이내로 줄어들어야 업무 지구 간의 유기적인 연결이 가능하고 도시의 경쟁력이 생긴다”며 “신분당선이나 광역급행철도(GTX) 노선 개통 및 확장을 서두르고 민간이 가진 잠재력을 극대화할 수 있는 방향으로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미세먼지의 심각성에 대해서도 경고했다. 박 지사장은 최근 본사에서 일본으로 들어오라는 연락을 받은 적이 있는데 본인도 떠나고 싶은 마음이 들 정도로 미세먼지 문제가 심각하다고 말했다. 그는 “대기오염이 심각한 중국 베이징에서 외국 기업들이 하나둘씩 떠나는 것처럼 한국도 마찬가지 상황이 올 수 있다”며 “미세먼지의 원인을 제대로 분석하는 동시에 서울 도심에서의 차량 이용 패턴을 바꾸는 것을 고민할 시점이 왔다”고 전했다.
향후 서울에서 가장 기대되는 지역으로는 용산을 중심으로 서울역과 여의도로 이어지는 지역을 꼽았다. 박 지사장은 “용산은 가용 용지가 넓고 주변 서울역 인근으로 모든 교통 인프라시설이 몰리고 있다”며 “서울역-용산역-여의도로 이어지는 지역은 서울에서 글로벌 기업들의 중심지가 될 가능성이 높아 향후 그 가치가 엄청 올라갈 것으로 본다”고 예상했다.
사진=송은석기자
“영화속 도시 노팅힐이 가장 이상적”
직주근접 가능해야 삶에 활력
4대문 내 주거시설 더 지어야
“도시에 모여 사는 사람들 한 명 한 명의 활기찬 삶이 살아나는 것이 도시재생이라고 생각합니다.”
박희윤 모리빌딩도시기획 한국지사장은 도시재생을 이같이 정의했다. 그가 도시를 좋아하는 이유는 도시가 줄 수 있는 다양성, 활기, 그리고 집적성 때문이다. 박 지사장은 도시재생을 통해 결국은 이 같은 다양성과 활기찬 도시의 근간이 되는 도시인들의 생활이 살아나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영화 ‘노팅힐’을 예로 들었다. 박 지사장은 “노팅힐의 주인공인 휴 그랜트는 서점을 운영하면서 그 동네에 살고 매일매일 친구들끼리 만나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나누거나 고민거리를 공유한다”며 “이상적인 도시의 모습”이라고 말했다. 반대로 한국 도시인들의 삶은 이와 거리가 멀다고 말했다. 박 지사장은 “업무를 마치고 집에 가면 오후8시가 넘기 때문에 동네에서 무엇인가를 할 생각을 하지 못한다”며 “저녁이 있는 삶을 위해서는 직주근접이 가능해야 하며 실제 일본도 그렇게 유도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런 점에서 그는 4대문 안에 지금보다 더 많은 주거시설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박 지사장은 “현재 도심 내 업무시설은 충분하며 부족한 것은 주거시설”이라며 “주거시설을 더 많이 지어 사람들이 도심으로 몰려들게 하고 이를 통해 도시가 활기를 띨 수 있게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고병기기자 staytomorrow@sedaily.co
●He is
△1968년 경남 마산 △경남은행 근무 △한양대 도시대학원 석사 △일본 와세다대 이공학술원 박사과정 수료 △한양대 겸임교수 △한국토지주택공사(LH) 경제기반형도시재생사업 자문위원 △서울시 동남권·창동상계·세운지구 등 자문위원 △모리빌딩도시기획 한국지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