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시각] 응답하라 2002

박민영 문화레저부 차장

박민영


한국 축구의 시계가 거꾸로 돌려진 느낌이다. 16년 만에 다시 거스 히딩크(71) 전 한국축구대표팀 감독의 도움을 받기로 하는 논의가 이뤄지고 있어서다.

대한축구협회는 26일 2017년 제7차 기술위원회를 열고 2018 러시아월드컵을 준비하고 있는 축구대표팀과 관련해 히딩크 전 감독에게 역할을 부여하기로 했다. 구체적인 역할에 대해서는 히딩크 전 감독과 협의하고 그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며 밝히지 않았다. 하지만 “상징적 역할이 아닌 확실한 포지션을 드려야 한다” “이미 신태용 감독으로 정해져 있다”는 김호곤 기술위원장의 말을 미뤄보면 히딩크 전 감독이 맡을 수 있는 일은 기술자문이나 기술고문 형태로 좁혀진 듯하다.

왜 지금 히딩크인가. 2002 한일월드컵을 겪어본 국민이라면 히딩크에 대한 행복한 추억이 있을 것이다. 그전까지 월드컵에서 16강에도 한 번 들지 못한 한국 축구의 4강 신화 창조를 이끌었다. 그런 히딩크 전 감독이 얼마 전 네덜란드에서 국내 매체들을 만나 어떤 형태로든 한국 축구를 돕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안 그래도 대표팀의 졸전, 축구협회 전 임직원의 비리 등으로 축구협회에 대한 불신이 커져가는 상황에서 상당수의 축구 팬이 열광하는 것이다. 신 감독 체제를 월드컵 본선까지 유지하기로 한 축구협회의 결정에도 일부 팬들은 히딩크 감독 영입을 청와대 홈페이지에 청원하는가 하면 심지어 촛불집회 운운하는 소리까지 들린다.


‘히딩크 이슈’를 보는 시각은 극명하게 대비된다. 하루라도 빨리 ‘명장’을 감독으로 영입해 한국 축구를 발전시키자는 것과 지난 2002년 이후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한 히딩크에게 집착하는 것은 환상일 수도 있으니 신 감독에게 힘을 실어주자는 주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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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히딩크 전 감독의 이름은 한국 축구의 위기 때마다 구원투수로 거론됐다. 이번에 팬들의 목소리가 어느 때보다 높은 데에는 히딩크가 직접 한국 축구에 대한 기여를 언급한 이유도 있지만 축구협회의 자업자득인 측면이 있다. 협회는 히딩크와 사전 연락을 한 적이 없다고 했다가 말을 바꿔 논란에 기름을 끼얹었다. 이는 ‘히딩크 대 신태용’이 아닌 ‘히딩크 대 축구협회’의 진실 게임 구도를 만들어 신 감독의 입지까지 덩달아 좁히는 결과를 불렀다. 이날 히딩크의 답변을 받지 못한 채 진행된 기술위원회도 헛발질이라는 지적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협회는 축구계 안팎의 혁신 요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2002년의 4강 신화는 분명 ‘히딩크 매직’이라고 할 만했다. 하지만 그 마법의 근저에는 감독과 태극전사, 그리고 온 국민 사이의 끈끈한 조직력이 있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여론의 대립을 부르는 소모적인 사령탑 논란을 서둘러 끝내고 선수들의 경기력과 사기를 끌어올릴 수 있는 묘안 찾기에 머리를 맞댈 때다. ‘응답하라 2002’를 염원하며 국민들이 진정으로 되살리고 싶은 추억의 키워드는 특정 인물에 대한 향수보다는 축구를 통한 열정과 하나 됨일 것이다.

/mypark@sedaily.com

박민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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