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거리는 좁혀질 듯 좁혀지지 않았다. 문 대통령이 임기 초반 최측근인 이해찬 전 총리를 특사로 보내고 시 주석이 환대하는 등 박근혜 정부에서 경색된 한중 관계가 풀리는 듯했으나 한국의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도입 등 한반도 안보 문제에 대한 입장 차가 커 첫 상견례도 ‘구밀복검’의 분위기가 연출된 것으로 관측된다.
시작은 화기애애했다. 시 주석은 문 대통령의 당선을 축하하면서 앞선 문 대통령의 특사 파견에 감사를 표명하며 덕담을 주고받았다. 문 대통령 역시 특사에 대한 예우를 다해준 점과 중국 기업인 상하이샐비지가 세월호를 인양한 것을 언급하며 시 주석과 중국에 감사의 뜻을 전했다.
하지만 첫 상견례 성격으로 좋은 말만 주고받기에는 한중이 대립하고 있는 사드와 경제보복, 북핵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등 안보 이슈들이 위중했다. 양 정상은 웃으며 대화를 나누면서도 향후 논의 과정에서 상대국의 스탠스와 의중을 파악하기 위해 시급한 의제들에 대한 생각을 주고받으며 탐색전을 벌였다. 이 때문에 예정시간을 훌쩍 넘겨 75분간 정상회담이 진행됐다.
우선 문 대통령은 사드 도입이 중국을 겨냥한 것이 아닌 날로 고도화되는 북한의 미사일과 핵으로부터 한국을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방어수단인 점을 강조한 것으로 보인다. 특히 문 대통령은 사드에 대한 환경영향평가를 시작하고 있다는 점을 분명히 하면서 한국이 미국의 이익을 위해 무조건 사드를 도입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한 것으로 알려졌다.
아울러 문 대통령은 사드에 따른 중국의 금한령 등 경제보복이 과도하다며 한중 수교 25주년을 맞아 양국의 경제협력을 더욱 확대해나가자고 제안했다. 양국의 정치 상황과 무관하게 경협은 늘려나가는 ‘정경분리’의 원칙을 강조한 셈이다.
이에 시 주석은 문 대통령의 입장을 잘 이해한다면서도 사드 배치 반대 입장을 굽히지 않았다. 문 대통령이 해제를 요구한 경제보복 조치에 대해서는 금한령 해지의 가능성을 열어놓았다. 시 주석은 “중국민들의 관심과 우려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으나 양국 간 교류 협력이 정상화하고 나아가 보다 높은 차원에서 확대되기를 희망한다”고 밝혔다. 단 사드에 대한 중국의 우려가 해소돼야 한다는 점을 명시해 중국의 경제보복을 풀겠다는 문 대통령의 구상이 순탄하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양 정상은 북한의 핵실험과 ICBM 개발 등 군사 도발에 대한 규탄을 하고 유엔 결의를 충실히 이행하겠다고 합의했다. 문 대통령은 한미정상회담에 이어 시 주석에게도 제재와 압박을 가하되 대화의 통로를 열어놓는다는 대북 기조에 대한 지지도 이끌어냈다. 문 대통령은 “국제사회가 제재 및 압박을 통해 북한의 태도 변화를 유도하는 것과 동시에 북핵 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노력을 경주하는 것이 필요하다”며 “중국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의장국으로서 지도적인 역할을 해줄 것”을 당부했다. 시 주석은 “북핵 미사일 개발 저지를 위해 최대한 노력 중”이라며 “이번 미사일 발사가 중대한 사건이기 때문에 G20 회의기간 중 정상 간 공동인식을 도출할 수 있는지에 대해 협력적인 자세로 임해나가겠다”고 화답했다.
하지만 시 주석은 강도 높은 대북 제재에 대한 적극적인 방안을 제시하지 않았다. 문 대통령이 보다 적극적인 제재에 대해 동참해달라고 밝혔지만 시 주석은 이미 중국은 충분한 대북 제재를 하고 있다는 입장을 밝히면서 북한에 대한 한국과 중국의 근본적인 입장 차는 좁혀지지 않은 것으로 해석된다. 시 주석이 최근 미국 재무부가 북한과의 거래를 이유로 중국 단둥은행 등에 대한 독자 제재 조치를 한 것에 대해 불만을 가지고 있어 미국과 손잡은 한국의 대북 제재 요청을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봤기 때문으로 해석된다.
단 양 정상은 조속한 시일 내에 정식으로 한중 정상회담을 열자는 데는 의견을 같이했다.
/베를린=민병권기자 박형윤기자 manis@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