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시각] 술 안 마시는 사회의 폐해를 논하시오

김경훈 디지털미디어부 차장

김경훈 디지털미디어부 차장김경훈 디지털미디어부 차장


“요즘 사람들이 술 마시기를 좋아하는 폐단이 심해져 술에 빠져 일을 하지 않는 사람도 있고 술에 중독돼 품위를 망치는 사람도 있다. 이를 구제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대학입시 논술 전형에 나온 주제도 언론사 입사시험의 논술 문제도 아니다. 1516년 중종이 책문(策問)에서 낸 문제다. 책문은 조선시대 과거시험의 마지막 관문으로 임금 앞에서 치르는 서술시험이다. 임금이 직접 시대의 현안으로 ‘술의 폐해’를 언급했던 것을 보면 우리가 술깨나 좋아하고 많이 마시는 민족이라는 데 이의를 달 사람은 많지 않을 듯싶다.


딱 500년이 흐른 지금 여전히 사회가 술 때문에 시끄럽다. 잊을 만하면 불쑥 튀어나와 주당들의 가슴을 철렁하게 하는 ‘서민의 친구’ 소주에 건강증진기금 부담금을 붙이네 마네 하는 논란, 국민들의 속을 뒤집어놓는 높으신 분들의 ‘폭탄주 망언’ 시리즈를 뒤로하고 이제는 술집들이 줄줄이 문을 닫을 정도로 술을 안 마시는 세태가 사회적 문제로 떠올랐다.

최근 국세청이 발표한 생활밀접업종 사업자 현황을 보면 올해 1월 전국 일반주점 사업자는 5만5,761명으로 전년과 비교할 때 6.1% 감소했다. 1년 만에 3,600개의 술집이 폐업한 것으로 하루에 10곳씩 장사를 접었다. 일반주점 사업자는 2015년 12월만 해도 6만명을 넘었으나 매달 감소세를 면하지 못하며 1년 만에 5만명대 중반까지 줄어들었다.


술집이 사라지는 것은 술 한잔도 부담될 만큼 오랜 기간 대한민국을 억누르고 있는 경기 둔화의 탓이 크다.

관련기사



‘월급과 자식 성적 빼고는 다 오른다’는 말이 절로 나올 정도로 먹고살기 빠듯한 서민들의 호주머니 사정은 술집 매출에서 고스란히 드러난다. 2010년 서비스업 생산을 100으로 봤을 때 지난 2월 주점업의 서비스업 생산은 70.5를 기록했다. 2010년에 비해 술집 매출이 30% 가까이 줄었다는 뜻으로 관련 통계를 작성한 2000년 1월 이래 가장 낮았다.

여기에다 ‘술로 시작해 술로 끝나는’ 회식문화가 점차 사라지고 함께 마시는 술자리가 싫어 혼자 집에서 즐기려는 ‘혼술족’ ‘홈술족’이 늘어나는 것도 한몫하고 있다.

‘장진주사(將進酒辭)’에서 “한 잔 먹새근여 또 한 잔 먹새근여 꽃 꺾어 세어 가며 무진무진 먹새근여”라며 술을 권하던 송강(松江) 정철. 그 호기로운 풍류는 고사하고 하루의 고단함을 달래주던 한잔 술의 위로와 운치를 얘기하는 것마저 아득하게 느껴지는 녹록지 않은 현실.

먼 훗날 술 안 마시는 사회가 올 것을 내다보셨는지, 혹시나 그러하셨다면 어떤 책문을 내려 시대를 진단하고 답을 찾으셨을지 잠들어 계신 중종을 다시 깨워 여쭙고 싶은 생각이 드는 요즘이다.

김경훈 기자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