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로터리] 소통의 시작은 밥상머리에서부터

신준식 자생의료재단 명예이사장

신준식 자생의료재단 명예이사장




인생을 살다 보면 누구나 소중한 것들이 몇 가지 있다. 수술 없이 척추를 치료하는 외길을 걷다 보니 필자에게는 소중한 환자들의 사연이 이야기보따리처럼 두둑해진다. 진료하는 동안 그들이 들려준 인생사는 나에게 스스로를 돌아보게 만드는 거울이자 가장 큰 재산이다.


필자는 침통을 잡기 전부터 의술로만 환자를 치료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의 병부터 치료해야 한다고 배웠다. 조선의 7대 임금 세조도 ‘의약론’에서 심의(心醫)를 의원 중 으뜸이라 하지 않았던가.

진료 시간이 길어져도 항상 환자들과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30년 세월을 겪다 보니 이야기보따리도 제법 배가 불렀다. 뉴스에서 속상한 소식들이 들려온다. 여중생들의 잔인한 폭행 사건부터 치매 어머니를 목 졸라 살해한 50대 패륜 남성의 이야기까지….


이런 소식들을 접할 때면 가정교육의 중요성과 함께 20여년 전 나를 찾아온 한 가족의 이야기가 생각난다. 구부정해진 허리를 펴지 못하는 ‘꼬부랑 할머니’ 한 분이 큰아들에게 업혀 진료실에 들어섰다. 연세가 워낙 지긋해 골다공증이 찾아온 할머니는 오래된 압박골절이 여러 군데 있어 혼자서는 일어서지 못했다. 6남매를 두셨는데 다음 날부터 아들과 사위들이 차례로 할머니를 업고 병원을 찾았다. 하나같이 효심이 지극한 덕분인지 할머니는 많이 호전돼 퇴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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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각별하게 아끼는 형제간의 우애도 일품이었다. 비결을 묻자 6남매는 가족이 밥을 먹는 자리에서든 어디에서든 대화를 많이 할 수 있게 배려해준 어머님의 ‘특별한 가정교육’ 덕분이라고 입을 모았다.

할머니는 식사를 할 때면 충분한 대화가 이뤄지도록 한 시간이 지나서야 밥상을 물렸다고 했다. 단출한 밥상에 둘러앉은 6남매가 각자 이야기를 풀어내다 보면 시간은 금방 흘렀을 것이다. 서로 잘된 부분은 칭찬해주고 잘못된 부분은 고쳐주면서 즐기는 평범한 식사 시간은 식탁에서 고개를 떨구고 스마트폰에만 열중하는 요즘 세상에서는 그리운 풍경이 돼버렸다.

밥상머리 교육에는 인성교육의 모든 것이 담겨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필자는 어른이 먼저 수저를 들기 전에 밥을 먹으면 안 되고 어른보다 먼저 일어나면 안 된다고 배웠다. 어른을 공경하고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마음과 공동체의 질서를 지키는 방법을 배운 것도 밥상머리다. 자연스레 가족 간에 소통이 이뤄지고 인성교육도 하는 장소인 셈이다.

몇 해 전 할머니를 업고 왔던 큰아들이 치료를 받기 위해 다시 찾아왔다. 반가움에 두 손을 덥석 잡고 할머니의 안부를 물었다. 눈물을 글썽이며 “돌아가셨습니다. 치료를 잘해주셔서 고마웠습니다”라는 그의 말에 나도 모르게 눈시울이 붉어졌다. 할머니가 큰 아픔 없이 편안하게 여생을 보내신 것은 밥상에서 키운 6남매의 효심 때문이 아니었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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