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경제·금융일반

한미 FTA 재협상 요구와 우리의 대응

FORTUNE'S EXPERT | 윤창현의 ‘글로벌 전망대'

이 기사는 포춘코리아 2017년 6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한미 FTA 재협상을 강하게 주장하고 있다. 한국이 미국을 이용해 돈을 벌면서도 미국에 적절한 대가를 치르지 않고 있다는 게 트럼프 대통령의 생각이다. 무역흑자를 통해 달러를 벌고 외환보유고를 충분히 쌓아야 하는 우리 입장에선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영국의 한 전래 동화에 ‘골디락스’라는 소녀가 등장한다. 한 소녀가 숲에서 길을 잃고 헤매다가 실수로 곰들이 사는 집에 들어갔다. 그런데 곰 가족은 식사를 하기 위해 그릇에 ‘죽’을 담아 놓고 잠깐 산책을 나갔다. 소녀가 보니 아빠 곰의 죽은 너무 뜨겁고, 엄마 곰의 죽은 너무 차가운데, 아기 곰의 죽은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고 따뜻했다. 배가 고팠던 골디락스는 아기 곰의 죽을 먹어 치우고 잠이 들었다. ‘골디락스 경제’라는 말은 골디락스가 먹은 죽이 따뜻했다는 부분에서 유래한 용어다. 인플레이션은 경기가 과열되고 뜨거워지면 생기는 문제다. 실업은 경기가 부진한 경우, 즉 차가워질 때 생기는 문제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도래하기 전, 세계 경제는 한동안 물가가 안정돼 인플레이션 없는 호황을 구가하고 있었다. 인플레율도 낮고 실업도 낮은 당시 상황을 차갑지도 뜨겁지도 않는 ‘골디락스 경제’라 표현하면서 이 단어가 유명해졌다. 그러나 얼마 후 글로벌 금융위기가 발생하고 세계 경제가 불황 국면으로 급격히 전환되면서, 이 단어는 전설이 되어 버렸다.

그런데 최근 반전이 일어나고 있다. 금융 위기가 발생한 지 약 10년이 지난 지금, 미국 경제와 관련해 ‘골디락스 경제’라는 표현이 다시 등장하고 있다. 최근 존 윌리엄스 미 샌프란시스코 연방 은행 총재는 미국 경제가 골디락스 경제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고 평가했다. 경제 위기의 그림자가 사라지고 있다는 점이 확인되고 있어서다. OECD는 2017년 미국 경제 성장률 전망치를 2.3%에서 2.4%로 상향 조정했다. 미국의 2016년 4분기 소비지출도 3.5%(연율) 증가해 예측치보다 훨씬 높은 수준을 보여줬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취임한 지 3개월여가 지난 현재, 미국경제는 이처럼 상당 부분 순항 조짐을 보이고 있다. 주가도 호조세를 보이고 제조업 경기도 좋아지고 있다. 투자 증가 조짐이 나타나면서 소비 심리도 개선되고 있다.

이 같은 변화의 요인은 복합적이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요인으로 트럼프 대통령의 경제 정책, 즉 트럼프노믹스를 꼽을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을 상대로 흑자를 내는 국가들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을 갖고 있다. 미국에 대해 상당한 흑자를 내고 있는 중국, 독일, 일본, 한국 등은 미국을 이용해 돈을 벌면서도 미국에 적절한 대가를 지불하지 않는 불량국가들이라고 인식하고 있다. 미국의 수입 규모는 2015년 기준 2조2,000억 달러 정도다. 심각한 적자를 기록하고 있다. 중국에 대한 적자는 3,656억 달러, 독일은 741억 달러, 일본은 686억 달러, 멕시코는 483억 달러, 그리고 한국은 283억 달러였다. 우리나라를 포함한 이들 국가들이 미국 상대 무역에서 흑자를 기록한 게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닌데도 갑자기 문제를 삼는 걸 보면 뭔가 기류 변화가 있다는 게 느껴진다. 대미 흑자를 엄청나게 내고 있는 일본의 아베 수상, 독일의 메르켈 수상, 중국의 시진핑 주석은 모두 미국을 방문해 트럼프 대통령과 회담을 가졌다. 메르켈 총리의 경우, 트럼프 대통령에게 손을 내밀었는데도 트럼프는 이를 차갑게 외면했다. 미국이 달라지고 있는 게 분명하다.





브레튼우즈2.0 체제 하에서 미국의 경상수지 적자는 세계 경제에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미국이 적자를 낸 만큼 달러가 전 세계 경제에 공급됐다. 제 3자인 한국도 이런 환경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중동에서 원유를 수입할 때도 달러 유동성이 필요하다. 국제결제통화인 달러는 세계경제 성장에 맞게 충분히 공급되어야 하는데, 그 과정에서 미국의 경상수지적자가 달러의 공급채널 역할을 해왔다. 달러 유동성이 부족할 경우 큰일 당할 각오를 해야 하는 나라의 경우, 무역흑자가 문제를 완충해주는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그런데 미국 대통령이 대미 흑자를 통해 달러를 버는 행위를 미국에 해를 끼치는 행위로 인식하고 있다는 사실이 확인되고 있다. 달러 유동성의 원천인 대미 흑자를 줄이라고 요구하는 걸 보면 속이 답답해진다.


오바마 대통령 재임 기간 동안 미국 국가부채는 약 9조 달러 늘어나 부채 규모가 거의 20조 달러 수준에 육박했다. 거대한 빚을 물려받은 트럼프 대통령은 국가 부담을 줄이고 기업 일자리를 획기적으로 늘려 이에 대응하려 하고 있다. 환경규제 완화, 셰일오일 및 가스 개발 촉진, 금융규제 완화 등도 준비하고 있다. 기업들이 돈을 더 벌고 일자리를 더 만들도록 유도하면 정부 부담이 줄어들고 재정 여력도 생겨 대규모 SOC 투자가 가능해진다. 그렇게 되면 미국경제는 상당한 호경기를 누릴 가능성이 높다.

관련기사



이제 우리도 철저한 준비를 해야 한다. 한미 FTA 재협상 전에 대미 흑자를 대폭 축소시켜 FTA 재협상 여지를 최대한 줄여야 한다. 일단 소나기를 피해야 옷이 덜 젖는다. 비기축 통화국인 우리나라는 흑자를 통해 달러를 벌고 외환보유고를 충분히 쌓아야 외환위기를 피해갈 수 있다. 무역흑자는 우리의 생명줄 같은 역할을 한다. 미국 달러가 전 세계 결제통화로 사용되는 브레튼우즈2.0 체제 하에서 우리 상황을 미국과 수평 비교할 수는 없다. 그래서 자국 통화가 일정 부분 기축통화 지위를 가진 독일이나 일본과 같은 수준으로 우리를 평가하는 건 문제가 있다는 점을 미국에 잘 전달해야 한다. 새 정부가 어려운 통상 환경을 슬기롭게 대응해 헤쳐 나가길 기대한다.






윤창현 교수는…

▲1960년 충북 청주▲1979년 대전고 ▲1984년 서울대 물리학과 ▲1986년 서울대 경제학과 ▲1993년 미 시카고대 경제학박사 ▲1993~1994년 금융연구원 연구위원 ▲1995~2005년 명지대 경영무역학부 교수 ▲2005년~ 서울시립대 경영학부 교수 ▲2012년~2015 한국금융연구원장 ▲현 서울시립대 경영학부 교수 ▲현 공적자금관리위원회 민간위원장



서울경제 포춘코리아 편집부 / 글 윤창현 교수

윤창현 교수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