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이희옥칼럼] 국면 관리가 필요한 외교안보정책

성균관대 중국연구소장·정치외교학과 교수·서경 펠로

핵·미사일 실험 지속하는 北

국면 전환 효과 극대화 노림수

'사건' 자체에 일희일비 말고

국면 대비용 레버리지 확보를

이희옥 성균관대 성균중국연구소장.





북핵 문제를 둘러싸고 미국과 중국의 대립이 첨예해지자 양국관계가 ‘투키디데스의 함정’에 빠질 가능성이 있다는 주장이 다시 등장했다. 과거 500년 동안 신흥국가가 지배국가에 16번 도전하면서 그중 12번이나 전쟁으로 비화했던 역사적 경로에 비춰보면 근거 없는 해석도 아니다. 그러나 지난 5일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실험에 대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2371호 결의안을 채택하면서 미중관계가 정상궤도로 빠르게 복귀했다. 양국은 구조적 현안이 산적한 상태에서 북핵 문제로 갈등이 확대되는 것을 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중국이 원유공급 중단이나 의류 임가공 등 이른바 민생 문제를 제재에서 제외한 것도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일이었다. 미중 양국은 한숨을 돌린 상태에서 무역전쟁에 대비하고 동북아에서 새 판을 유리하게 짜는 국면관리로 신속히 방향을 전환했다. 이러한 점에서 우리 외교도 ‘사건’을 국면과 구조로 섬세하게 분리해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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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조 차원에서 미중관계의 협력공간은 넓다. 경제적 상호의존이 심화됐으며 시진핑 중국 주석의 말처럼 미중이 협력해야 할 이유는 차고도 넘친다. 무엇보다 현재 중국의 종합국력이 미국을 능가하거나 대체하기 어렵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북핵 문제를 정책의 우선순위에 올려놓았지만 이것이 미중관계를 압도하는 변수는 결코 아니다. 미중 갈등이 부각되는 것은 양국의 민족주의와 매파의 목소리가 높아지면서 이미지와 실제 사이 간극이 확대됐기 때문이고 동북아 질서가 한미일 대 북중러의 신냉전으로 재편되고 있다는 주장도 구조를 과소평가한 것이다. 투키디데스 함정이라는 용어를 사용한 그레이엄 앨리슨 하버드대 교수의 ‘전쟁을 향한 운명: 미·중은 투키디데스 함정을 피할 수 있을까’라는 책도 제목과는 달리 내용은 그 실현 가능성을 높게 본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국면 차원에서 양국관계는 점차 ‘전환의 마찰(transitional friction)’이 본격화되고 있다. 즉 중국은 기존 제도가 자국을 견제할 목적으로 변화를 의도적으로 늦게 수용한다고 보는 반면 미국은 안전하고 잘 설계된 제도에 대해 중국이 너무 빨리 변화를 요구한다고 느끼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하드파워일수록, 그리고 지리적으로 중국 대륙에 가까울수록 마찰계수가 높아지고 있고 국면의 유동성도 커지고 있다. 특히 중국은 미국과 대만, 남중국해·북핵·일본 문제 등을 효과적으로 거래하면서 장기적 국가전략의 교두보를 이곳에서 만들기 위해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사실 북핵 문제에 대한 중국의 태도도 결코 ‘나쁜 행동에는 처벌이 있다’는 것에 머물러 있지 않다. 안보리 결의안이 통과된 후 필리핀에서 열린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에서 왕이 중국 외교부장은 우리 정부를 상대로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로 정말 ICBM을 막을 수 있는가’라고 각을 세웠다. 북핵 국면이 사드 국면으로 바뀔 가능성이 얼마든지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지만 국제정치의 모든 사건에는 국면과 구조의 요소들이 숨어 있다. 북한이 국제사회의 제재에도 불구하고 핵과 미사일 실험을 지속하는 것도 국면이 전환될 때 사건의 의미를 극대화하고자 하는 노림수가 숨어 있다. 우리가 구조를 관리하는 것이 역부족인 상황에서 국면관리가 중요해지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왜냐하면 이는 사건의 함정 속으로 매몰되는 것을 경계할 수 있고 모든 문제를 구조에 돌리는 환원주의에서 벗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향후 ‘제재의 목표는 대화에 있다’는 국면이 급물살을 탈 수도 있고 예방공격이 힘을 얻을 수도 있다. 따라서 사건 자체에 일희일비하지 않고 국면 대비용 대북한 정책 레버리지를 확보하고 이를 위한 메시지 관리도 좀 더 정교하게 가다듬을 필요가 있다. 그래야 이념적 분화가 심한 국내 정치환경에서 정책 혼선을 돌파하면서 국정동력을 유지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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