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호타이어 매각을 좌우할 ‘금호’ 상표권과 관련해 산업은행이 자의적으로 조건을 해석하고 일방적으로 매각을 강행한 사실이 확인됐다. 산업은행 스스로 ‘합리적 조건’을 전제로 사용 조건을 협의할 수 있다고 밝혔는데도 브랜드 소유주인 금호산업의 의사와 관계없이 받아들이기 힘든 조건을 내걸고 합의를 종용한 것이다. 금호타이어 매각을 주도한 산업은행이 채권은행의 지위를 남용해 매각 작업을 지나치게 안일하게 진행했다는 비판이다.
◇9개월 만에 돌아온 황당한 공문=지난해 9월13일 금호산업에 한 통의 공문이 도착했다. 발신인은 산업은행. 금호타이어 매각을 위해 금호 상표권을 최소 5년 이상 비독점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권리가 필요하고 이를 위해 협조해달라는 내용이었다. 산은은 상표권 사용 조건에 대해 “합리적 범위 내에서 조정 가능하다”고 명시했다. 금호산업은 이사회를 열고 같은 해 9월19일 산업은행에 “상표권을 5년간 비독점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권리를 하여할 의사가 있다”고 밝혔다. 다만 산업은행이 최초 제시했듯 “상표권 사용료와 조정 기준은 합리적 수준의 합의가 이뤄지는 것을 전제로 한다”고 명기했다.
이후 약 9개월이 지난 올 6월5일 금호산업엔 황당한 공문이 도착한다. 발신자는 역시 산업은행. 금호 상표권 사용에서 △기간은 최초 5년에 15년 연장 가능 △3개월 이전 서면 통지하면 해지 가능 △상표권 사용요율 연 매출액의 0.2% 등의 내용이 담겼다. 산업은행이 더블스타와 주식매매계약서(SPA)를 체결할 당시 합의했던 조건을 일방적으로 통보한 것이었다. 금호산업과는 아무런 협의도 없었다. 공문 역시 언론에서 브랜드 상표권이 문제가 될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 후 한참 뒤 정식으로 발송했다. 금호산업은 지난 9일 이사회를 열고 △기간 20년 사용 △해지 불가 △사용료율은 매출액의 0.5%의 내용을 담아 답했다. 하지만 돌아온 대답은 황당했다. 산업은행은 “(기존에 제시한 조건은) 본 건 거래 종결을 위해 매우 중요한 사항”이라며 “매각 무산으로 금호타이어 경영 정상화에 중대한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며 조건을 받아들이라고 종용했다. 산업은행이 애초에 제시했던 ‘합리적 범위 내에서 조정’은 없었다.
◇산은 절차적 하자에 힘 실리는 재매각론=금호산업이 19일 이사회를 열어 기존 입장을 고수한 것 역시 이런 배경이 깔렸다. 금호산업은 “금호 브랜드 및 기업 가치 훼손을 방지하는 최소한의 조건으로 산정된 원안을 아무런 근거 없이 변경할 수 없다”고 밝혔다. 실제로 금호산업은 산업은행이 제시한 요건 중 20년 사용 등은 한발 물러났다. 브랜드 사용료율 역시 재계 주요 지주사들과 비슷한 0.5% 전후로 제시했다. 하지만 산업은행은 일방적으로 ‘관련 조건을 받아들이라’며 강권했다. 박삼구 회장의 금호아시아나 경영권을 박탈할 수 있다거나 금호타이어 법정관리 등을 운운한 것 역시 같은 맥락이다.
산업은행이 금호 브랜드 사용조건을 밀어붙이는 이유는 매각 무산에 대한 책임론을 피하기 위해서다. 더블스타는 금호타이어 인수가를 시세보다 2,000억원가량 더 써냈다. 하지만 금호산업 조건대로 20년간 매출액의 0.5% 수준을 요율을 적용하면 약 3,000억원을 추가로 내야 한다. 산은의 부실 매각 진행이 빚어낸 촌극인 셈이다.
채권단 내부에서는 이번 매각전이 불발될 경우 금호타이어에 부실의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분위기가 짙다. 지난해 금호타이어 경영평가를 2015년에 이어 D등급으로 부여해 회사 경영진 교체 또는 해임권고가 가능하도록 한다는 복안이 오가고 있다. 이 경우 박 회장은 대표이사직을 상실하게 된다. 다만 박 회장 또는 금호산업에 책임을 묻는 것이 온당하냐는 목소리도 크다. 채권단이 금호산업 측과 협의 없이 상표권 조건을 결정한 후 매각을 추진할 경우 매각전에 발목이 잡힐 것이라는 전망이 일찌감치 채권단 내부에서 예고됐기 때문이다. 실제로 우리은행은 3월 채권단이 더블스타와 주식매매계약서를 맺기 전 산은에 상표권 문제를 먼저 해결해야 한다는 입장을 전달한 바 있다. “상표권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 경우 완전한 매각이 이뤄지기 힘들다”는 것이 우리은행의 당시 판단이었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매각 결렬 가능성을 채권단 스스로 만들어놓고 결렬된 책임은 채권단이 지지 않은 채 전적으로 금호아시아나 측에 책임을 씌우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 때문에 업계에서는 재매각론에 힘이 실리는 모양새다. 채권단이 공정거래위원회에서 기업결합 승인을 받고 산업통상자원부의 방산 부문 매각 승인을 받는 행정 절차를 고려할 때 이달 말까지는 상표권 문제가 해결돼야 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일부 협의가 길어지더라도 보름 남짓한 시간 동안 양측이 극적인 타결점을 찾는 것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채권단은 20일 회의를 열고 향후 처리 방안을 논의할 계획이다. /강도원·김흥록기자 theone@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