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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①] 권율 “‘귓속말’ 정신적으로 예민했던 작품”

무겁고 치열했던 ‘법비’의 옷을 벗은 배우 권율의 표정은 한결 편안해 보였다.

“어떤 연기든 쉬운 것이 없지만 ‘귓속말’ 속 강정일은 특히나 정신적으로 예민해지고 날카로워졌던 작업”이었음을 고백하는 권율의 얼굴에는 극중에서 찾아 볼 수 없었던 바르고 환한 미소가 걸려있었다. 드라마 밖을 나와 웃는 권율을 보면서 그제야 그동안 그를 대표하던 수식어가 ‘밀키남’이었다는 것이 떠올랐다.




사진=조은정기자사진=조은정기자


권율은 SBS 드라마 ‘귓속말’에서 법률회사 태백을 자신의 손에 넣기 위해서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는 변호사 강정일을 맡아 열연을 펼쳤다. “악은 성실하다”는 명대사를 남긴 강정일은 기존 ‘무조건 나쁘기만 한’ 악역이 아닌, 선과 악이 공존하는 ‘성실한 악’을 보여주며 안방극장에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강정일은 그동안 자신의 목표를 향해 ‘쭉’ 달려갔던 인물이다. 탄탄대로일 것이라고 생각했던 자신의 삶에 원치 않는 것들이 끼어들면서 삶이 불안정해지면서 자신의 것을 지키기 위해 열심히 달려갔던 것이다. 비록 그것이 악일지라도 말이다.”

권율의 악역 도전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전작인 tvN 드라마 ‘싸우자 귀신아’에서 악귀가 빙의된 두 얼굴의 악인 주혜성을 통해 등골이 서늘한 악을 보여준 바 있다. 연이어 악역에 도전한 권율이었지만 ‘싸우자 귀신아’ 때와는 또 달랐다. ‘싸우자 귀신아’ 속 주혜성이 이유없는 ‘악’ 그 자체였다면, 강정일은 현실 속 어딘가에 있을 법할 정도로 훨씬 인간적이면서 복합적인 감정을 가진 인물이었다.

“그때(‘싸우자 귀신아’)는 ‘악귀’에 빙의된 인물이다보니 이성적으로 판단하지 못하는 악이었다. 쉽게 말해 제 껍데기를 빌린 사악함을 연기하면 됐던 반면, ‘귓속말’ 속 강정일은 단순한 악의라고 설명하기에는 입체적인 부분이 많았다. 많은 분들이 왜 연속으로 악역을 연기하느냐고 많이 물어보셨는데, ‘귓속말’을 선택한 이유는 간단했다. 그동안 늘 박경수 작가의 작품을 볼 때마다 선과 악의 구분이 없는 현실적인 글이라고 생각을 했었는데, 역시나 극중 강정일이 단순한 악의와는 다르더라. 강정일이 저지른 악은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고수하고 밀고 나가려던 중 상대방과 상충하면서 악한 모습이 나온 것이다. ‘내가 저 아이를 죽여야겠다’ ‘악행을 해야겠다’는 사이코패스적인 악과 달리, 살인을 할 수 밖에 없는 분명한 이유가 있었다. 분명히 전작과 차별점이 있었으며, 이를 연기하고 싶었다.”

사진제공=SBS사진제공=SBS


분명한 작품 선택의 기준을 가지고 최선을 다 한 권율의 연기에 대한 호평이 이어졌지만, 한편으로는 잇따른 악역으로 인해 이미지가 고착될 수도 있다는 우려 섞인 시선도 공존했다. 이에 대해 권율은 실제로도 이러한 이야기를 적지 않게 들었음을 털어놓았다.

“다른 사람들보다도 어머니께서 조금은 밝은 역할을 했으면 좋겠다고 하시더라. 어머니도 아들이 나오는 작품을 좋아하시면서 보시는데, 이번 연기하는 것을 보면서 ‘너무 힘들겠다. 분노하는 신도 많고’라고 걱정스럽게 말씀하시더라.”

그러면서 권율은 “제 개인적인 생각으로 당분간 악역은 멀리할 예정”이라며 웃었다. 다른 때와 다르게 연기를 하면서 예민해진 지점이 분명하게 존재했으며, 그로 인해 주변의 걱정을 사기도 했다는 것이다.

“일단은 조금은 심리적으로 몰아붙이는 역할은 멀리하고 싶다. 극한 상황에 몰아붙이는 것보다는 차라리 무릎이 까질 정도로 몸을 극하게 쓰는 액션연기를 해보고 싶다. 아니면 조금은 말랑말랑한, 요즘 화창한 날씨와 어울리는 밝은 로맨틱코미디나, 굉장히 한량 같은 코미디도 해보고 싶다. (웃음)”


“연기를 하면서 예민해진 지점이 있다”는 권율의 말은 강정일을 연기하는 것이 결코 만만치 않았음을 알리는 또 다른 고백이었다. 실제로 강정일이라는 캐릭터가 자신에게 있어 ‘벅찬 상대’였음을 밝힌 권율은 “내가 과연 이것을 할 수 있을까 싶었다. 그래서 매 순간마다 늘 집중하고 낭떠러지에 선 기분으로 연기를 해 왔던 것 같다”고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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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귓속말’ 캡처사진=‘귓속말’ 캡처


“저는 연기를 하면서 불편하게 하는 것을 경계하는 사람이다. 연기할 때의 예민함이 실제 생활까지 나와서 다른 이를 불편하게 할까 경계를 하는 사람이고 늘 조심을 하는데, 이번 작업은 그게 잘 안 됐다. 나도 모르게 예민해지는 내가 보이더라. 이를테면 아침에 뿌린 향수 같았다. 저녁 쯤이 되면 내 향기에 익숙해져서 나는 못 맡지만, 다른 사람은 제 향수냄새를 맡게 되는, 그런 향수와 같은 예민함이었다. 강정일 캐릭터는 생각보다 더 어려웠고, 실제생활에서도 예민해지고 힘든 역할이지만 그렇기에 또 극복하고 싶었다.”

쉽지 않은 도전이었지만 권율은 ‘귓속말’에서 자신이 맡은 바를 충실하게 소화해 나갔다. 악의를 억누르는 감정 연기는 그의 트레이드마크가 됐으며, 그의 연기를 본 많은 시청자들은 권율이 ‘인생캐릭터’를 만났다며 칭찬하기도 했다.

“강정일이 ‘인생캐릭터’라고 많은 분들께서 말씀해 주시는데, 사실 그런 것에 대해 체감을 못하겠다. 도취도 아니고 무시도 아니다. 배우 인생을 살아오면서 전 제가 해 왔던 모든 것이 인생캐릭터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동안의 캐릭터들이 지금이 권율을 만들어 주었고 지금까지 허튼 작업은 없었다고 생각한다. 목이 졸릴 만큼 스스로에게 처절한 작업을 하게 만들어준 강정일은 인생캐릭터라기 보다는 고마운 캐릭터이다. 강정일 뿐 아니라 지금까지 연기해온 모든 캐릭터와 하나하나 만나서 밥이라도 사주고 싶은 심정이다. (웃음)”

권율이 강정일을 연기하면서 달라진 것이 하나 있다. 바로 살이 많이 빠진 것이다. 촬영을 시작하기 전 캐릭터를 위해 일부러 6kg을 감량한 권율은 “작업을 하다보니 저도 모르게 빠진 살도 있더라”고 말했다.

사진=조은정기자사진=조은정기자


“저는 제가 가지고 있었던 많은 것들을 변화를 주려고 했던 것 같다. 살도 많이 뺐고, 머리도 짧게 쳐서 올리고, 짓지 않았던 얼굴 표정에서 연기 진폭까지. 외적인 부분뿐 아니라 내적인 부분까지, 기존의 권율이 보였던 이미지가 제 발목의 근처도 못 따라오게 하고 싶었던 욕심이 있었다. 권율이 가지고 있었던 밀크남 이미지를 확실하게 지우고, 성인 남자의 날카롭고 예민한, 날이 선 인물을 보여주고 싶다. 권율이 ‘식샤를 합시다2’ 때 권율이었어?라는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강정일을 자평하기는 쉽지 않지만, 아등바등 변하려고 했던 노력을 감사하게 수고했다고 말씀해 주시는 분들이 많아서 다행이다.”

한동안 예민했던 권율은 ‘귓속말’이 끝나자마자 별거 아닌 거에 신경을 썼지 했을 정도로 거짓말처럼 마음이 가벼워졌다고 말했다. 권율에게 촬영장에서 본인 외에 예민한 사람은 없었느냐는 질문에 “그냥 제가 제일 예민했던 것 같다. 저 때문에 고생하셨을 것 같다”며 웃어보였다.

“현장 분위기가 정말 좋았다. 이보영 선배님이 경험이 많으셨던 분이시다 보니 리더십이라든지 현장의 텐션이 있었다. 농담도 잘 하고 다 같이 어울리면서 스스럼없이 이야기를 거는 스타일이다보니 대부분의 스태프들이 좋아하는 배우였다. 이상윤 선배님은 보시다시피 매너가 좋다. 굉장히 친구들의 이야기를 잘 수렴해주는 반장 같은 느낌, 공부도 잘 하는데 친구들이 놀면 같이 놀면서 도와주는 반장 같은 느낌이었다. 박세영은 현장에서 막내지만 자신의 것을 묵묵히 잘 지키려고 하는 것이 고마웠다. 이영우 PD님 자체도 현장 분위기를 유하게 만드시는 분이셔서, 한 사람도 예민해지거나 그런 것 없이 촬영을 이어갈 수 있었다.”

모든 작품에 최선을 다해 연기한 권율이지만 이상하게도 유독 ‘멜로’와는 거리가 멀다. 상대방과 이어질 듯하다가도 결국 사랑을 이루지 못하는 것이다. ‘귓속말’에서도 역시 최수연(박세영 분)과 사랑으로 이어질 듯하다가도, 결국은 끝내 각자의 이익에 따라 갈라지고 말았다.

“이상하게도 늘 멜로가 시작 될 쯤 하면 상대 배역들이 원래 사랑으로 돌아가더라. 한 번쯤은 끝까지 이어갈 수 있는 멜로를 하고 싶다.(웃음)”

/서경스타 금빛나기자 sestar@sedaily.com

금빛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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