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잎과 폭탄의 공통점은 ‘떨어진다’는 것. 갑작스레 떨어진 폭탄에 창문은 부서지고 아랫목 이불 속에 누웠던 집주인은 혼비백산 피신했다. 화사한 꽃잎 무늬 벽지는 졸지에 마구 갈긴 총구의 흔적처럼 처참해졌다. 지난 2010년 11월 연평도 포격 사건 직후 현지 피해자의 집을 찾아가 찍은 사진작가 노순택(46)의 연작 ‘잃어버린 보온병을 찾아서’ 중 하나다. 아름다움과 비참함의 경계에서 줄타기 하는 대한민국의 기괴한 풍경은 이 뿐 아니다.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계단을 촬영한 ‘비상국가’는 크리스마스 트리 아래로 줄지어 선 경찰들의 모습이 마치 동화 ‘호두까기 인형’을 떠올리게 한다. 그러나 이들의 손에는 시위 주도자를 찾는 수배 전단지가 들려있고 눈은 매섭게 시민들을 가른다.
근래의 한국사회를 “믿기 어려울 만큼 연극적이고 초현실적이며 비현실적”이라고 말하는 노순택의 개인전 ‘비상국가 Ⅱ: 제4의 벽’이 아트선재센터에서 8월 6일까지 열린다. 조명이 켜져 무대 위의 배우가 관객을 보지 못하게 되는 상태를 가리키는 ‘제4의 벽’은 연극 무대 뿐 아니라 보이지 않는 벽을 두고 극단적 대치상황을 이룬 남북관계, 진영 간 대립을 보이는 국내 갈등상황을 모조리 아우른다.
분단체제가 만든 남북한의 기괴한 긴장과 갈등을 ‘오작동 상태’로 규정한 노순택의 개인전은 앞서 2008년 독일에서 ‘비상국가Ⅰ’이라는 제목으로 선보였다. 우여곡절 끝에 9년 만에 한국으로 넘어온 그 두 번째 전시에는 최근의 사회적 이슈까지 더해진 ‘비상국가’ 시리즈를 비롯해 ‘가뭄’, ‘강정-강점’, ‘고장난 섬’ 등 200여 점이 걸렸다.
노순택은 ‘섬’이라는 개념에 주목했다. 뭍과는 분리된 섬의 고립이 한국사회의 오작동을 부른다는 것이다. 한국을 3면의 바다와 휴전선으로 갇힌 거대한 섬으로 표현한 그는 백령도의 천안함, 연평도 포격, 미 공군의 훈련지였던 매향리 농섬 그리고 제주 강정 해군기지를 사진에 담았다. 모두 국가가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고 이를 넘는 순간 ‘종북’, ‘빨갱이’ 등의 표현으로 탄압했던 사례들이다.
섬은 바다에만 있지 않았다. 작가는 노동자의 고공 농성을 ‘뭍 위의 섬’이라 표현했다. ‘현기증’에서는 뭍 위의 섬에서 일어났던 일들에 대해 보여준다. 1931년 평양 을밀대 위에서 살인적인 노동시간과 저임금, 그리고 이마저도 다시 깎고 해고를 남발하는 공장주의 횡포를 고발했던 한 작은 체구의 여인부터 최근의 노동시위 현장까지 약자의 최후 수단을 보여준다. 시위 진압을 위해 동원된 살수차의 물대포를 찍은 ‘가뭄’ 연작은 역설적인 제목만큼 이미지 또한 너무나 아름다워 ‘찬란한 아픔’을 배가시킨다.
이번 전시는 김선정 아트선재센터 관장, 노순택의 독일·스페인 순회전을 기획했던 독일 슈투르가르트 뷔르템베르기셔 쿤스트페어라인 디렉터 한스 D. 크리스트와 토탈미술관 신보슬 큐레이터가 협력 기획했다.
/조상인·우영탁기자 ccsi@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