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경스타 영화

[SE★인터뷰①] 박해일 “배우가 평가를 두려워하면 필모 확장에 방해돼”

이번엔 왕이다. 배우 박해일의 스펙트럼이 한 폭 진화했다. 보통의 근엄한 왕이 아닌 우유부단한 조선 16대 왕 인조. 남한산성에 갇혀 고립된 상황에서 결단을 내려야 하거늘, 두 충신의 극명한 대립에 갈피를 잡지 못한다.

배우 박해일이 최근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서경스타와의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조은정 기자배우 박해일이 최근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서경스타와의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조은정 기자





영화 ‘남한산성’(감독 황동혁)은 1636년 인조 14년 병자호란, 나아갈 곳도 물러설 곳도 없는 고립무원의 남한산성 속 조선의 운명이 걸린 가장 치열한 47일간의 이야기를 그린 작품. 청의 대군으로부터 공격을 받은 임금과 조정이 추위와 굶주림, 절대적인 군사적 열세 속 청군에 완전히 포위된 상황을 섬세하고 묵묵하게 전한다.

박해일이 맡은 인조는 조정은 물론, 온 백성이 갈수록 열악해지는 처지에서 청의 무리한 요구와 압박으로 번민한다. 청과의 화친으로 생존을 모색하자는 최명길(이병헌)과 죽음을 불사해서라도 맞서 싸워야 한다는 김상헌(김윤석)의 상반된 주장으로 논쟁이 거세지자 인조는 혼란에 파묻힌다.

이번 영화에서 박해일은 충무로 대표 카리스마 배우 이병헌과 김윤석을 만났다. 두 사람의 팽팽한 대립 사이에서 박해일의 중간자적 입지는 흥미로운 관전 포인트였다. 이병헌과 김윤석의 탄탄한 내공과 압도적 흡인력에 지지 않을 자신감, 박해일이 ‘남한산성’에서 가져야 할 숙제였다.

최근 서울 종로구 삼청동에서 만난 박해일은 “언론시사 때 영화를 처음 봤는데 잘 봤다. 시나리오를 잘 본 만큼 찍히는 작품의 결과가 좋기를 바랐다. 150여 명의 스태프들과 감독님의 기운이 영화 속에 잘 담겼다고 본다. 현장에서 찍으면서 느꼈던 배우들, 스태프들 간의 조화도 담기길 원했다. 물론 너무 춥기도 했다. 배우로서는 개봉 이후에 문득 다시 떠오르는 기억들이 있다. 일단은 다시 현장을 생각해보는 시기인 것 같다”라며 혹독하면서도 열정 넘친 촬영 당시를 떠올렸다.

배우 박해일이 최근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서경스타와의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조은정 기자배우 박해일이 최근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서경스타와의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조은정 기자


언론시사 기자간담회 때도 배우들이 입 모아 언급할 만큼 ‘남한산성’ 로케이션은 ‘추위’와의 전쟁이었다. 인터뷰 중간 중간 박해일의 입에서도 ‘추위’라는 단어가 빠지지 않았다. “그렇다고 내가 추위 자체를 가지고 이야기할 입장은 아니었다. 스태프들이 제일 힘들었을 거다. 최근 제작사 측에서 고생했다며 스태프들을 위한 시사회를 마련했다. 배우, 감독님이 무대인사를 갔는데, 현장에서 눈만 빼고 중무장을 했던 스태프들이 앉아있어서 누가 누군지를 모르겠더라.(웃음) 야외에서 줄곧 촬영해야 했던 박희순 선배, 고수 씨도 많이 고생하셨다.”


사실 박해일은 ‘남한산성’으로부터 캐스팅 초반 출연 제의를 받았을 때 한 번 고사한 적도 있었다. 그러다가 현재 이병헌, 김윤석, 고수, 박희순, 조우진 등과 화려한 라인업을 자랑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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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조가 비호감 군주라서 거절한 게 큰 이유는 아니었다. 원작을 기반으로 만든 시나리오가 정말 빼어났다. 물리적인 여유와 여러 가지 스케줄 문제도 있어서 연기를 할 거면 오랜 시간을 두고 잘 준비해야 할 것 같다고 이야기 했다. 여유가 부족해서 정중하게 거절했는데, 감독님이 다시 만났을 때 작품을 어떻게 만들지 차근차근 설명해주셔서 설득 당했다. 김윤석, 이병헌 선배가 출연 결정을 하신 상태였기 때문에 주어진 시간에 빨리 적응하려 했다. 배우로서 역할과 작품의 발자취를 따라가려 남한산성도 직접 가봤다. 감독님께서는 ‘해일 씨가 해주면 좋겠다. 그러면 내가 그리는 ‘남한산성’에 본질을 더 잘 담을 수 있겠다’고 하셨다. 내가 꼭 필요하다는 말에 설득 당했다.”

인조의 우유부단함 속에서 어떤 매력을 느꼈는지 묻자 “보시는 분들은 우유부단하다고 평가하실 수 있겠다. 배우는 결국 캐릭터에 대한 호기심과 자극이 있어야 한다. 평가가 두려워서 안한다는 것은 필모그래피의 확장에 방해가 된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잘 해내서 관객들에게 인정이 된다면 좋은 통로를 열게 되는 것이라 생각했다. 숙제이자 잘 해보고 싶었다”며 캐릭터의 호감도에 묻어 가려기보다 난관을 극복하는 과정을 즐긴다고 밝혔다.

배우 박해일이 최근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서경스타와의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조은정 기자배우 박해일이 최근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서경스타와의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조은정 기자


다른 신분도 아니고 무려 ‘왕’이다. 그에 따른 근엄함과 인조만의 우유부단함을 섞어서 캐릭터를 표현하는 것이 쉽지는 않았을 터다. “선배님들도 말씀하셨는데 일단 대사가 가장 어려웠다. 시나리오가 고증을 잘 거친 대사였다. ‘말’은 이 영화의 또 다른 캐릭터이자 브랜드였다. 배우들이 문어체에 감정을 담아 연기해야 했다. 나도 인조스러운 것을 보여주기 위해 연습을 많이 했다. 내가 했을 때 어색하면 관객들도 어색하게 느낄 거라 생각해서 연습을 많이 했다.”

“시나리오 볼 때부터 중요하게 느꼈던 게 감정조절이었다. 그게 인조가 가져가야할 것이었다. 신념이 너무나도 다른 두 신하가 가운데의 인조에게 뭔가를 계속 주장하고 설득하는데, 피드백을 해야 했다. 감정의 굴레들을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보여줘야 할지 생각을 많이 했다. 거기서 번뇌하고 혼란스러워하면서 절제도 했다. 감정을 너무 크게 잡으면 마지막 호흡에서 부담스럽지 않을까 생각했다. 앞에 있었던 신하들의 묵직한 철학을 그대로 가지고 가기보다는 인조 입장에서 감정을 표현할 여지가 좀 더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중간 중간 실소도 자아낼 수 있었던 것 같다.”

극 중 최명길과 김상헌이 서로 다른 성격과 가치관으로 첨예하게 대립하는 만큼, 인조가 각각의 인물을 대할 때의 태도 역시 달라졌다. “인조 입장에서는 왕으로서의 자존심, 명분, 대의, 신의를 같이 추구하면서 남한산성을 탈출하는 것이 목표였을 거다. 양쪽 대신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끊임없이 저울질을 했다. 선배들이(이병헌, 김윤석) 전해준 감정이 세다보니 47일까지 이야기가 갈 수 있었던 것 같다.”

실제 인조의 입장이 되어본다면 박해일은 어떤 선택을 했을까.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와 같다. 감독님과 상의했을 때도 50대 50의 여지로 설정했다. 영화적으로 인조 입장에서는 ‘나는 살고자 한다’로 기울어지는 것 같은데, 관객분들이 영화를 보기 전까지 결과를 열어놓으려 한다.”

/서경스타 한해선기자 sestar@sedaily.com

한해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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