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시론] 중기육성, 정부 만능주의를 버려라

김문겸 숭실대 중소기업대학원장

공적보증·지원 편중된 정책금융

정부, 펀드로 생태계 끌기보단

사업 펼 수 있는 플랫폼 역할을





얼마 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한국의 중소기업 정책금융에 대해 우려를 표했다. 중소기업에 대한 정책금융이 과다하게 공적보증과 지원에 편중돼 있다는 것이다. 정책자금의 비중은 지난 2014년 기준 중소기업 대출의 12.2%로 OECD 국가 중 가장 높은 수준이다. 그런데 28일 중소벤처기업부는 기업투자촉진법(가칭)을 제정해 창업 생태계를 뒷받침할 5조원 규모의 벤처펀드를 만든다고 발표했다. 중소기업청이 장관급인 부로 승격되는 만큼 정책금융도 따라서 느는 듯하다. 벤처가 경제를 이끄는 이스라엘이나 미국에서는 공적보증이 거의 없다. 이러한 현상의 원인은 어디에 있을까.


첫째, 우리의 경제 성장은 이제껏 정부가 주도해왔고 성공했다. 그래서 정부나 기업들도 정부만능주의 성향을 가지고 있다. 무슨 일이 생기면 근본적인 연구 없이 정부는 대증적인 대책을 만들고 기업들 또한 발 빠른 대책을 요구한다. 대부분 경제 문제의 대책이란 정책자금 투입이다. 둘째, 중소기업 정책은 경제와 복지 정책의 양면을 가지고 있다. 기술 벤처가 있는가 하면 생계형 자영업자도 있고 부가가치는 없어도 그저 먹고살면 되는 공장도 있다. 2014년 기준 우리나라 전체 중소기업 354만개에서 중기업은 10만2,000개, 종업원 50인 미만의 소기업은 37만8,000개, 그리고 10인 미만의 소상공인은 306만3,000개이다. 이번 최저임금 인상에 가장 강력하게 반발한 집단이 소상공인이다. 그래서 결국 정부가 그들에게 일정 부분을 보전해주기로 하지 않았는가. 우리 소상공인 문제의 근본은 많아도 너무 많다는 것이다. 결국 골목 상권이나 기존의 굴뚝 산업은 서민 생존의 보루이므로 복지 정책의 대상이 되며 여기에는 정책자금 지원이 필연적으로 따르게 된다. 셋째로 중소기업금융 시스템의 후진성이다. 제1금융권이 독자적으로 제공하는 중소기업 금융은 거의 없다. 대부분 정책자금의 중계 내지는 대행이다. 담보에만 전적으로 의지하는 우리나라 금융 시스템에서 중소기업은 공적보증이나 정책자금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그러다 보니 정책자금은 중소기업의 생애 전 주기를 책임지게 됐고 결과적으로 정책자금의 비중이 OECD 국가 중 최상위에 오른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라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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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인을 알면 그에 대한 해답도 있다. 우선 정부부터 정부만능주의를 버려야 한다. 벤처나 스타트업 생태계를 정부가 각종 펀드를 통해 끌고 가려고 해서는 안 된다. 생태계는 시장에서 민간 주도로 만들어져야 한다. 코스닥에 이어 제3시장을 만들고 코넥스(중소기업 전용 주식시장)를 열었다고 크게 달라진 것이 있는가. 정부는 기업이 다양한 사업 모델을 제약 없이 펼칠 수 있는 플랫폼 역할을 하면 된다. 가상현실(VR)이 우리의 미래 먹거리라고 하면서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을 찾아보기가 어렵다. 그 이유 중 하나는 1996년 바다이야기 폐해에 따른 규제로 VR를 아케이드 게임으로 체험해볼 수가 없다. 다양한 사업 모델이 나와야 하는데 이렇게 낡은 규제, 획일적인 규제로 막혀 있는 것들이 너무도 많다. 그다음으로는 ‘스케일 업’이다. 창업이 많이 이뤄진다고 좋은 일자리가 많이 만들어지지는 않는다. 좋은 일자리는 기업의 스케일이 커질 때 생긴다. 수많은 소상공인과 자영업자는 마땅한 일자리가 없어 스스로 자원을 투입해 생존의 바다에 뛰어드는 것이다. 경쟁력 있는 중기업·중견기업이 많이 나와 굳이 개인이 생계형 창업에 안 나서도 되는 시대를 만들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공적보증이나 정책자금은 민간금융이 회피하는 고위험 단계의 초기 스타트업에만 적용돼야 한다. 즉 정책자금은 시장의 실패를 보완하는 역할을 하며 시장과 같이 가야 한다는 말이다. 물론 이러한 것들을 하루아침에 이룰 수는 없다. 그러나 산업의 시대가 가고 기업의 시대가 도래한 지금, 그 방향으로 전환하는 것이 우리의 시급한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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