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금융가

"인사에 경영참여까지…KPI마저 없애면 누가 밤새워 이익내려 하나"

[도 넘은 금융노조]

금융노조 출신 장관에 정권창출 기여로 힘받아

회장·행장 선출, 인사 이어 경영참여 시도까지

복잡한 KPI 개선 필요성 불구 무력화땐 경쟁력에 독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금융권 노조의 힘이 점점 커지고 있다.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노동시간 단축 등 친(親) 노동정책을 펴는 정부 기세에 각종 이슈를 둘러싼 노사관계 주도권 싸움에서 사측이 번번이 밀리고 있다는 분석이다. 특히 노조가 인사 등 경영 참여 시도는 물론 금융권의 성과지표인 핵심성과지표(KPI)까지 전면 개편하겠다며 국회의 힘을 빌리는 상황까지 오자 금융노조의 요구가 도를 지나쳤다는 지적이 나온다.

4일 금융권에 따르면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이 이날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도서관에서 개최한 ‘은행권 과당경쟁 근절을 통한 금융공공성 강화 및 금융소비자 보호방안 토론회’에서는 KPI 전면 개편 요구가 거세게 제기됐다. 최근 들어 통합멤버십 관리 서비스나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ISA), 개인형퇴직연금(IRP) 등 신상품이 출시될 때마다 은행들이 과도한 가입 경쟁을 벌여 각종 부작용이 속출하자 노조가 단기 실적평가 항목 비중이 높은 KPI를 전면 개편하도록 한 것이다. 특히 정치권의 힘을 빌어 민간의 KPI를 전면 수술하겠다고 나서면서 시중은행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더구나 행장이나 회장 연임 등의 이슈가 걸려 있어 금융지주의 경우 노조의 주장을 액면 그대로 수용할 가능성이 커 KPI가 완전히 무력화되는 게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이날 토론회에서 김문호 금융경제연구소장은 “금융지주나 은행 경영진이 자신들의 실적을 쌓기 위해 KPI를 활용해 직원들을 압박하고 이렇게 얻어진 이익은 주주인 기관투자가나 해외 자본에 돌아간다”고 주장했다. 고용 유지 등에 따른 이익 등은 전혀 고려하지 않는 해괴한 논리라는 지적이 바로 나왔다. 일부에서는 금융노조의 파워가 커지는 것은 김영주 노동부 장관이 금융노조 출신이고 현 정부 출범에도 금융노조가 기여한 점이 많다는 인식이 강하다 보니 자연스레 금융노조의 입김이 커지는 상황이 연출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KPI의 경우 복잡한 현행 체계를 보완할 필요성이 끊임없이 제기됐지만, 친노조 정부의 힘에 기대 노조가 전면적으로 개편을 주장하면서 자칫 제도가 무력화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시중은행 고위관계자는 “일을 많이 하거나 적게 해도 똑같은 월급을 받는다면 누가 힘들여 밤잠을 설쳐가며 이익을 내려 하겠느냐”며 “KPI는 개선을 하더라도 전면 개편을 하게 되면 제도가 무력화 돼 정상적인 경영을 할 수가 없다”고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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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백개에 달하는 KPI 항목을 대폭 개선해 단순화하거나 이익 기여에 대해서만 집중 평가하도록 하면 되는 데 복잡한 제도 개선을 핑계로 가장 기본적인 성과기준인 KPI를 무력화하면 당장은 경쟁이 사라져 편할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은행 전체의 경쟁력 저하로 이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특히 인터넷은행이나 각종 핀테크가 생겨나는 등 금융환경이 급변하는 상황에서 은행이 동기부여를 통해 직원간 경쟁을 시켜도 시원찮을 상황이지만, 노조가 KPI를 전면 개편하자는 것은 “경쟁하지 말고 우리끼리 편하게 지내자는 말과 같다”는 내부 자성도 나오고 있다.

금융노조의 과도한 요구는 KPI 전면 개편 주장뿐만이 아니다. 금융권 사측과의 산별교섭 재개가 무산되자 교섭 결렬의 책임이 하영구 은행연합회장에게 있다고 간주하고 퇴진 운동을 벌이겠다고 으름장을 놓는 등 대응 수위를 높이고 있다. 산별교섭은 해당 업계의 노동자와 사용자 대표가 만나 임금상승률 등 근로조건에 합의하면 업계 전체에 적용되는 것으로 노동계가 선호하는 방식이다. 금융권은 2010년부터 산별교섭을 진행했지만 지난해 성과연봉제 도입을 두고 노사 갈등이 커지며 중단됐다. 그러다 새 정부가 들어서면서 기획재정부가 성과연봉제를 사실상 폐기하는 후속 조치를 발표하면서 노조 측에 유리하게 상황이 전개되자 노조가 더욱 강공모드를 보이고 있ㄷ는 분석이다.

일부 은행 노조는 사외이사 선임을 통한 경영권 참여에도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KB국민은행 노조는 11월 주주총회에서 참여연대 출신 하승수씨를 사외이사로 추천하기로 했다. 노조의 성향에 맞는 인물을 사외이사로 선임해 경영을 감시하겠다는 것이다. 앞서 국민은행에서는 노동조합의 요구를 수용해 노동조합 선거개입에 책임이 있는 임원들이 사임하기도 했다. 우리은행 또한 5.5%에 달하는 우리사주 지분을 활용해 정부 지분 매각 후 주주총회에서 사외이사를 추천할 계획이다.

저금리 장기화, 경기 침체 등으로 수익성이 나빠지는 가운데 모든 업종 중 거의 유일하게 은행에서 유지되고 있는 호봉제에 대한 지적도 나온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일 안 하고 놀아도 해가 바뀌면 월급이 자동으로 오르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세태를 바꾸자는 것”이라며 “지난해 1월 박근혜 정부가 공공기관에 도입하겠다고 발표한 지 1년5개월여 만에 손바닥 뒤집듯 ‘없던 일’로 되면서 정책 신뢰성마저 금이 갔다”고 말했다. 금융노조 소속은 아니지만 금감원 노조의 경우 외부 방패막이로 낙하산 인사를 용인하는 듯한 주장을 펴면서 ‘낙하산도 필요에 따라 선이 되고 악이 될 수도 있다’는 기회주의적인 모습을 보여 고개를 갸우뚱하게 했다.

이주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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