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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아이 캔 스피크' 김현석 감독 "위안부 할머니 지켜보는 우리의 자화상"

김현석 영화감독김현석 영화감독


영화 ‘아이 캔 스피크’가 관객들의 입소문을 타고 장기흥행을 이어가고 있다. 추석 연휴 기간 꾸준히 관객들의 선택을 받으며 손익분기점인 180만 명을 넘기며 10일 현재 누적 관객 300만 명 돌파를 목전에 두고 있다.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 소재를 영화화하는 데 있어서 윤리적, 심리적 부담과 제약이 상당함에도 가슴 아픈 역사를 대하는 진정성 있는 자세와 유머의 절묘한 조화를 이룬 연출력으로 호평받고 있는 김현석(사진) 감독을 최근 서울경제가 만났다. 김 감독은 “영화를 통해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를 지켜보는 우리의 시각을 강조하고 싶었다”면서 “(위안부 할머니에 대해) 너무 가슴이 아파서 외면했던 일이라고 말한다고 해도 그건 자랑도 아니고 방관입니다. 이는 위안부 할머니를 지켜보는 우리들의 자화상입니다”라고 말했다.

‘아이 캔 스피크’는 구청에 올린 민원만 8,000건에 달하는 ‘블랙리스트 1호’ ‘도깨비 할머니’ 나옥분(나문희)과 9급 공무원 민재가 영어로 엮이면서 옥분의 상처가 드러나는 과정을 그렸다. “민재와 동네주민으로 대변되는 우리의 시각과 자세를 보여주고 싶었다”는 김 감독은 “위안부 할머니의 아픔을 어떤 사건이 일어나고 닥쳐서야 알게 되고, 대부분 그렇게 살았다. 저도 그렇게 변명했던 것 같다. 잘 몰랐다고, 몰랐다고”라고 자책하기도 했다.


김 감독의 연출 의도는 명확하고 분명했지만 이를 표현해내는 데는 정공법을 택하지 않았다. 섣불리 주장하지도 강요하지도 않은 채 그 특유의 담담한 유머로 옥분과 민재 그리고 위안부 문제를 어떤 투철한 의식이 아닌 인권과 내 이웃의 이야기로 담아낸 것. 영화 전반부에 공무원들의 이야기가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처음 시나리오보다 구청 이야기를 많이 바꿨어요. 영화 속에 “공무원의 특징은 복지부동, 가만히 있으면 중간이라도 간다. 나대지 말자”는 대사가 나오죠. 하던 대로 하든 혹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데서 코미디가 발생하잖아요. 그리고 미국 하원에서 위안부 사죄 결의안(HR121)이 채택되죠. 이게 바로 위안부 할머니들을 대하는 우리에 대한 메타포로 연결지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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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감독은 영화를 준비하면서 위안부 할머니들에게 가졌던 부채의식과 미안함에 대해서도 털어놓았다. 그의 마음도 관객을 비롯한 우리의 마음과 다르지 않았다. “수요집회, 나눔의 집에도 갔는데, 영화 때문에 이러는 게 싫었어요. 할머니들을 보면서 의도하지 않게 저절로 나오는 눈물과 울분이 있었어요. 할머니들은 수요집회에 와서도 당시 피해 상황을 이야기하시는 게 아니에요. 그냥 주말에, 어제 뭐 했고 일상적인 이야기를 하시는데 그냥 그 자체가 너무 슬펐죠. 저에게 잠재적인 부채의식이 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죠.” 영화는 옥분이 위안부로 끌려갔던 당시 상황을 가학적인 장면 없이 담아냈다. 그러나 실제로는 할머니들이 당한 일들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의 끔찍한 폭행과 가해가 있었다. “옥분이 누가 손만 대도 소스라치게 놀라고, 목도 꽁꽁 싸매고 바바리 코트를 자주 입는 것은 위안부 시절 트라우마에요. 영화에서는 끔찍한 장면을 넣지는 않았지만 일본군인들이 어린 소녀들에게 문신을 새기기도 하고, 위안부 소녀들이 낳은 아기를 바로 죽여버리기도 했대요. 그런데 그런 장면은 넣지 않았어요. 옥분의 옷차림과 행동으로 보여줘도 충분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영화를 빛나게 한 건 김 감독의 따뜻한 연출력뿐만 아니라 나문희와 이제훈이라는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두 배우의 조합이다. 김 감독을 비롯해 이제훈, 제작사 대표 등 모두 시나리오를 보고 옥분 역에 나문희를 떠올렸다. 또 이 대배우와 팽팽하게 긴장감을 유지하면서도 우정을 키워가는 민재 역을 이제훈 역시 훌륭하게 소화해내면서 ‘청춘스타’에서 배우로서의 입지를 더욱 탄탄하게 굳혔다. “나문희 선생님은 스스로 리듬을 타서 연기하는 스타일이시고, 어떤 순간에도 감정을 놓치는 법이 없어서 연기를 보는 실시간 내내 전율을 느꼈죠. 제훈 씨는 현장에서보다 편집실에서 더욱 감탄이 나오는 배우죠. 정말 정확하게 클래식하게 군더더기 없이 연기를 해요. 공무원 스타일의 무미건조하지만 웃음을 참고 있는 듯한 느낌도 아주 탁월했습니다.”

사진제공=리틀빅픽쳐스

연승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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