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은 유망한 신산업으로 부상하고 있는 분야 중 하나다. 국내에서 많은 유니콘 기업이 배출되려면 이런 유망한 분야에서 비즈니스 모델을 조기 선점하고 투자 유치 기회를 확대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AI 기술에 있어 ‘쌀’과도 같은 빅데이터는 개인정보보호법·신용정보법 등 각종 정보보호 규제에 가로막혀 제대로 활용되지 못하고 있다. 데이터가 울타리 밖으로 나가기 꺼려 하는 개별 기업들의 의식도 스타트업·벤처들의 사업 기회를 막는다. 빅데이터 활용을 활성화시킬 수 있도록 관련 법과 제도가 정비돼야 한다는 지적이 지속적으로 나오는 이유다.
세계는 인터넷이 모바일 시대로 넘어간 지난 2007년부터 ‘디지털 마켓’ 플랫폼에 집중해왔다. 디지털 마켓이란 재화와 서비스가 인터넷과 디지털 기술을 통해 유통되는 시장을 말한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메신저 서비스, AI 서비스 등 다양한 플랫폼을 통해 소비자를 모이게 하고, 그들로부터 데이터를 입수해 소비자 행태를 예측하고, 맞춤형 서비스를 선제적으로 제공해 소비자를 장악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준 것이다. 분당 350GB의 데이터를 모으는 페이스북, 72시간 분량의 동영상을 얻는 유튜브, 2만개의 새로운 사진을 수집하는 텀블러 등이 이런 환경 속에서 탄생한 대표적인 기업들이다.
반면 한국의 정보통신기술(ICT) 정책은 지난 20여년간 통신망 회선 속도만 빠르게 하는 데 모든 역량을 집중해왔다. 그러다 2013년부터 ‘콘텐츠 산업 진흥계획’ ‘SW 혁신전략’ ‘창조 비타민 프로젝트’ ‘클라우드 산업 육성’ ‘사물인터넷 기본계획’ ‘ICT 융합활성화 기본계획’ 등의 인터넷 신산업 정책이 본격적으로 등장하기 시작했다.
‘디지털마켓’ 플랫폼 통해
페이스북·유튜브 등 탄생
정부·국회 법 정비 나서야
그러나 각종 개인정보보호법제가 이미 확고한 상황에서 빅데이터 산업 발전 전략은 실패로 돌아갔다는 평가를 받는다. 지난해 7월 정부가 비식별정보를 빅데이터에 활용하도록 하는 내용의 ‘비식별조치 가이드라인’을 발표했지만 산업 활성화는 여전히 역부족이라는 평가가 곳곳에서 나온다. 빅데이터 활용은 개인정보 오남용과 연결되고, 이는 곧 ‘불법’으로 규정짓는 규제 때문이다. 이는 융합되지 않은 단편적 정부 규제의 대표적인 사례다. 구태언 테크앤로 변호사는 “빅데이터는 수많은 정보 속의 ‘신의 한 수’를 찾아 개인식별이 가능하므로 현행법상 개인정보의 정의로는 안전한 비식별 조치는 달성이 불가하다”고 지적했다.
허일규 SK텔레콤 데이터사업본부장은 “빅데이터 신산업은 우리나라 젊은 개발자들이 잘할 수 있는 분야임에도 발전하지 못하는 것은 정보를 모으는 단계에서 이미 체력이 다 빠져버리기 때문”이라며 “정보를 비식별화하면 개인을 식별할 수 없다는 것은 증명했지만 그런 비식별 데이터로도 의미 있는 모델을 만들어낼 수 있을지는 아직 증명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허 본부장은 이런 규제가 특히 각 기업들이 보유한 데이터를 외부에 내보내는 데 대해 거부감을 갖게 한다는 점도 문제로 꼽았다. 그는 “국내 기업들은 자기들이 갖고 있는 제조·거래 데이터 등을 바깥으로 못 나가게 해야 한다는 의식이 강하다”며 “빅데이터 업체들이 이를 활용하는 데는 큰 어려움이 있다”고 말했다. 빅데이터를 이용한 산업용 비전 서비스를 제공하는 라온피플의 이석중 대표도 “각 사의 데이터는 영업비밀에 해당하는 부분이기 때문에 공개하지 않는 데 대해 이해는 간다”면서도 “하지만 거래업체가 특정 기업의 울타리 내에 들어왔다는 확신이 설 때까지는 기업들이 데이터 제공을 하지 않으려는 경향이 강해 소량의 샘플 데이터로만 모델을 만들어내야 할 때도 있다”고 어려움을 전했다.
이봉규 연세대 정보대학원장은 “이미 국민들은 개인정보를 매일같이 노출하며 살고 있다”며 “현 상황에서 개인정보의 안전한 활용과 보호가 조화를 이루도록 법제도를 서둘러 개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데이터를 활용하지 못하고 보호의 대상으로만 묶어두는 현행 개인정보법제도는 4차 산업의 발전을 막는 장애요인”이라며 “빅데이터를 새로운 사업 모델 개발의 재료로 활용할 수 있도록 정부와 국회가 모두 나서야 한다”고 역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