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이근(24)은 미국과 아시아를 떠돌며 꿈을 키워온 골프 유목민이었다. 초등학교 5학년 때 미국으로 건너가 서던캘리포니아대학교(USC) 골프부에서 활동하며 미국프로골프(PGA) 투어 진출의 꿈을 키우던 그는 중간 기착지로 아시아를 택했다. 중국 투어와 원아시아 투어를 거쳐 지난해부터 아시아 투어를 주 무대로 삼던 그는 올해 6월 원아시아 투어 회원 자격으로 출전한 제60회 한국오픈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5년간의 한국프로골프(KPGA) 투어 시드를 보장받았다. 그리고는 3개월 만에 두 번째 우승컵을 수집하며 ‘돌풍’에서 2017시즌 KPGA 투어 최고 ‘히트상품’으로 떠올랐다.
장이근은 10일 인천 드림파크CC 드림코스(파72·6,938야드)에서 열린 KPGA 투어 티업·지스윙 메가오픈(총상금 5억원) 4라운드에서 보기 없이 버디 5개를 골라내 5언더파 67타를 쳤다. 최종합계 28언더파 260타를 기록한 그는 공동 2위 현정협(34)과 임성재(19·이상 26언더파)를 2타 차로 제치고 정상에 올랐다.
장이근의 우승 스코어는 KPGA 사상 72홀 최소타·최다 언더파 신기록이다. 지난해 11월 이형준(25·JDX)이 투어 챔피언십(전남 보성CC)에서 세운 26언더파 262타에서 한꺼번에 2타를 줄였다. 이번 시즌 14번째 대회 만에 처음 이룬 다승(2승)을 빛나는 기록으로 장식한 것이다. 장이근은 또 2007년 3승을 거둔 ‘괴물 신인’ 김경태(31·신한금융그룹) 이후 10년 만에 신인으로 시즌 2승을 수확한 주인공이 됐다. 신인상 포인트 1위를 굳게 지킨 그는 1억원의 우승상금을 챙겨 시즌상금 1위(4억7,019만원)에도 다시 올랐다.
장이근은 전날 3라운드에서 54홀 최소타(23언더파 193타) 기록도 1타 경신했지만 임성재가 1타 차 단독 2위로 추격해와 우승을 장담할 수 없었다. 임성재가 1번홀(파4) 보기를 범한 덕에 2타 차 리드를 잡은 장이근은 3번홀(파4) 첫 버디에 이어 5번홀(파4) 칩샷 버디를 뽑아냈다. 경쟁자들 역시 타수를 줄이며 분전을 펼쳤지만 후반 들어서도 11번과 12번홀(이상 파4)에서 1타씩을 줄인 장이근은 2타 차 이내 추격을 허용하지 않았다. 12번홀 버디로 이미 최소타 기록을 갈아치운 그는 14번홀(파3)에서 먼 거리 버디 퍼트를 홀에 떨궈 기록을 더 늘렸고 이후 차분한 플레이로 타수를 지켜냈다. 1, 2라운드를 공동 선두로 마친 이후 단독 1위 자리를 유지한 장이근은 와이어 투 와이어도 완성했다. KPGA 투어는 공동 선두를 기록했더라도 와이어 투 와이어로 인정한다. 현정협은 17번과 18번홀 연속 버디, 임성재는 마지막 홀 버디로 치열한 경쟁 끝에 2위 자리를 나눠 가졌다.
이번 대회는 이승택(22·캘러웨이)의 맹타까지 겹쳐 ‘기록 파티’가 됐다. 투어 3년차인 장타자 이승택은 이날 이글 1개와 버디 11개, 보기 1개를 묶어 12언더파 60타를 적어냈다. 올해 60주년을 맞은 KPGA 투어의 18홀 최소타 기록이다. 이전까지는 2001년 GS칼텍스 매경오픈 중친싱(대만)과 2006년 지산리조트오픈 마크 리슈먼(호주)의 61타였다. 후반 9개 홀 중 14번(파3)을 제외한 모든 홀에서 버디를 쓸어담는 기염을 토한 그는 단독 4위(25언더파)로 자신의 생애 최고 성적을 냈다.
장이근은 “시즌 처음으로 2승을 거둬 기분이 찢어지게 좋다”고 소감을 밝히고 “최소타 기록은 신경 쓰지 않고 매홀 최선을 다한 게 우승까지 이어진 것 같다”고 말했다. 상위권에서 경쟁을 펼친 백전노장 신용진(53)은 3타를 잃고 공동 35위(15언더파)로 마쳤고 같은 순위를 기록한 최진호(33·현대제철)는 상금 2위(4억24만원)로 한 계단 밀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