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소녀상 탄 151번 버스 동승해보니] 일상 속에서 아픈 역사를 되새기다

"제 나이때 끌려가…맘 아프다"

"위안부 문제 하루빨리 매듭을"

승객들 휴대폰 사진으로 담고

소녀상 어깨 손 올려 쓰다듬기도

日대사관 지날땐 '아리랑' 방송

다음달말까지 서울 도심 누비고

'귀향'으로 45일간 여정 마무리

서울 시내버스 151번 버스 승객들이 14일 ‘세계 위안부 기림일’을 맞아 버스 좌석에 설치된 ‘평화의 소녀상’을 휴대폰에 담고 있다.  /연합뉴스서울 시내버스 151번 버스 승객들이 14일 ‘세계 위안부 기림일’을 맞아 버스 좌석에 설치된 ‘평화의 소녀상’을 휴대폰에 담고 있다. /연합뉴스




[영상]‘소녀상’ 태운 특별한 151번 버스가 달립니다. /제작=정수현기자


“귀한 분을 모시고 운행하게 됐습니다.”

14일 오전6시55분 서울 우이동 차고지에서 151번 시내버스를 운행하는 운전기사 안형우(48)씨가 긴장한 표정으로 운전대를 잡았다. ‘귀한 승객’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를 기리기 위해 만든 ‘평화의 소녀상’이다. 곱게 빗어 넘긴 단발머리에 흰 저고리, 검은 치마를 입고 살짝 움켜진 주먹을 무릎 위에 올려놓은 채 왼쪽 두 번째 좌석에 자리 잡은 소녀상은 ‘세계 위안부 기림일’인 이날부터 다음달 30일까지 서울 시내 곳곳에서 시민들과 만난다. 좌석 하나를 차지하고 있는 만큼 매일 1,200원의 버스 요금을 낸다. 이날 안씨가 소녀상 대신 교통카드로 값을 치렀다.

이번 기획은 임진욱 동아운수 대표의 아이디어다. 타요버스 등 다양한 행사를 마련한 임 대표는 3년 전 소녀상 작가인 대학 동기 김운성씨를 만나 이번 일을 준비했다. 김 작가는 재능을 기부하고 임 대표는 소녀상 제작에 필요한 비용을 댔다. 임 대표는 “지난 2015년 12·28 한일 위안부 합의 재협상 얘기가 나오는 시점에 민간인 차원에서 힘을 보태고 아픈 역사를 함께 되새기는 방법을 찾고 싶었다”고 말했다.


차고지를 출발한 버스는 오전7시께 첫 손님을 맞았다. 미아사거리·안국역·숭례문 등을 거쳐 흑석동 중앙대 앞에서 회차하는 동안 출근길 승객들은 소녀상과 함께했다. 뒤늦게 알아보고 휴대폰에 사진을 담은 학생, 슬쩍 소녀상의 어깨에 손을 올려 쓰다듬는 어르신 등 각각 저마다의 방법으로 소녀상과 첫인사를 나눴다. 이건화(74)씨는 “151번이 성균관대·숙명여대·중앙대 등 대학교와 여러 중·고등학교 앞을 지나는 만큼 이렇게 가까이에서 보는 것 자체로 교육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맞은편 좌석에 앉아 소녀상을 연신 휴대폰에 담았던 나요진(65)씨는 “여자의 일생으로 봐도 너무나 처참하고 가슴 아픈 일”이라며 “생존자도 이제 얼마 남지 않은 상황인데 위안부 문제가 하루빨리 제대로 매듭지어지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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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가 일본대사관 앞을 지날 때는 소녀의 목소리로 부른 ‘아리랑’이 흘러나왔다. 위안부를 그린 영화 ‘귀향’에 담긴 곡이다. 버스 안은 순간 정적이 흘렀다. 대동세무고 전솔아(17)양은 “할머니들이 우리 나이 때 위안부로 끌려간 것 아니냐”며 “얼마나 끔찍했을까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다”고 말했다.

박원순 서울시장도 버스에 동승했다. 안국역에서 버스에 오른 박 시장은 소녀상을 보자마자 “아이고, 여기 계시는구나”라고 말하며 손을 어루만졌다. 박 시장은 “우리 국민이 정서상 납득할 수 있는 새로운 합의가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151번 버스 5대에 하나씩 설치된 소녀상은 45일간의 여정이 끝나면 고향 땅을 찾는다. 대전·대구·전주·목포·부산 등에 설치된 다른 소녀상을 찾아가 옆에 놓인 빈 의자에 앉게 된다.

이날 소녀상 나들이는 버스뿐 아니라 청계광장 곳곳에서도 이어졌다.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와 정의·기억재단은 오전8시부터 서울 청계광장에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를 기리는 조형물 ‘작은 소녀상’ 500점을 8시간 14분 동안 전시했다.

김민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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