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경제동향

[환란20년이 주는 교훈] "도전·혁신 없인 도태"...30대그룹 중 11곳만 명맥 유지

살아남은 기업도 희비 갈려

삼성전자·현대차 등 고성장

동양·STX그룹 등은 와해



외환위기가 우리 경제에 가져온 충격은 컸다. 1997년 중반부터 이듬해까지 하루 평균 500여곳의 기업이 자금난을 버티지 못하고 도산했다. 대마불사(大馬不死)라던 대기업도 예외가 아니었다. 1997년 1월 한보를 시작으로 대농(3월)과 기아차(000270)(7월), 쌍방울(10월), 해태(11월) 등 대기업들도 줄줄이 무너졌다. 20년 전 30대 대기업집단 중 현재까지 명맥을 유지하는 곳은 삼성과 현대차(005380)·LG·SK 등 11개에 불과하다. 위기의 파고를 넘어서면 생존력이 강해지기 마련. 그렇다면 성공한 기업들이 모두 승승장구했을까. 삼성전자(005930)가 굴지의 글로벌 1위 전자회사로 성장했고 기아차를 품에 안은 현대차도 세계 자동차 시장에서 5위권을 넘나들 정도로 성장했다. 반대로 동양은 환란을 이겨냈지만 2014년 공중 분해됐고 쌍용중공업을 인수하며 급속히 성장했던 STX그룹도 사실상 와해됐다. 현대상선을 중심으로 그룹의 정통을 승계했던 현대그룹 역시 현대엘리베이터만 남는 등 환란 이후 극심한 부침을 겪은 기업들도 수두룩하다. 전문가들은 “외환위기 당시 무너졌던 기업들이 과도한 부채를 통한 문어발식 사업 확장이라는 공통점이 있었다면 이후에는 도전과 혁신 유무에 따라 기업의 희비가 엇갈렸다”고 설명했다. 성장하지 않으면 도태된다는 것이 IMF 이후 20년간의 교훈인 셈이다.

2017년 현재 국내 30대 그룹 현황을 보면 삼성그룹이 자산총액 363조2,000억원으로 가장 덩치가 크다. 20년 전에도 2위였지만 51조7,000억원인 당시 규모나 글로벌 시장에서의 경쟁력을 고려하면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비약적으로 성장했다. 혁신을 바탕으로 활동 무대를 세계로 넓힌 것이 주효했다. 삼성전자는 1997년 만해도 내수 비중이 컸다. 그러나 이제 가전과 반도체·스마트폰 등 주요 3대 사업 부문 모두 세계 시장 점유율이 20%를 웃돈다. 삼성SDI 역시 2010년 소형전지 부문 세계 시장 점유율 1위에 올라선 후 매년 글로벌 시장에서 점유율 25%를 기록하고 있다.

선경에서 사명을 바꾼 SK의 성장세도 눈에 띈다. 22조9,000억원에서 170조7,000억원으로 급성장한 배경에는 2012년 인수한 SK하이닉스(000660)의 영향이 크다. SK하이닉스는 최근 베인캐피털 등과 컨소시엄을 구성해 일본 도시바메모리를 인수하는 등 글로벌 무대로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다. 안정적인 사업으로 꼽히는 이동통신 분야에만 안주했다면 SK는 우물 안 개구리에서 벗어나지 못했을 것이라는 게 재계의 대체적인 평가다.


반면 환란이라는 큰 고비를 넘기고서도 도태된 기업들도 있다. 2014년 해체된 동양그룹이 대표적이다. 제과업계는 물론 금융업계에서도 굳건한 지위를 유지했던 동양그룹은 새로운 성장동력을 찾지 못한 끝에 도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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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황에 취하지 말라’는 교훈도 20년간의 재계 순위 변화에서 읽힌다. 대우그룹이 빚으로 문어발식 확장을 한 것은 당시 세계 경제가 성장 가도를 달리고 있었던 측면이 크다. 2000년대 부동산 호황을 등에 업은 건설업계는 글로벌 금융위기를 전후해 중견 건설사들이 무너졌지만 아직까지도 부실이 남아 있다. 현대중공업과 삼성중공업·대우조선해양 등 세계 최고의 기술력을 자랑하던 국내 조선사들이 지난해 강도 높은 구조조정에 돌입한 것도 무리한 저가 수주 탓이다.

성태윤 연세대 교수는 “IMF 외환위기 이후 비약적인 성장을 보인 기업들은 새로운 성장동력을 발굴하고 과감한 투자에 나선 곳들 말고는 없다”면서 “반대로 혁신과 도전 없이 현실에 안주하거나 업황만을 믿고 비용 절감 등의 노력이 없던 기업들은 대부분이 도태됐다”고 설명했다.

조민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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