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목요일 아침에] 트럼프가 공약을 수정하는 이유

오철수 수석논설위원

국경세 도입·아프간 철군 등

美, 비현실적 정책 속속 폐지

뜬구름 같은 지지율만 믿고

文정부, 복지·탈원전 등 강행

미래 세대에 부담 전가 우려

오철수 수석 논설위원


제45대 미국 대통령 취임을 8일 앞둔 지난 1월12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선거 승리 이후 첫 기자회견에서 제일 먼저 언급한 단어는 ‘일자리’였다. 트럼프는 “미국 역사상 가장 많은 일자리를 만든 대통령이 될 것”이라고 자신 있게 말했다. 트럼프는 이를 위해 해외로 이전한 미국 기업들을 국내로 회귀시키겠다고 밝히고 미국으로 이전하지 않는 기업들은 막대한 국경세를 감당해야 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선거기간 내내 강조해왔던 국경세 부과를 공식화한 것이다.

그로부터 6개월이 지난 7월27일 미 행정부와 공화당은 “국경세 도입을 더는 고려하지 않겠다”는 내용의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불과 6개월 만에 국경세 도입을 백지화한 것은 해외에서 부품을 수입해야 하는 미국 완성차 업체들의 반발이 컸기 때문이다. 선거 과정에서는 러스트벨트 지지층을 겨냥해 달콤한 말을 내뱉었지만 현실에서 실현되기 어려운 상황이 되자 과감하게 공약을 접은 것이다.


트럼프가 철회한 공약은 이뿐만이 아니다. 트럼프는 유세 과정에서 엄청난 대미 무역흑자를 기록하는 중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하겠다고 엄포를 놓았지만 4월 시진핑 중국 주석과 정상회담 이후 슬그머니 꼬리를 내렸다. 또 취임 전 아프가니스탄 전쟁을 ‘끔찍한 실수’ ‘엉망진창’ 등의 용어를 동원해가며 비난을 퍼부었던 트럼프는 22일 전국에 생중계된 TV연설을 통해 적극 개입으로 돌아섰다. 트럼프가 공약을 수정하는 것은 선거 유세를 할 때와 실제 정책을 집행할 때는 상황이 완전히 다르기 때문이다. 선거운동을 할 때야 표를 얻기 위해 지지층을 자극하기만 하면 되지만 정책의 실제 집행은 후유증 등을 감안해 신중하게 해야 한다. 트럼프가 아프간 전쟁과 관련해 “내 원초적 본능은 철군이었지만 대통령이 돼 오벌오피스(집무실) 책상에 앉았을 때의 결정은 아주 달라져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고 고백한 점이 이를 잘 말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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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보다 3개월여 뒤에 대통령이 새로 취임한 우리나라의 사정은 이와 전혀 딴판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포퓰리즘 공약에서 단 한 발짝도 후퇴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복지정책이 대표적이다. 정부는 건강보험 보장성 확대와 아동수당 신설, 기초연금 인상, 청년구직촉진수당 지급,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소상공인 지원 등 서민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산타클로스 정책’을 연이어 쏟아내고 있다. 내년 한 해에만 복지에 쏟아붓는 재정은 146조원으로 사상 처음으로 전체 예산의 3분의1을 넘었다. 복지제도는 한 번 도입하면 없애거나 줄이기 어렵다. 특히 빠르게 진행되는 고령화 추세를 감안하면 앞으로 복지 지출 증가는 눈덩이처럼 불어날 수밖에 없다. 복지제도 도입을 10년, 20년을 내다보고 신중하게 해야 하는 이유다.

공약이라는 이유로 현실을 감안하지 않고 밀어붙이는 정책은 이 외에도 많다. 탈원전과 공무원 17만명 증원, 공공 부문 정규직 전환 등 뒷감당이 어려운 정책들이 무더기로 추진되고 있다.

문 대통령이 이렇게 무리한 정책을 강행하는 것은 아마도 높은 지지율과 관련이 있을 듯싶다. 국민의 70% 이상이 국정 수행을 지지하는데 어떻게 안 할 수 있느냐는 뜻일 게다. 그러나 뜬구름 같은 지지율만 믿고 정책을 밀어붙이는 것은 좋은 일이 아니다. 불교계의 가르침 중에 ‘제행무상(諸行無常)’이라는 말이 있다. 모든 것은 변한다는 뜻이다. 지금은 문 대통령의 지지율이 높지만 여론이라는 것은 언제 어떻게 변할지 모르는 것이다. 높은 인기로 장기집권 길이 열린 듯했던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지지율이 사학스캔들로 인해 순식간에 20%대까지 추락한 것이 이를 잘 말해준다. 문 대통령은 당장의 인기에 연연하기보다는 국가의 먼 미래를 내다보고 차분하게 국정을 수행해야 한다. 자칫 지금의 지지율에 들떠서 잘못된 정책을 추진하면 그 부담은 고스란히 미래 세대들에게 떠넘겨진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csoh@sedaily.com

오철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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