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경제동향

[한국경제 분수령될 양대 이슈]통상라인 과도한 자신감, 판단미스가 자초한 人災

<흔들리는 한미FTA>

세계 통상 주도권 美에 있는데

트럼프 폐기요구 '협상용' 평가

순진하게 업계 반발에 기대기도

"美측 폐기 위한 편지까지 작성"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 실수 자인



정부가 다음달 4일 미국 워싱턴DC에서 열리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2차 공동위원회 특별회기의 수석대표를 여전히 결정하지 못한 채 협의 중인 것으로 29일 확인됐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한미 FTA 폐기 카드가 엄포가 아닌 실제였음이 알려진 후여서 앞으로도 제대로 된 협상을 할 수 있겠느냐는 우려가 나온다.

지금까지 통상당국은 트럼프 대통령의 한미 FTA 폐기 발언에 대해 ‘블러핑’이라거나 수출을 위한 협상용 발언이라고 평가절하해왔다. 실제 지난 7월 미국 정부가 한미 FTA를 바꾸는 협상 절차를 시작한다고 밝히자 산업통상자원부는 예정에 없던 브리핑을 열어 개정 협상을 하려면 두 나라 간 합의가 있어야 한다고 했다. 우리가 동의하지 않으면 개정 협상은 불가하다는 것이다. 언론에 나온 “재협상이라는 말은 틀린 것으로 재개정 협상이 맞다”는 친절한 해석까지 곁들였다. 이후에도 산업부 고위관계자는 틈날 때마다 “호들갑 떨 것 없다”며 “한미 FTA는 호혜적이고 양국 기업들이 그것을 인정하고 있다. 한미 FTA를 폐기하면 미국 기업들이 가만히 있겠느냐”고 설명했다.

현실은 이 같은 산업부의 해석이 무색할 정도다.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은 27일(현지시간) 워싱턴DC에서 기자들과 만나 “한미 FTA 폐기 위협이 실제적이고 임박해 있다”며 “미국 측이 폐기를 위한 편지까지 작성했다는 것을 확인했다”고 전했다. 그동안 통상 주무부처의 판단과 국민에 대한 설명이 잘못됐음을 자인한 꼴이다. 트럼프는 처음부터 폐기를 생각했는데 우리는 FTA 발효 후 양국 간의 무역 증대 규모 같은 숫자만 내세우며 협상의 주도권을 가질 수 있다고 자신한 셈이다. 한미 FTA가 종료되면 우리나라는 수출이 2% 줄지만 미국은 4.3% 감소해 미국에 더 손해라는 분석이 대표적이다. 전직 통상교섭본부 고위관계자는 “처음부터 개정 협상은 미국 측이 얘기한 것으로 바로 킥오프가 되는 것인데 우리가 합의해야 할 수 있다고 한 것을 보고 실망스러웠다”며 “물리적으로 힘의 차이가 나는 미국에 동등한 수준에서 접근할 수 있다고 하는 것부터 말이 안 된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의 생각도 비슷하다. 세계 통상의 주도권은 미국에 있고 마음만 먹으면 미국이 원하는 판을 깔 수 있다는 얘기다. ‘G2’로 불리는 중국만 해도 북한 핵 문제와 관련해 ‘세컨더리보이콧(제3자 제재)’ 가능성이 불거지자 중국에 진출한 북한 기업에 120일 내 폐쇄할 것을 명령했다. 국제사회에서 미국이 가진 힘을 여실히 보여준 것이다.

관련기사



더욱이 트럼프는 당선 전부터 “한미 FTA는 재앙” “끔찍한 한미 FTA”라는 표현을 써왔다. 이런데도 폐기 카드를 짐작하지 못한 것은 통상 라인의 무능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최원목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미국이 생각하는 폐기는 한미 FTA 종료 이후 미국의 이익을 반영한 새로운 협정이나 협상을 한국 측에 제시하는 것”이라며 “정부의 단견으로 처음부터 미국의 의도를 잘못 파악했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의 대미 수출액은 664억달러로 전체 수출의 13.4%에 달한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이 다른 카드를 내밀 경우 우리나라는 받지 않을 수 없다는 뜻이다.

관가에서는 통상당국의 FTA 협상에 대한 무지가 불러온 참사라는 해석도 있다. 통상업무는 2013년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외교부에서 산업부로 들어왔다. 2015년에는 옛 통상교섭본부에서 건너왔던 과장급 이상 통상 전문가 7명이 친정인 외교부로 돌아갔다. 특히 대형 FTA인 한국·미국, 한국·유럽연합(EU) FTA는 옛 통상교섭본부 시절에 교섭이 이뤄졌고 한국·중국 FTA도 시작은 통상교섭본부 때였다. 정부의 한 고위관계자는 “김현종 본부장이 돌아왔지만 이를 받쳐줄 전문인력이 없어 답답할 것”이라며 “FTA 협상이라는 게 본부장 혼자 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했다.

미국 업계의 반발에 트럼프가 FTA 폐기 카드를 버릴 것이라는 해석도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 지배적이다. 전직 통상교섭본부 관계자는 “미국 대통령이 전권을 갖고 있는데 기업 반발에 기대는 것은 순진한 생각”이라며 “북한 핵 문제로 FTA 폐기 카드를 잠시 접은 것으로 보이지만 통상 문제에 관한 한 언제든 더 강력한 압박을 해올 가능성이 높다”고 전했다.

/세종=김영필·김상훈기자 susopa@sedaily.com

김영필 기자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